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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영국 한인촌에 노인정이 문 열던 날

hherald 2018.01.22 19:41 조회 수 : 2542

 

정세균 국회의장이 지난주 영국을 방문해 재영동포들과 저녁 만찬 간담회를 가졌다. 끝날 무렵 단상에 선 정 의장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라는 시간에 임선화 노인회장이 용감하게 손을 번쩍 들었다. 정 의장의 유머처럼 전혀 노인으로 보이지 않는 노인회장인 그녀의 당부는 해외에서 외롭게 살고 있는 한국인 노인들에게 관심을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주 월요일. 영국 한인촌인 뉴몰든에서 노인정 개관식이 열렸다. 인사말을 하던 임선화 노인회장이 영국에서 독거노인으로 살다 외롭게 돌아가신 어느 한국인 노인 얘기를 했다. 그의 쓸쓸한 죽음은 영국에서 가족이나 연고자를 찾지 못해 영국 공공기관에서 장례를 치렀는데 한국인 노인 세 사람만이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것이다. 살아있을 때 말동무라도 만날 수 있는 노인정이 있었으면 하고 아쉬워 했다는 고인을 회상하며 노인정이 있었다면 말년이 그나마 덜 외로웠을 것이라는 그녀의 늦은 회한을 봤다. 

 

또 역시 고인이 된 춤꾼 할머니 얘기를 했다. 병중에 친구 노인들의 병문안을 받고 죽을 때 죽더라도 춤이나 한 번 추자, 했다는 신명. 고인의 집 앞 벚꽃을 보고 지은 시조 <벚꽃나무, 길가를 수놓았으니 편안히 가옵소서>를 추도시로 낭송하며 어르신들은 이날 목이 메었다.

 

노인정이 생겨서 기쁘시겠습니다, 라고 담담하게 우리가 인사할 수 있을까. 노인정이야 필요하다고 매번 얘기되는 안건이지만 꼭히 내가 만들 건 아니라고 생각해온 대상 아닐까. 우리 모두의 내일이 바로 저 어르신들인데 노인정을 마련해드리는 문제를 마치 갈이천정 渴而穿井식으로 대한 건 아니었는지.

 

그래서일까. 우리들의 싸가지 없음을 보란 듯이 비웃듯, 이번에 뉴몰든 하이스트리트에 문을 연 노인정은 말 그대로 어르신들의 힘으로, 어르신들만의 노력으로 마련한 것이다. 임대료도, 유지비도, 소모될 것도 만만찮은 데 이 어르신들 각오가 무섭다. 십시일반으로 꾸려갈 수 있다며 일단 만들고 보자는 심사로 마련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만들긴 했는데 다달이 나갈 돈이야 발등의 불까지는 아니지만 냉장고도 싱크대도 컴퓨터도 텔레비전도 아쉽다. 어르신들도 말하긴 머쓱하셨나 보다.

 

다시 임선화 노인회장으로 돌아와 얘기하면, 그녀는 한마디로 바쁘다. 뉴몰든에서 두 시간 걸리는 거리를 차로 달려와 봉사하고 돌아가는 시간적, 공간적 문제는 당연하고 참 많은 메시지를 많은 사람에게 보낸다. 혹, 노인회에 필요한 밥통 남는 게 없느냐고, 문자가 온다. 그러다 3분이 채 못돼 헉, 벌써 누군가가 기증해 주셨다고, 그래서 너무 기쁘다고 친절하게 또 문자가 온다. 그 3분의 시간이 아니라 3시간 주어졌다손 난 과연 단 3초라도 노인회 밥통 걱정을 했을까. 이 어른들 앞에 서면 우린 너무 허울만 좋다.

 

노인정이란 이름이 싫어서 시니어센터, 문화센터라고 부르고 싶어하시냐 물었더니 노인회관이 노인정의 기능만 아니라 문화센터로서의 기능도 있기 때문이라고, 아무렴요. 이름이야 어쨌든 그 아름다운 황혼의 빛이 사그라지진 않을 겁니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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