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니 영국 유명 인사를 빌려야겠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 그는 한국의 가족제도를 극찬했다.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입발림으로 나온 말이 아니다.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지구가 멸망해서 다른 별로 이주해야 한다면, 그리고 지구에서 단 한 가지만 가져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가져가시겠습니까?" 토인비가 답했다. "나는 한국의 대가족제도를 가지고 가겠다." 또한 그는 "한국의 효사상, 가족제도, 경로사상은 인류를 위해 가장 위대한 사상이다. 영원히 보존할 뿐 아니라 서양에도 그런 운동을 해달라, 나도 돕겠다."라고 했다.
그가 한국의 가족제도를 칭찬한 이유는 집안에 어른이 있고, 사회에 효친 사상이 있고, 가정과 사회에 위계질서와 유대관계가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1970년대 한국을 방문해 경로사상을 전 세계에 펼쳐달라, 나도 돕겠다던 토인비는 몇 해 뒤 죽어 지금의 한국 경로사상을 보지 못한다. 지금 토인비가 2016년 한국인들을 만난다면 그때처럼 "죽을 때 하나 가져 가고 싶은 게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한국의 가족제도를 가져가고 싶다."라고 할까.
물론 스스로에게 묻는다. '원로元老가 없다'는 이런 말을 굳이 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어른이 없다는 말로 괜히 시건방진 놈이 될 필요가 있을까. 원로 부재 사회를 선언한다고 남는 게 있을까 말이다. 그런데 원로가 없다고 말한다. 진정한 원로를 어쩌면 불러낼 수 있을까 하는 아둔한 미련일지라도.
개인적인 견해지만 나는 지금 한인사회의 모든 불확실성이 원로의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심하게 말하면 어른이 없기 때문에 영국의 한인사회는 배울 것이 없고 본받을 사람도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사회에 어른이 없으니 위계질서와 유대관계도 없다. 어른이 없으니 극단적으로 사람이 없다. 정말이지 원로가 없다. '나이 많은 분'만 간혹 계신다.
우리가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원로는 이제 이 사회를 사후 평가해 줄 어른이 아니다. 사후에 나타나 그러니까 이 모양이지 하고 타박하는 어른이 아니다. 내가 보고 잘 한다 싶으면 손 들어줄게, 하는 어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일이 잘되고 나면 그제야 나타나는 어른이 필요하지 않다. 이토록 일이 잘못된 데도 못 본 척하는 어른이 필요하지 않다.
원로는 임직을 떠나도 그 조직이나 사회를 늘 걱정하고 유사시에 자문하고 돕는 사람이다. 지금 영국의 한인사회는 자문과 도움을 주는 원로가 필요하다. 몸조심과 처신이 우선이라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이라는 원로는 원로가 아니다. 이제는 사전에 찾아가 의논할 어른이 필요하다. 잘못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못된 아이 몇이서 흔들고 다니면 잘못한다고 당당하게 그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하다.
원로의 올바른 자문이 지금 만신창이 한인사회의 대립을 완화하고 건설적인 토론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혜안을 가진 원로가 이 사태에 봉사와 희생으로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원로가 없다고 싸가지 없는 글을 쓰는 나 같은 사람에게 고함칠 수 있는 위계가 생기지 않겠나. 그래서 나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역시 우리에게는 '원로元老가 계신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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