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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휘파람 함부로 불지 마라

hherald 2022.12.12 16:47 조회 수 : 4724

프랑스의 대중교통에 이런 포스터가 있다. 동굴 안 같은 곳에 지하철 봉 하나가 있고 불안한 표정의 여성이 이를 붙들고 서 있다. 여성 뒤로 사나운 모습의 곰이 여성을 노리고 있다. 시리즈물로 만들었는데 비슷한 모습의 여성을 숲속에서 늑대가, 바다에서 상어가 노리고 있다. 여성을 성희롱하는 남성은 곰, 늑대, 상어 같은 '짐승'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캠페인 광고다.

 

여성을 성희롱하는 행위를 '캣콜링 catcalling'이라 하는데 영국 옥스포드 사전에 '지나가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남성의 시끄러운 휘파람 소리 또는 성적인 발언'이라고 나온다. 영국 정부는 길거리 등 공공장소에서 여성에게 성희롱성 추파를 던지는 등의 행위에 대해 처벌을 강화하기로 했다. 직접적 접촉이 아닌 성희롱적 발언만으로 최대 징역 2년에 처할 수 있다. 발의된 법안을 보면 길거리에서 여성에게 음담패설을 하거나,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거나, 고의로 여성의 뒤를 따라가거나, 앞을 가로막거나, 외설스럽고 공격적인 몸짓을 취하면 모두 캣콜링에 해당, 처벌받는다. 자기 입 안에 손가락을 넣어 큰 휘파람 소리를 내는 울프 휘슬링 wolf-whistling도 지나가는 여성을 향해 했다면 처벌 대상이다.

 

'Cats against catcall'이란 말이 있다. 여성들이 주로 양아치들에게 하는 말이다. 우린 고양이가 아니니 캣콜링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공원이나 대학교 주변에 캣콜링 금지 표지판이 있는 걸 보게 되는데 No catcalling, End street harassmen라고 써놓았다. '노상 성희롱'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벨기에는 2014년에 이미 길거리 성희롱 금지법을 제정했다. 프랑스는 2018년에 법안을 통과했다. 유럽 국가 중에 영국은 한참 늦었다. 지난해 3월 사라 에버라드가 런던 거리에서 현직 경찰에게 납치 살해된 사건이 있고 난 뒤 대책의 일환으로 울프 휘슬링과 캣콜링을 금지하자는 계획이 나왔을 때 당시 보리스 존슨 총리는 "공공장소에서 발생한 성희롱을 특정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법 개정 논의에 반대한다"고 했을 정도다. 그 이전에 2017년, 여성의 다리 사이로 휴대전화를 밀어 넣고 사진을 찍는 '업스커팅'을 법으로 금지하자는 것을 보수당 크리스토퍼 초프 의원이 반대하고 나선 바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캣콜링을 당할 때 마주 보고 웃는 것은 최악의 대처법으로, 캣콜링을 하는 남성들을 더욱 부추기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한다. 웃어줄 일이 아니다. 프랑스 지하철 포스터처럼 추접한 짐승에게 웃음을 보내면 안 된다.

 

영국 17세 미만 여성들의 90%가 캣콜링을 경험한다는 조사가 있었다. 미성년 대상으로 이 정도라면 캣콜링 가해자의 아내, 딸, 누이도 다 경험한다는 뜻이다. 그래도 휘파람을 불어 재낄 일인가?

법을 만들어 여성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법보다 더 중요한 건 인식을 바꾸는 거다. 성희롱을 '사소한' 성희롱으로 여기는 인식 자체가 범죄다. 휘파람 함부로 불지 마라. 인식을 바꿔야 세상이 바뀐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jpg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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