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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황기환 애국지사가 순국 10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알려졌다. 황 지사의 유해를 고국에 모시려고 그동안  여러 차례 추진했지만, 족보나 유족을 확인할 수 있는 공적 자료가 없어 미국 법원이 승인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순국 100년이 되는 올해 유해를 봉환해야 한다는 질긴 설득에 묘지 측에서 파묘 합의를 했다. 극적인 일이다.  국가보훈처는 유해봉환 절차를 마치면 미국 뉴욕에 있는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를 떠나 국립대전현충원에 황 지사를 안장할 예정이다. 

 

황기환 지사는 일제강점기 영국의 한인과도 인연이 깊다. 1919년 황 지사는 세계 제1차대전  참전 후 프랑스에 있었다. 구미주차한국위원회 대표 김규식의 서기장으로 있으면서 한국의 독립 선전 활동을 했다. 
그 무렵 노르웨이와 핀란드 국경에서 가까운 러시아 최북단 도시 무르만스크의 철도회사에 조선인 노동자가 500여 명 일하고 있었다. 이들은 당시 영국인 포로를 데리러 러시아에 온 영국군에 속해 잡역부로 일했는데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 영국군은 철수해야 했다. 영국군은 러시아인 피란민, 중국인, 한인 노동자 등 800명을 데리고 산타엘라나 호를 타고 1919년 10월 16일 영국 에든버러로 돌아간다. 이때 무르만스크에서 일하던 한인 노동자 500명 중 200명이 영국으로 간 것이다. 산타엘라나 호는 무르만스크를 떠나는 마지막 배였다. 따라서 무르만스크에서 남은 300명 한인 노동자의 행적은 알 수 없다.

 

일제는 에든버러에 도착한 조선인 200명을 조선으로 강제송환하라고 영국에 요청한다. 영국은 동맹국인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들을 돌려보내려 한다. 이때 황기환이 에든버러로 달려가 송환을 막기 위한 협상을 벌인다. 임시정부 자료집에 '황기환이 영국 외무부와 국방부에 이들이 무르만스크에서 영국군과 연합군의 지휘하에서 노동하였음을 강조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가 영국 정부에 항의하고 프랑스 정부에 부탁해 조선인 35명을 프랑스로 데려온다. 147명은 중국 청도를 거쳐 조선으로 송환된다. 나머지 18명의 행방의 행방이 모호한데 영국에 남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황 지사는 영국에서 <영일동맹과 한국>이라는 책자를 만들어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 분할정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비판했다. 그는 임시정부 외무부 주차영국런던위원으로 있으면서 <대한제국의 비극>을 써서 일제의 만행을 고발한 언론인 매켄지 등 영국의 친한파 인사들과 함께 한국의 독립을 돕고 지원하는 모임 '영국 한국친우회'를 결성한다. '영국 한국친우회'는 1920년 10월 26일 웨스트민스터 하원 의사당 House of Commons 제6호 위원실에서 탄생한다. 이날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가 우리나라 독립운동 해외 사적지가 된 날이다.

 

황 지사는 1921년 미국으로 건너가 이승만, 서재필 등과 외교활동을 하다가 1923년 4월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죽었다. 그의 출생 연도는 모른다. 정부는 황 지사에게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지만, 그의 묘소도 2008년에 지역 공동묘지에서 발견했다.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다. "나라 꼴이 이런데 누군가는 싸워야 하지 않겠소?" "그게 왜 당신인지 묻는 거요." "왜 나면 안 되는 거요?" 영국과도 인연 깊은 '미스터 션샤인'의 100년만의 귀환, 멋진 분이 우리 곁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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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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