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YS)의 친아들이라고 주장했던 사람에게 법원이 손을 들어줬다. YS의 친생자로 볼 수 있다며 승소 판결을 한 것이다. 2009년부터 친자 확인소송이 있었는데 김 전 대통령이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아 '친자가 맞다'라는 판결이 났다. 친자 확인소송은 친자가 아니라는 의심스러운 소지가 있으면 유전자 검사에 응해 아니라는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유전자 검사 명령에 응하지 않은 것이 바로 친자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만약 친자관계를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음에도 유전자 감정 명령에 불응하면, 유전자 감정결과 없이도 친자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YS는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았고 법적인 대응을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새롭게 자식이 생겼는데도 좋다 말다 일절 말이 없다. 하긴 무슨 말이 있으랴.
이번에 YS의 친아들이 된 사람은 김 모 씨로 YS는 김 씨의 친모와 내연관계를 맺다 1959년 3월경 김 씨를 혼외자로 얻었다. YS의 차남이며 한때 소통령으로 불렸던 김현철과 생일이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정치인생으로 보면 이때 YS는 재선을 준비하고 있을 때다. 26살의 나이로 최연소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재선에 도전하는 중요한 시기에 YS는 두 아들을 얻었다. 물론 한 아들은 혼외자였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혼외자의 존재를 알려질까 두려워 꾹꾹 묻어두려 했을 것이다.
YS의 친자 확인소송은 처음이 아니다. 2005년에는 더 떠들썩했다. YS의 딸을 낳았다고 주장해 온 이경선(당시 70세) 씨가 YS를 상대로 위자료 30억 원 중 1억 원을 우선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씨는 1961년부터 유부남의 신분으로 YS가 이씨의 집에 드나들며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가 62년 11월 딸을 낳았다고 했다. 정치인생으로 보면 이때 YS는 신민당의 요직에 앉아 대통령이 되려는 포부를 갖고 있을 때다. 딸을 호적에 올려달라고 하자 “조금만 더 기다리라”는 말로 달랬다고 한다. YS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혼외자의 존재는 일급비밀이었겠지만 그렇게 태어난 딸의 운명은 기구했다. 한국인으로 살다가 대만인의 딸로 위장 입적되고 다시 일본인의 양녀로 들어가 이름도 '현희'에서 '가오리'로 바뀌었다. 제대로 된 호적이 없는 딸은 아버지를 불러보지 못했다. 혼기도 놓쳤다. 혼외자의 존재를 숨기는 '함구'의 대가로 YS에게 생활비를 20억 이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가오리 양의 친자 확인소송은 선고를 2주 앞두고 이 씨가 소를 취하했다. YS가 어떻게 손을 썼는지 미제로 남은 사건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손을 쓸 여력이 없었는지 YS는 아들을 얻었다.
YS에게 친자 확인소송을 한 자녀는 한결같이 현대판 홍길동이었다. 다른 뜻은 없고 그냥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라도 아버지임을 확인하겠다는 자식의 애절함을 믿어야 할지, 그것도 응하지 않는 아버지의 냉혹함을 욕해야 할지. YS가 저지른 YS의 잔혹사다.
일본 속담에 "배꼽 아래 인격 없다."라는 것이 있다. 이걸 배웠는지 유독 정치인의 혼외자에 대해 우리는 관대했다. 혼외정사가 정치인의 도덕적 결함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렇게 복잡한 정치인들끼리 '유유상종'으로 용납해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린 관대할 필요가 없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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