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여진은 이명박 정부의 눈에는 참 불편한 배우일 것이다. TV 시사토론에 출연해 현 정부를 비판하고, 이명박의 등록금 반값 공약을 이행하라는 1인 시위를 하고, 대학교 청소용역 직원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광고를 게재했다. MB가 대통령이 되기도 전, 대선 예비후보일 때 그를 지지한 연기자 이덕화는 <각하, 힘내십시오>라고까지 했는데 모름지기 배우라면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이명박 정부의 눈에 배우 김여진은 쓸데 없는 개념이 꽉 찬 배우였을 것이다.
광주민주화운동 31주년을 맞은 지난 5월 18일. 김여진은 <당신은 일천 구백 팔십년 오월 십팔일, 그날로부터 단 한 순간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당신은 학살자입니다. 전두환 씨>라는 글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그러자 의외의 인물이 김여진에게 욕설을 하며 '예상 밖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바로 박용모 한나라당 정책위 자문위원이다. 그는 <김여진! 경제학살자 김 아무개 전 대통령 두 사람에게는 무어라 말할래? 못생겼으면 함부로 씨부렁거리지 마라. 나라 경제를 죽이는 자는 나라 전체를 죽이는 학살자가 아니겠니? 아가리 닥치거가있는 기시내야>라고 막말을 남겼다. <미친X>이라는 원색적인 욕설도 덧붙였다. 박용모가 왜 예상 밖의 존재감이냐 하면 한나라당 안형환 대변인은 <당은 박용모 자문위원을 잘 모른다. 당원 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한 것은 유감이고 잘못됐다>고 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정말 모르는 사람인지, 모르는 사람으로 치부하고 싶었든지 어쨌거나 박용모는 한나라당 자문위원의 '자문'이 어떤 건지를 보여주며 김여진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박용모는 김여진에게 막말을 하면서 자신의 직함을 ‘40대말 아저씨/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자문위원/민주평화통일 정책회의 자문위원’이라고 게재했다. 그 막말이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일자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자문위원/민주평화통일 정책회의 자문위원'을 빼고 그냥 ‘40대말 아저씨'라고 프로필을 급하게 수정했다. 전직 대통령에게 학살자라는 말을 해서 화가 났다는 투의 사과문도 실었다. 그 사과라는 것이 또 워낙 조악하고 편협해서 사과가 아니라 비웃음거리가 됐지만.
박용모가 만약 김여진의 글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런 막말을 했다면 박용모에게는 소도 웃을 전력이 있다. 박용모는 민주당 최종원 의원 동영상에 <저 사람 정신 잃어버렸구만, 때중이(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칭) 뼈 꺼내서 곰탕이나 끓여드숑 / 저 사람 참 완장 찼구만>이라는 댓글을 남긴 바 있다. 전직대통령에게 학살자라 해서 화났다면서 다른 전직대통령에게는 어떻게 이런 말을. 뭐라고 해야겠는데 박용모 수준에 맞는 표현 방법이 없다.
만약 박용모라는 개인이 짧고 허접한 역사의식으로 예상 밖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저지른 실수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5.18민주화운동을 민주화로 보지 않고, 전두환의 광주시민학살을 애국으로 오판하는 것이 한나라당의 역사의식이고, 그런 한나라당의 잘못된 역사의식이 박용모라는 자문위원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라면 문제가 크다.
그래서 불길하다. 3년째 5.18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는 MB. 이 정권의 현대사에 대한 역사인식이 모조리 이럴까 봐 불길하다.
헤럴드 김종백 haninheral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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