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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하나 더 소개합니다. 원본을 쓴 이는 따로 있습니다. 그 글을 지금은 볼 수 없는데 짧은 내용에 담긴 줄거리는 생생합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 나름대로 각색한 것입니다. 물론 덧붙인 것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이 모여 다시 만든 제2의 고향, 무지개 마을은 살만한 동네였습니다. 사람이 적을 때는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아서 필요한 것을 나누고 살았습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사람이 간혹 있기는 했지만 워낙 인심 좋은 그곳에서 고약한 제 성질을 감추고 살았기에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런 낌새가 있었지만 선한 이가 대부분인 그곳에서 그 고약한 심보를 쉽사리 더러내지 못했던 거죠.
그런데 그 무지개 마을에 사쿠라꽃이 피고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원래 무지개 마을의 꽃은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런 것인데 어느 날부터인가 사쿠라꽃이 하나둘 피더니 "무지개 마을의 꽃은 사쿠라다! 우리들은 사쿠라다!"하는 사쿠라가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녔습니다. 불과 몇 해 전의 일입니다. 고약한 성질을 감추고 살던 미꾸라지 한 마리에서 시작된 일입니다.
그런데 어럽쇼? 그 옆에 완장을 하나 채워주니 더 만개하는 사쿠라가 쑥쑥 솟았습니다. 사쿠라가 된 것이 감개무량한 어중이 사쿠라도 있습니다. 무지개 마을일에 딴죽만 걸고 살다가 왠일인지 요즘에 불쑥 등장한 사쿠라도 있습니다.
사쿠라의 특성은 서로를 이용할 때까지 이용하다 볼 일이 없으면 잔혹하게 버립니다. 뭐 평생동지라는 개념? 원래 개념이 없지만 남을 배려하는 개념은 특히나 더 없습니다. 물론 이런 점을 서로 이용하면서 필요할 때까지만 공존하는 겁니다. 그러면 그들의 결말은 그림이 보이시죠?
무지개 마을의 사쿠라는 다른 꽃들이 무지개 마을을 외면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습니다. 사쿠라만 생각하면 무지개 마을이 지겨워진 것입니다. 그런데 사쿠라꽃은 그것이 무지개 마을을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법이라고 변명했습니다. 변명이 탄로 나면 거짓말로 해명하고, 거짓말이 드러나면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고 했습니다. 기억이 없답니다. 기억이 없다? 무지개 마을의 사쿠라들은 머리도 나쁩니다.
그래도 사쿠라 원래의 매력은 있습니다. 사쿠라꽃은 순식간에 피고 화려하게 집니다. 이 기질은 배우지 못했으니 나쁜 쪽으로만 사쿠랍니다. 지금 사쿠라꽃이 지고 있습니다. 누굴 탓할 필요도 없이 자가당착으로 사그라집니다. 그런데 화려하게 지지를 못합니다. 누가 봐도 지는 사쿠라인데 얼마간 혹은 얼마씩 시간을 구걸하며 여력을 짜내 연명하고 있습니다. 완장을 놓기 싫은 사쿠라, 늦게 합류해 목소리 제대로 질러보지 못해 아쉬운 사쿠라. 사쿠라 짓이 생활의 유일한 낙이었던 사쿠라... 연명해야 하는 이유도 가지가지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사쿠라꽃이 피어 있습니다.
   
무지개 마을이 살만한 동네였다는 것은 지금 참 살기가 힘들다는 말이 아니라 과거 이웃 간에 넘치는 정이 사라진 삭막한 동네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안타까운 현실이 과거를 더 그립게 만들지요.

안타깝지 않습니까. 왜 피었을까요. 그리고 이제 질 때가 됐건만 지지 못하는 이유는 또 뭘까요. 아! 저기 저곳에 여기 이곳에 아직도 사쿠라꽃이 피었습니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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