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인 노인 한 분이 돌아가셨다. 정확히는 8월 18일. 영국에 가족이 없었으니 독거노인이라 할 수 있다. 이분은 노인회에 자주 나와 시간을 보내다 노인회원으로 가입하고 활동했다. 말년에 병환으로 고생했다는데 노인회원들이 식사와 잠자리를 챙겨주며 따뜻하게 보살폈다. 결국 병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부고를 부탁받아 봤더니 이분의 빈소가 노인회관에 차려진다는 내용.
임선화 노인회장은 한인 독거노인의 죽음이 두 번째라고 했다. 몇 해 전 버스 안에서 갑자기 돌아가신 어느 분의 장례식에는 한인 노인 3명뿐이었다고. 이번에 돌아가신 분이 생전에 노인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부인과 친척에게 모두 버림받고 자식도 없습니다. 노인회원이 된 것은 제 장례식에 누군가 좀 와달라는 것이 가장 컸습니다."
이분의 빈소에 노인회원들이 상주 喪主가 됐다. 먼저 돌아가신 독거노인과 같은 외로운 죽음을 한인사회에서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는 어르신들의 상조 相助였다. 어르신 상주들이 십시일반으로 조문객을 받을 준비를 했다. 그래서 장례식에 쓰인 노인회 공금은 영정 사진 현상에 든 7파운드가 전부였다. 백발의 상주들이 지키는 빈소에 조문객들이 왔다. 박은하 대사도 조화를 보내 위로했다. 어르신 상주들이 끓인 차 대접을 받은 조문객들이 조의금을 두고갔다. 조의금을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는 노인회원들은 두고 간 조의금을 어떡할까 서로 물었다.
임선화 노인회장도 조의금을 어떡할까 고심하다가 3일째 새벽에 문득 <한인 양로원>이 떠올랐다고 한다. 일반 한인 노인은 물론 이번 장례식의 주인공 같은 한인 독거노인도 말년을 편히 보낼 수 있는 곳, 병든 노인에게 죽을 끓이고 김치를 곁들여 내놓을 수 있는 한인 양로원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곧바로 양로원 설립을 위한 트러스티가 구성됐고 노인회 안에서부터 기부금이 모였다. 부조금과 기부금을 합쳐 2주 만에 6천 파운드 이상이 모여 한인 양로원 설립의 종잣돈이 됐다.
양로원은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수용, 보호하는 복지시설이라 일반인도 가게 되면 요영원, 실버타운 등 이름이야 바뀔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나라에 지금과 같은 양로원이 생긴 것이 120년이나 됐고 역사적으로 삼국시대부터 독거노인이나 고아를 돌보는 사회제도가 있었다는데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영국 한인사회에서 한인 노인 복지시설에 대한 논의가 되고 금방 실천에 옮겨진 거다. 그것도 노인회에서. 좋은 일에 앞장 서는 데는 왜 우리가 늘 어르신들보다 굼뜬걸까?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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