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81학번인 나의 대학 시절, 대한민국 대통령은 전두환과 노태우였다. 군대에 있었던 27개월을 빼고 그 시절 이 노래를 얼마나 많이 불렀는지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 노래에 대한 내 느낌은 다르지 않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에는 수구세력이 말하는 반국가적이거나 친북의 내용이 없다.
그런데 이 노래가 다른 한 편의 귀에는 참 거슬리는 모양이다. 5·18 기념곡으로 인정하기 싫은 세력이 5·18 공식 추모곡을 따로 만들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폐기처분하려는 것을 보면 가히 '임을 위한 행진곡 잔혹사'라 할 만하다.
2003년 정부는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정부 공식행사로 지정했다. 그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은 사실상 5·18 민주화운동의 공식 기념곡이 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민주화운동과 인연이 깊다. 1981년 가을, 소설가 황석영의 광주집에서 만들어졌다. 이 노래의 작사가는 황석영, 김종률로 되어 있으나 1981년 지하 유인물로 떠돌던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의 일부분을 따온 것이다. 10·26사건 이후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에게 체포된 백기완 씨가 옥중에서 틈틈이 써 의사나 면회객을 통해 조금씩 외부에 알린 시가 묏비나리다. 노래로 만들어진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 역할을 하다가 숨진 윤상원 씨와 1979년 노동현장에서 사망한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이 열린 1982년 2월 광주 망월동 묘지에서 처음 불렸다.
그때부터 이 노래는 공전의 히트곡이 됐다. 사회운동의 현장에는 늘 이 노래가 있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도 널리 불렸다. 붉은악마에서 발매한 2002년 월드컵 공식 응원가 CD에도 수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잔혹사도 만만찮았다. 이명박 정권 시절인 2010년 5·18 30주년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을 연주하기로 해 파문이 일었던 적도 있다.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4·19와 5·18일 것이다. 우리는 4·19 노래를 잘 모른다. 자주 부르지 않아서지만 부를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모른다. 4·19 노래는 이렇다. <눈부신 젊은 혼이 목숨을 바쳐 독재를 물리치고 나라 건졌네. 분노가 폭발되던 사월십구일 우렁찬 아우성은 메아리 되어 민주대한 역사위에 길이 남으리>. 이 가사에 무슨 문제가 있는가. 그런데 이 노래는 1990년대까지 사실상 금지곡이었다. 1963년 한일협정 반대시위 때 학생들이 불렀는데 데모에 사용됐다는 이유로 군사정권은 이 노래를 금지했다. 군사정권의 사내들은 대체로 옹졸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때 제창했지만 2009년부터는 합창으로 바뀌었다. 5·18 관련 단체는 공식 제창을 요구했지만 올해도 합창으로 했다. 공식행사에서 제창과 합창의 차이는 크다. 합창을 하면 합창단이 부르고 참석자는 따라 부르든 말든 이다. 그런데 제창을 하면 모든 참석자가 따라 불러야 한다. 그래서 만약 공식 지정곡이 되고 제창을 하게 되면 박근혜 대통령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부르는지 아닌지 그 입 모양이 전국에 생중계된다. 그 때문인지 제창은 못하겠단다. 아니 다른 노래를 만들어 퇴출시낄까 고민 중이란다. '임을 위한 행진곡 잔혹사'는 진행형이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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