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를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서합니다.> 이것이 증인선서 내용이다.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과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거부했다. 그들은 "재판이 진행 중이어서 유죄의 증거로 될 우려가 있으므로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선서를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조사 제도가 도입된 이후 증인이 불출석하거나 증언을 거부한 사례는 있어도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와서 증인선서를 하지 않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원세훈이나 김용판처럼 증인선서를 하지 않으면 청문회에서 위증을 한다 해도 위증죄로 처벌할 수 없다. 증인선서를 하지 않는 것은 사실 그대로 말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고 아예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자세로 국정조사에 나온 것이다.
야당에서는 "떳떳하지 못하고, 비겁함에 개탄한다"고 했는데 여당 의원은 "법정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이지만 여론 재판인 이곳에서는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것 같다"며 "비겁하다느니 떳떳하지 못하느니 그런 주장은 국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발언"이라고 이들을 감쌌다. 아무리 이 청문회가 정부, 여당, 경찰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다고 하지만 증인선서를 하지 않은 것은 입법부에 대한 모독으로 비칠 수 있는 만큼 좀 더 잘 짜인 각본이 있었다면 형식적으로라도 증인선서를 하지 않는 원세훈, 김용판을 향해 고함치는 여당의원이 있었어야했다. 마치 흉내만 내더라도. 그런데 그 속에 모이면 그 수준 외에는 생각을 잃어버리는 듯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증인을 보호하기에 바빠 <국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을 여당이 자초했다.
맥빠진 청문회였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불참해 3차 청문회는 제대로 열리지도 못했다. 그러나 국정조사는 국정원 선거개입 스캔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내막을 밝혀줬다. 국정원에 댓글 작성 전담을 위한 12개의 파트가 있었으며, 그중 한 파트는 네이버 같은 주요 포털을 담당하고 다른 파트는 오늘의 유머 같은 중소 커뮤니티를, 그리고 또 다른 한 파트는 트위터 같은 SNS를 담당한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얘기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하나 나왔다. 여성 내부 고발자이자 전 수서 경찰서 수사과장인 권은희 씨는 국정원 스캔들이 처음 발생했을 때 경찰이 사건 은폐를 시도했다고 충격적인 폭로를 했고 청문회에서 권과장과 팀이 상부로부터 조사규모를 줄이라는 부당한 명령을 받았고, 또한 상급자로부터 압력도 받았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권과장을 지지하는 온아인 청원서 페이지도 만들었다. 트윗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권은희 한사람을 만난 것만으로도 희망을 보았다. 여성의 몸으로, 협박 앞에서 전혀 굴하지 않고 자신의 도덕성을 끝까지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편, 네티즌들은 청문회에서 위증죄로 처벌받는 것을 피하려 증인선서를 거부한 원세훈, 김용판 증인을 맹렬히 비난했다. 그들의 행동은 오히려 역효과만 불러온 셈이다. 네티즌은 이렇게 말했다. <원세훈-김용판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거부함으로써 그들의 발언이 위증으로 입증될 경우 위증죄로 처벌받지 않도록 빠져나왔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정직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 국민에게 알린 셈이다.> 제 아무리 아웅해도 국민은 안다는 말이다.
헤럴드 김종백
이글은 온라인 매체 글로벌 보이스를 일부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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