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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고등학교 세계사 수업 시간에 인도 카스트 제도의 4계급을 열심히 외운 덕에 20대 때 어느 레스토랑에서 술을 먹다가 퀴즈를 맞혀 와인을 상으로 받은 일이 있다. 그날 태어나서 처음 와인을 먹은 거로 기억하는데 퀴즈 문제가 '카스트 제도의 가장 하위 계층은?' 카스트 제도의 4계급은 브라만(성직자), 크샤트리아(귀족), 바이샤(평민), 수드라(노예). 이날 퀴즈의 답은 '수드라'였지만 어찌 보면 틀렸다고 할 수도 있는데  한편으로 수드라 아래 계층으로 불가촉천민(닿는 것조차 안되는 천한 것들'이라는 뜻)이라는 계급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수드라 계급은 힌두교의 4계급에 포함되지만, 불가촉천민은 이에도 포함되지 않는 계급 외의 존재다.

 

힌두교의 경전에는 인간 영혼에도 귀천이 있다고 한다. 경전에서 신분 차별을? 이라고 할 수 있을 테지만, 불가촉천민은 힌두교에서 배제된 존재다. 그래서 불가촉천민은 사원에 갈 수 없는 것은 물론 그림자조차 비칠 수 없다. 경전을 봤다고 눈을 뽑고 경전을 말하면 혀를 뽑고 경전을 만지면 손을 잘랐다. 

최근 인도에서 불가촉천민 중 불교로 개종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신분 차별이 법으로 금지됐지만, 인구의 80%가 힌두교도인 인도에서 차별의식은 진하게 남아있고 자식에게까지 천민이라는 굴레가 이어지니 아예 개종을 하는 것이다. 

 

인도에 불가촉천민 출신 법무부장관이 있었다. 카스트 차별을 금지한 인도 헌법을 만든 암베드카르. 불가촉천민 출신이라는 신분의 제약을 극복하고 뼈를 깎는 노력으로 해외 유학을 했다. 런던정경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고 영국 변호사 자격도 갖춘 인물이다. 그는 불교의 힘을 빌려 인도의 신분 차별을 없애려 했다. 1956년 그가 죽기 두 달 전, 50만 명의 불가촉천민을 이끌고 불교로 개종시켰다. 만인의 평등을 주장하는 불교가 암베드카르에게는 희망이었고 지금 인도에서 그의 초상화는 부처와 나란히 걸린다.

인도에는 암베드카르의 동상이 간디보다 더 많다. 간디는 카스트 제도를 극복하지 못한 인물로 평가한다. 카스트 제도의 비율을 보면 브라만 4%, 크샤트리아 7%, 바이샤 14%, 수드라 59%, 불가촉천민 16%. 간디는 3계급인 바이샤 출신이다. 그는 힌두교를 지키는 데 열중했고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브라만 4%, 크샤트리아 7%, 바이샤 14%를 합한 인도인 25%만이 그를 존경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카스트 제도의 신분 차별을 철폐하려 평생을 바친 암베드카르와 동시대에 살았기에 두 사람은 늘 대척점에 서 있었다. 

 

간디하면 비폭력 무저항주의, 세계인의 영적 지도자로서 떠오르지만 신분 차별의 문제점을 깨닫지 못한 인물이라는 사실까지는 모르는 이가 많을 것이다. 암베드카르는 인도 헌법의 초안을 썼다. <국가는 종교, 인종, 카스트, 성별, 출생지를 이유로 그 어떤 시민도 차별할 수 없다.> 그가 쓴 헌법의 첫 조항이다. 당연하다. 이 조항이 어디 인도에만 해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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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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