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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제19대 대통령선거 재외투표가 마감됐다. 역대 가장 많은 22만1,981명이 참여했다고 집계됐다. 18대 대선보다 6만여 명 더 많은데 이는 <선거에 대한 재외국민들의 높은 관심과 인터넷을 통한 신고ㆍ신청, 영구명부제, 추가투표소 도입 등 투표 편의 확대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에 따른 것>이라고 중앙선관위는 평가했다. 나도 지난 토요일 아내랑 주영대사관에서 투표했는데 투표장 주변에서 본 이들은 대부분 젊은 친구들이었다. 내 눈에는 좋은 풍경이었다. 

 

 

재외선거를 두고, 아니 정확히는 재외선거 투표율을 두고 자주 숨겨진 이면이 있다는 말을 한다. 이번 19대 대선 재외선거를 보면 투표 신청자 29만4,633명 중 22만1,981명이 참여해 75.3%의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발표됐다. 표현도 <75.3%의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쓴다. 그런데 75.3%의 높은 투표율은 투표 신청자에 비해 높은 투표율이다. 전체 재외선거권자에 비하면 투표율은 한없이 낮아진다. 이번에 재외선거권자를 197만여명으로 추정했는데 이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11.2% 정도만 투표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저조한 참여율을 보이는 재외선거를 굳이 비싼 비용을 치루며 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비난이 나온다.

 

 

이번 재외선거 참관기 중 핀란드에 사는 젊은 부부 얘기에 감동했다. 투표 신청을 했는데 막상 투표하려니 주핀란드대사관까지 가는데 시간과 비용이 만만치 않았단다. 아시다시피 유럽은 노동절 연휴 기간이라 비행기는 1인당 100만 원이 넘고 기차는 왕복 18시간이 걸린다고. 그래서 "마음으로 투표할까" 했는데 아내가 "그래도 가자" 했단다. 두 사람 열차표가 280유로나 했지만, 아이를 데리고 새벽 5시에 집을 나와 9시간 기차를 타고 9시간 30분 만에 투표소 도착했다. 그들은 감회를 이렇게 썼다. <투표 자체는 길어야 1분이지만, 내 한 표는 누군가 나 대신 복잡한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계약이다. 선거는 결국 교육, 복지, 경제, 국방, 문화와 외교 등등 내가 손대기 어려운 일을 하도록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니, 계약을 하고 난 뒤에야 기대도 하고 질타도 할 자격이 생긴다. 그 자격을 한번 갖겠다고, 우린 눈도 안 녹은 도시에서 새벽같이 열차를 탔다. 가까운 지인 부부는 아기 둘을 데리고 7시간 거리를 직접 운전해서 투표했다. 모두 이만큼 더 나은 한국 사회를 절박하게 희망한다는 뜻이 아닐까.>

 

 

재외선거는 돈이 많이 든다. 1인당 비용이 국내보다 30배나 더 든다. 그래서 선거권자 수 대비 투표율로 보면 고작 10% 정도인데 뭣하러 그런 비용을 들여 선거를 하느냐고 말들 한다. 그 논리는 10%가 투표했다면 90%가 기권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대다수가 스스로 권리를 포기하는데 비싼 비용을 들여야 하느냐는 식의 비난이다. 

 

그런데 앞에 언급한 핀란드의 젊은 부부의 사례처럼 절박한 희망에 거는 특별한 권리를 행사하려 18시간 기차를 타는 값비싼 참정권이 세계 곳곳에 있다. 낮은 투표율을 비난하는 그 시각을 이해하지만 왜 투표율이 낮은지, 많은 재외동포가 굴뚝같은 심정으로 투표하려해도 실상은 포기할 수 밖에 없는 현실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 정치에 무관심해 스스로 권리를 포기한 이들도 있으나 대부분 재외동포의 투표소 가기가 현실적으로 녹록치 않음을 안다면 낮은 투표율을 두고 무용론을 함부로 들먹일 수는 없을 것이다.

뒤늦게 알았는데, 우편과 인터넷 투표 도입으로 재외국민 참정권을 확대하겠다는 후보가 이번에 한 명 있었단다. 와, 놀랍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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