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헤럴드 단상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의 죽음

hherald 2022.09.06 08:35 조회 수 : 4511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줄여서 소련(蘇聯), 20세기에 존재했던 나라다. 1922년에 건국한 인류 역사상 최초의 공산주의 국가로 1991년 해체되어 사라졌다. 지금은 사라진 나라, 소련의 마지막 최고지도자이자 공산당 서기장이었고 소련의 처음이자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가 지난 8월 30일 사망했다. 이제 소련도 고르바초프도 없다.
그가 죽자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정보의 자유와 공개, 흔히 '개방'이라 한다), 페레스트로이카(정치·경제적 개조, 흔히 '개혁'이라 한다)로 대표되는 급진적 정책으로 세계 냉전 시대를 종식시킨 인물이었다며 애도했다. 그는 '냉전'을 끝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렇지만 러시아에서 그의 평가는 다르다. 그가 권력의 정점에 있던 기간에도 그의 위상은 점차 나쁜쪽으로 바뀌었다. 1985년 집권 초기엔 '고르바초프!'라고 환영받았다. 1988년 집권 중기엔 '고르비!'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1988년에 소련의 경제성장률이 5%를 기록해 "고르비라는 함성이 울리면 자유도 울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1991년 마지막엔 '고!'로 불렸다. 'GO!' '그냥 꺼져!' 이럴 정도로 인기가 나락에 떨어졌다. 
러시아에서 그는 무엇보다 '영광스러운 소련'을 해체되게 만들고 소련을 멸망시킨 인물로 악평을 받는다.
 
우리나라는 당시 고르바초프가 촉발한 세계사적 변화에서 혜택을 받았다. 노태우 대통령이 그와 한소 정상회담을 갖고 수교했다.(고르바초프가 일본을 다녀오는 도중에 제주도까지 가서 만났다) 북방정책으로 북한을 고립시키고 동유럽 국가들과 교류를 확대했다. 경제적 이득도 컸다.
북한은 당연히 그를 싫어한다. 북한의 '세계력사' 교과서에 '사회주의 배신자'라고 나온다. 북한은 그의 개혁, 개방 정책으로 인해 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국가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북한 경제가 어려워졌다. 지옥 같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도 고르바초프 때문에 비롯됐다고 평가할 정도다.
 
소련이 러시아로 바뀐 뒤 고르바초프에 대한 러시아의 평판은 최악이었다. 1996년 러시아 연방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0.5% 득표했다. 참담한 성적표를 받고 정치에서 물러나서도 후임 보리스 옐친에게 푸대접을 받았는데(당시 러시아 경제와 복지제도가 붕괴한 탓도 있지만) 1달 연금을 은행에서 달러로 바꾸니 몇십 센트에 불과했다고 한다. 루이뷔통, 피자헛 등 외국 기업 광고에 출연해 생활비를 벌 정도였다.
 
러시아인들은 소련의 영광이 재현되기를 원한다.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러시아인들에게 구소련의 몰락을 가져온 고르바초프 보다 구소련 재건의 꿈을 주는 푸틴이 제격이다. 푸틴은 구소련의 붕괴를 "20세기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푸틴은 고르바초프의 장례식에 가지 않았다. 그의 장례식은 옐친 대통령의 장례식에 비해 매우 조촐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소련도, 푸틴도, 아직도 그를 제대로 용서하지 않나 보다.
 
 
 

헤럴드 김 종백단상.JPG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