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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며칠 전 서울 어느 초등학교에서 열린 특수학교 신설 주민 토론회에서 한 장애 학생 어머니가 지역주민 앞에 무릎 꿇고 호소하는 영상, 소위 '무릎 영상'이 화제가 됐다. 영상을 보면 지적장애인 140명이 다닐 수 있는 특수학교를 지을 수 있게 해달라고 무릎을 꿇고 호소하는 장애 학생 어머니를 향한 야유가 들린다. “쇼하지 마라”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이들의 님비 NIMBY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주민 토론회를 하는 것이다. 모여 얘기하면 어떤 합의점을 찾아 일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상대의 말을 들어보면 역지사지 易地思之의 자세에서 생각할 수 있기도 때문에 대화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런 자리에서 나온 극적인 호소, 특수학교를 반대하는 주민에게 호소해야 하는 측은 장애 아동의 부모들일 테니 그들의 호소는 참 절박할 것이고 대화가 진전이 없을 때 나온 호소는 참 극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쇼가 아니다. 일반 자녀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도 교육이란 가정의 최대 현안인데 장애 아동을 둔 부모에게 특수학교의 필요성이란 일반 부모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절박함이랄 수도 있을 텐데... 그날 그 현장에서 한 부모가 무릎을 꿇자 따라서 다른 부모가 또 무릎을 꿇으니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라는 식의 천박한 표현으로 폄훼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식의 표현으로 평가해줘야하나.

 

 

이 영상을 본 다른 장애 아동의 부모는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이 부모들은 죄 없는 데도 죄인의 심정으로 항상 살아서인지 <지역주민의 미움을 사는 것은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고 한다. <학교가 생기면 자기 자녀들이 그 학교를 다녀야 하고, 학교가 지역 주민의 미움을 사면 자기 아이들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란다.

 

 

이날 주민 토론회에서 무릎을 꿇고 호소한 부모는 자기 자녀는 이미 고학년이라 학교가 생겨도 보낼 처지가 아닌 입장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자기 자녀를 키우면서 마땅히 보낼 특수학교가 없어 겪은 어려움을 알기에 어린 장애 아동이 있는 가족을 위해 학교 건립을 허락해달라고 대신 빈 것이다. 굳이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장애인의 교육권에 대해 내가 재삼 들먹일 것도 없이 상식적으로 이런 절박함이 있는 곳에는 학교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 사는 곳이다. 

 

우리나라 비장애 학생들은 대부분 집에서 지척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닌다. 특수학교 학생은 대부분 왕복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의 학교에 다닌다고 한다. 서울에서는 지난 15년간 특수학교가 한 곳도 지어지지 않았다. 짓겠다는 말만 나오면 인근 주민들이 특수학교 설립반대 추진 비상대책위원회와 같은 긴 이름의 소위 '비대위'를 만들어 대대적인 반대 운동을 하기 때문이다.

 

다시 이날 토론회로 돌아와서, 마지막 발언자로 나선 장애아동 학부모는 "주민들에게 특수학교를 짓게 해달라고 사정하겠다"며 마룻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런데 주민들은 "저거 다 쇼야. 볼 필요 없어"라며 집단퇴장해 토론회는 결론 없이 끝났다.

 

그 절박한 호소를 '쇼'로 본다? 장애 아동과 그 부모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는 사람들이 만드는 사회? 사회적 약자를 철저히 무시하고 만들어 가는 그곳이 진정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궁금하지도 않다. 

 

헬러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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