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한인 '아가페 합창단' 탄생>이란 기사가 올 3월 한인헤럴드에 나왔다. 매주 금요일 한인회관에서 연습을 하고 Thames Philharmonic Orchestra를 이끄는 유병윤 씨가 감독을 맡아 지도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사를 옮기면 <합창으로 영국 땅에 우리나라의 문화를 널리 알리려 계획되었다는 한인 합창단은 한국의 가곡, 클래식, 찬송 등을 준비하고 연습해 해마다 2회 정도 정기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며 합창단이 필요한 곳을 방문해 위로공연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보도가 나오긴 했으나 과연 합창단이 제대로 구성될 수 있을지, 그래서 목소리를 다듬고 모아 과연 발표회를 가질 수 있을지, 합창단이라고 모여서 어떤 결과를 낼지, 솔직히 나도 우리도 모두 그들을 잊었다.
그로부터 약 아홉 달이 흘러 지난 주말, 뉴몰든에 있는 성공회 교회를 빌려 런던한인합창단이란 이름으로 합창단의 첫 발표회가 열렸다. 사람 모으기 쉽지 않기로 유명한 영국 한인사회에 합창단을 보러 온 한인들이 많아 대단하다 했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그동안의 노력을 선보인 합창단의 결과물이 더 대단했다. 이날 1부에서 오페라 공연을 한 영국 성악가를 채워 합창단원의 수가 20명 남짓했으니 한 사람의 목소리가 일당백을 해야 했다. 애국가부터 아리랑까지 유병윤 감독이 참 혹독하게 담금질을 했구나, 눈에 선했다. 이날 독창까지 해야 했던 성악가 출신인 두 분의 에이스는 몇 사람의 몫을 했는지.
이날 공연을 보고 영국의 한인사회가 이렇게 건강할 수 있다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이제 영국의 한인사회는 이처럼 제대로 갈 수 있는 자정 능력이 충만한 만큼 위기상황이란 위기론을 제발 더 퍼뜨리지 말라는 서민적인 호소로 보였다. 이 표현이 실감 나지 않는다면 이날 공연을 보지 않으신 거다. 못 봤으면 말 말아야지.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영국한인합창단은 남과 북의 목소리가 하나 된 통일의 목소리다. 재영한인들과 재영탈북민이 함께 만든 최초의 남북 합창단이다. 더 거창하게 얘기하면 영국한인합창단은 과거 거의 10년째 표류했던 한인사회를 묶어주는 화합의 목소리다.
합창단원들의 얼굴은 그동안 오가다 마주친 그들이었다. 한복과 턱시도로 꾸미고 멋을 낸 그들은 그동안 이웃으로 살아온 평범한 그 얼굴들이었다. 아, 저사람도 노래를 하는구나, 하며 얼굴 찾는 재미도 있을 만큼 우리에게 특별한 주말 저녁을 선물한 그들은 남과 북에서 영국으로 온 우리 이웃들이었다. 그들은 합창단의 일원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들을 모은 사람도 이들을 지도한 사람도 이들을 후원한 사람도 그들이 진짜 실천으로 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아닐까. 진짜 목소리를 내야 할 데를 모르고 목소리 큰 사람만 많기로 유명한 이곳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진짜였다.
12월의 저녁. 우리는 어떤 모임에 어떤 모양으로 모이고 있는가. 런던한인합창단과 같은 남과북 통일의 목소리, 한인사회 화합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폄하하는 일부의 왜곡이 있다는데. 그들만의 모임은 무엇이 그리 대단할까. 글쎄 포장은 대단할테지만 실속은 이런 통일과 화합의 실천이 내심 부러웠던 거겠지.
런던한인합창단. 그 동안의 노력에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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