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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묘서동처 猫鼠同處 - 스스로 된 도둑

hherald 2021.12.13 17:30 조회 수 : 4605

고양이가 12간지에 들지 못한 것은 쥐의 농간 때문이다. 그래서 고양이는 쥐만 보면 물어 죽이려고 달려든다. 물론 이런 속설을 믿는 건 아니지만 고양이와 쥐가 결코 친하지 않다고는 다들 생각한다. '톰과 제리'가 아니라도 쥐와 상극인 고양이 이야기는 세계 어디에나 많으니까. 
만화책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아트 슈피겔만의 <쥐>는 아우슈비츠의 참상과 이를 겪은 이들의 전쟁 후 분열된 삶을 그린다. 아트 슈피겔만의 부모는 유대인이며 아우슈비츠 생존자다. 작가는 아버지가 겪은 참상과 아우슈비츠 이후의 분열된 삶을 쥐와 고양이의 모습으로 기록했다. 여기서 쥐는 유대인은 쥐로 그려졌고 나치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나온다.

 

이처럼 고양이와 쥐는 함께 할 수 없는 동물인데 이 둘이 함께 있는 것을 나타내는 사자성어 '묘서동처 猫鼠同處'를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이다. 단순히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쥐를 도둑으로, 고양이를 도둑 잡을 사람으로 해석해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됐다는 말로 쓰인다. 올해 그런 일이 많았다. 땅 투기를 감독해야 할 이들이 땅에 투기하고 불법을 감시해야 할 이들이 범법자와 한통속이 돼서 나쁜 짓을 저질렀다. 

 

'묘서동처'는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빤다'는 '묘서동유 猫鼠同乳'와 함께 당나라 역사를 서술한 <구당서>에 나온다. 이야기가 있다. 소위 말하는 '당나라 군대'의 어느 군인이 자기 집에서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빠는 모습을 보게 됐다. 군인의 상관이 고양이와 쥐를 임금에게 바쳤다. 관리들은 상서로운 일이다, 복이 들어온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기뻐했는데 최우보란 사람만이 '이는 실성한 일'이라며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통상 쥐는 곡간에 몰래 파고들어 와 곡식을 훔쳐 먹고 고양이는 이를 막고 쥐를 잡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 역할인데 같은 젖을 빨아 먹고 산다면 원수 사이에 부정 결탁해 나쁜 짓을 함께 저지른다는 의미가 된다.

 

정약용의 우화시 '이노행 貍奴行'에 책임을 저버린 고약한 고양이가 나온다. <밤마다 초당에서 고기를 훔쳐먹고 독 항아리 뒤집어대고 단지를 깨뜨리네 / 하늘이 너를 낼 땐 본시 어떤 용도였나. 너로 하여금 쥐 잡게 해 백성 근심 덜려 했지 / 쥐는 본래 작은 도적, 쥐가 못하는 짓 네 놈은 마음대로라 / 뭇 쥐들 이제 와서 거리낄 것이 없어 / 훔친 물건 모아서 네게 뇌물 주고, 네 놈과 함께 다니는데 그 모습 태연도 하다> 정약용은 큰 도둑, 작은 도둑이 된 탐관오리들을 묘서동처라고 꾸짖었다.

 

남 말 아니다. 영국 한인사회의 크고 작은 모임들도 묘서동처하고 있지는 않는지. 제재받지 않는 하나의 권력이 되어가는 단체들, 감사가 제 기능을 하지 않아 부정이 관습이 되어 버린 단체는 구성원들이 좋든 싫든 묘서동처하고 있다는 말이다. 묘서동처는 스스로 도둑이 된 것과 다름없다. 연말에 한 번 더 새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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