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마다, 문화권마다, 각자의 언어마다 상대방에 대한 호칭이 있다.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연인을 부르는 호칭이다. BBC 방송이 얼마전 나라마다 다르게 쓰이는 사랑의 호칭을 소개했는데 영화 <펄프픽션>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애인을 부를 때 'sugar pop'이라고 한 것처럼 연인에 대한 호칭을 모아놓고 보니 역시나 달달한 표현은 여기에 다 있었다.
프랑스에선 애인을 ‘작은 양배추’(Petit chou)라고 부른다. 아기들의 동글동글한 머리, 부풀어 오른 빵을 연상시킨다. 프랑스인들은 또한 ‘나의 벼룩’이라는 말도 쓴다. 일부 역사가들은 과거엔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 벼룩을 잡아주던 행동이, 부드럽게 빗질해주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포르투갈어에선 애인을 양배추처럼 동그랗지만 좀 더 달콤하고 무른 호박(Chuchuzinho)으로 부른다. 미국에도 애인을 Pumpkin pie라며 호박에 비유한다. 한국에서는 못생긴 사람을 호박이라고 하는데 미국에서는 양볼이 통통하게 귀엽다는 뜻으로 쓰인다.
더 살펴보면 달콤한 표현은 더 많다. 스페인은 더욱 본격적으로 달콤해서 설탕 덩어리(Terron de azucar)라는 말을 쓴다. 당분이 듬뿍 든 열대과일을 많이 먹는 나라답게 인도네시아는 사랑하는 사람을 ‘내 마음의 과일’(Buah hatiku)이라고 부른다. 영어에 달콤한 표현은 sweetheart, sweetie, sweetie pie, honey, sugar 등등이 있다. 브루스 윌리스가 애인을 sugar pop(막대사탕)이라고 부른 것은 일반적인 호칭은 아니지만 달달하게 부른 것은 틀림없다. 중국에서도 요즘 세대는 영어 baby나 honey에 해당하는 뜻의 호칭을 쓴다. 심지어 '내 심장과 간처럼 소중하다'라는 뜻의 '心肝’이라고 부르는 것이 유행이라는데 그들 부모세대에게는 느끼한 표현으로 들린다.
그렇다고 연인의 호칭이 아주 단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여러분도 다 아시겠지만(혹은 그렇게 서로 비밀스럽게 부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둘만이 부르는 별명은 아주 다양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런 다양한 개인 간의 비밀 호칭을 다 나열할 수는 없고 그냥 국가별 보편적인 것을 소개한다. 리투아니아인들은 연인 사이에 동식물 이름을 호칭어로 즐겨 사용한다. 가장 흔한 연인 간 호칭은 아기고양이, 아기태양, 아기코끼리 등이다. 타이, 아랍 국가, 러시아 등에서도 애인은 동물이다. 우리도 가끔 좋으면 '짐승'으로 불리듯. 코끼리를 행운의 동물이라고 여기는 타이에선 연인을 ‘작은 코끼리’(Chang noi)로 부른다. 아무리 작아도 코끼리는 코끼리인데 만약 우리가 연인을 코끼리라고 부르면 연인관계가 계속 유지될까. 아랍에선 연인을 촉촉한 눈망울로 사냥꾼의 마음을 녹이는 영양(Ghazal)으로 표현한다. 러시아에선 ‘작은 비둘기’(남성형 Golubchik, 여성형 Golubushka)라고 한다.
우리는 어떤가. 애인 사이에 이름을 부르거나 둘만의 별칭, 자기야 등이 쓰이고 여성이 남성을 부르는 호칭으로 '오빠'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연인 사이에 오빠라는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사전적으로 보면 자신보다 나이 많은 남자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마법의 호칭이라고 한다. '오빠'라고 부르면 안 되는 것도 다 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빠라는 호칭은 가족적인 개념과 혼재돼 어른에게는 질책받는 말이다. 남편을 "우리 오빠예요"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하긴 '자기'라는 호칭도 스스로를 가리키는 1인칭 대명사로 상대방을 지칭하는 '어불성설'이었다.
그래서 남녀가 서로를 부를 수 있을 만한 대체용어를 찾는 운동이 젊은층에서 일고 있다고 한다. 아기자기한 사랑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남녀간 대등한 위상, 국제화 등이 함축돼 있고 결혼 후에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 용어를 찾아 보급하려는 운동이라고 한다. 마법의 호칭이라는 '오빠'도 구세대의 호칭이 될 신세가 됐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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