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시카고의 한 제과점에서 처음 만들어져 미국인의 열렬한 사랑을 받은 '트윙키'라는 과자가 있다. 손가락 크기의 노란 스펀지케이크 속에 흰 크림을 채워 만든 '트윙키'는 "방부제가 많이 들어간 설탕과 지방 덩어리"라는 비난 속에서도 오랜 시간 미국인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이 과자를 만드는 회사가 경영상 어려움으로 폐업을 하자 소비자들이 아쉬움에 과자 사재기에 나섰다. 마지막으로 한번 먹어 보자는 사람과 기념으로 보관하려는 사람들이 앞다퉈 사니까 5천 원짜리 한 상자 가격이 경매사이트에서 몇억 원까지 올랐다고 한다. 어쨌든 미국인의 사랑을 받은 과자 '트윙키'는 더는 생산되지 않아 세월 속에 묻힌 과자가 되는 순간에도 화려한 마감을 했다. 그런데 '트윙키'는 2000년에 이미 '영원한 미국의 상징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사라질 운명을 이미 운명을 알았는지 백악관 밀레니엄 위원회가 20세기 대표 상징물로 선정했고 2100년 1월 1일 공개될 타임캡슐에 들어갔다. 타임캡슐에 같이 묻힌 유품이 베를린 장벽 콘크리트 조각, 유전자 코드, 우주공간에서 본 지구 사진, 히로시마 원폭의 구름 사진, 휴대전화, 군번표 등이다. '트윙키'는 정크푸드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영광을 이미 누렸다.
타임캡슐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다시 개봉하는 것을 전제로 그 시대의 대표적인 물건 등을 모아 묻는 용기, 또는 그 용기를 땅에 묻는 것을 말한다. 나중에 꺼내보는 것을 전제로 무엇을 묻는 행위는 고대로부터 있었다. 오래 전 사람들의 생활이나 문화수준을 엿볼 수 있는 고분이나 왕릉, 이집트의 피라미드 등도 일종의 타임캡슐이다. 탑이나 불상 안에 있는 복장물도 개봉 시기가 정확히 정해지지 않은 타임캡슐이다.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배어 있어 역사의 지문을 채취할 수 있는 소중한 타임캡슐이다.
오늘날 개념의 타임캡슐은 1940년 미국 웨스팅하우스전기회사가 뉴욕만국박람회를 기념해 생활용품, 도서, 미술복제품 등 100종을 매설한 것이 세계 최초다. 5000년 후인 6939년에 개봉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래에 타임캡슐을 묻는 일이 많다. 회사나 학교, 자치단체에서 몇 주년 기념식을 겸해 타임캡슐을 묻곤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서울 정도 600년 기념 타임캡슐이다. 태조 이성계가 1394년 11월 29일(음력 10월 28일) 한양에 입성했으니까 600년이 되던 1994년 11월 29일 서울 중구 필동 남산골에 문물 600점을 묻고 400년 후 2394년 11월 29일 개봉하기로 했다. 품목을 찾아보니 재판기록과 아파트 매매 계약서와 속옷과 껌도 있었다.
타임캡슐이 원래 후손에게 문화유산으로 전하는 목적인 만큼 어떤 여과장치 없이 당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날 것 그대로 보여줘야 하는 것이니 정크푸드인 '트윙키'도 이상할 것이 없다. 속옷과 껌도, 재판기록과 아파트 매매 계약서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이 시간, 우리가 타임캡슐을 묻는다면 과연 무엇을 넣을까. 사실 그대로의 모습이라면 무엇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사실 그대로의 모습이 후손에게 진짜 낯뜨거워 우린 타임캡슐을 묻을 엄두도 못 내지 않을까.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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