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산업통상자원부가 밝힌 세계 부호 동향을 보면 자산 3000만 달러 이상의 세계 갑부는 21만2615명, 미국이 6만9350명, 중국이 1만2050명, 우리나라는 2014년 자료로 1390명이었다. 우리나라가 적다거나 많다는 머릿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특이한 것은 유독 금수저가 많다는 사실. 말하자면 부를 형성한 형태에 따라서 상속형 부자, 자수성가형 부자로 분류할 때 금수저란 상속형 부자를 일컫는다.
전 세계 부자를 보면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던 이는 2명 중 1명이 못 된다. 자수성가형이 더 많다는 얘기다. 허나 우리나라는 아니다. 3명 중 2명이 태어날 때부터 부자였다. 자수성가 부자는 33.3%, 세계 최하위권이다. 그런데 한국 금수저들의 명문대 졸업 비율이나 MBA 이수 비율은 세계 최고다. 세계 유명 대학 출신이 78.40%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돈 많은 집에 태어나 양질의 교육을 받은 금수저. 한국 부자 3명 중 2명이 이들이다. 허긴 국내 상장회사 주식을 1억 원 이상 보유한 어린이 주식 갑부가 130명이 넘는다. 10억원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어린이 주식부자도 38명. 최고 어린이 주식부자는 10살 때 155억 원어치 주식을 갖고 있었다.
'부자 3대 代 못 간다'는데 글쎄, 이 정도 돈을 갖고 시작하면서 양질의 교육으로 무장하는 금수저들의 영토는 오히려 더 견고질 것 같아 씁쓸하다. 그렇잖아. 부의 대물림이란 게 얼마나 사회를 고착화하고 없는 이들 힘 빠지게 만드는지 알잖아. 신분이 고착화된 사회. 성장을 기대하기 참 어려운 곳이다.
흔히 부자를 백만장자 millionaire 로 불렀다. 100만 달러, 약 10억 원 이상인데 부자라기엔 물가 상승으로 희소성이 떨어졌다. 그래서 요즘은 억만장자 billionaire 로 쓴다. 10억 달러, 약 1조 원 이상을 가진 극소수가 이 대열에 들어간다. 우리나라에 35명이 있다는데 역시 자수성가한 사람은 10명에 불과하다.
유럽도 자수성가형 부자보다 상속형 부자가 더 많다. 덴마크는 83%, 핀란드 는 거의 100%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이런 금수저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갈등이 적다. 그래서 500년 600년을 계속 부자로 이어진 가문이 많다. 아마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부자였기 때문에 부의 대물림을 오래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나만 예를 들면 독일 아우구스부르크의 빈민을 위한 주거단지 '푸게라이'는 16세기 유럽 최고 부자였던 야콥 푸거가 1521년에 세운 세계 최초의 사회복지 시설이다. 현재 푸게라이에는 140여 가구가 사는데 연간 임대료가 500년 전과 똑같이 1유로가 못 된다. 이런 갑부는 갑질하지 않아서 돈을 쓰는 것도 관리하는 것도 남다르다. 부에 대한 인식도 남다르다는 것이다.
갑부, 거부, 졸부, 알부자 등 부자를 부르는 말도 많다. 중국 원나라 시절 잘못된 부자를 비꼰 내용의 인기 연극 <간전노 看錢奴>라는 것이 있다. 부자를 달리 부르는 말로도 쓰이는데 바로 '돈의 노예'라는 뜻이다. 부자냐 아니냐는 각자가 가진 부에 대한 인식에 달렸다는 것 아닐까.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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