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병헌에 일인이역을 한 이 영화는 자신의 정적으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된 왕 광해(이병헌)가 도승지 허균(류승룡)에게 지시하여 자신의 대역을 찾게 하자 도승지는 왕과 똑같이 닮은 만담꾼 하선(역시 이병헌)을 발견해 그를 왕의 대역으로 교육시켜 왕 광해가 자리를 비우는 시기에 왕의 역할을 수행하게 한다는 내용이다. 왕의 대역이 되어 가짜 왕 행세를 하는 천민이 점점 진짜 왕이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흥행에도 성공했지만 진정한 군주의 덕목은 무엇인지를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영화에서 주목되는 장면. 왕을 해하려는 무리의 음모에 의해 쓰러져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광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는 도승지, 그리고 왕을 치료하는 어의의 모습. 왕의 죽음과 부재가 곧 국란을 의미하던 시기에 왕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리고 치료를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고심 끝에 도승지가 선택한 것은 바로 그와 똑 닮은 외모의 인물을 왕의 대역으로 내세우는 것.
지금 미국 대선에서 이 영화와 너무 비슷한 전개를 본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지난 9/11 테러 추모행사에서 휘청거리며 차에 타는 모습이 공개됐다. 그 전에도 "클린턴이 실어증을 앓고 있다" "숨겨둔 질환이 있다"는 등의 미확인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클린턴의 건강 문제에 대한 각종 이야기는 2012년 12월 뇌진탕으로 쓰러진 이후 늘 무성했다. 이날 수행원들의 부축을 받아 차를 타고 근처에 있는 딸 첼시의 아파트로 이동해서 휴식을 취한 뒤 대중에게 다시 모습을 보인 힐러리는 기자들이 몸 상태를 묻자 "아주 좋다"고 답했다.
그런데 딸이 사는 아파트에 부축 당해 들어간 힐러리와 건강한 모습으로 아파트를 나온 힐러리는 다른 사람이라는 일종의 음모론이 팽배하다. 아파트를 나설 때 대역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아파트로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의 사진을 비교해 힐러리의 옷을 입고, 힐러리의 선글라스를 쓴 이 여인이 힐러리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힐러리의 아바타라는 것이다. 참 꼼꼼히도 비교했는데 코끝이 낮고, 귓불 모양이 다르고, 검지손가락이 짧고, 다리도 가늘다고 지적한다. 얼핏 봐도 몇 시간 사이에 훨씬 젊어진 힐러리로 보인다. 또한, 힐러리의 딸인 첼시의 뉴욕 아파트 주소와 같은 주소에 의료시설이 등록된 기록이 있는데 힐러리가 자신의 진료를 위해 딸의 명의로 해당 아파트를 구입해 놓은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힐러리의 아바타로 지목되는 여성은 테레사 반웰이라는 여배우다. 그녀는 9월 11일 뉴욕에 있지 않고 LA에 있었다고 항변했다. 그런데 실수인지 객기인지 음모인지 그녀가 그날 흥미로운 트윗을 올렸다가 지웠다. <아마도 나는 오늘 뉴욕에 있었다… 당신은 절대 모른다!> 이날 사진 속 배경도 뉴욕이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클린턴은 지금 아바타를 이용해 잠시 시간을 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진짜 아프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이런 아바타가 아니라 대체 후보가 필요한 게 아닐까. 클린턴은 오히려 트럼프보다 건강하다고 큰소리치는데...힐러리 아바타, 남의 나라 선거라 이것도 구경거리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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