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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대한민국 국가 기념일 중에 '순국선열의 날'이 있다. 193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처음 제정했으니 역사가 깊다. ‘순국선열 殉國先烈’은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국내외에서 국권 침탈을 반대하거나 독립을 위해 항거하다가 순국한 분을 일컫는다. 즉 독립운동가들이다. 흔히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으로 부르는데 호국영령은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장에 나가 전사한 분들이다. 순국선열의 날은 11월 17일인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날이다. 을사늑약의 치욕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 이날로 지정한 것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기 전에 영국에서 최초의 순국선열이 나왔는데 바로 대한제국 주영공사관의 대리공사 이한응 열사다. 이한응 공사의 순국일은 5월 12일이다. 그는 국권이 상실되는 을사늑약의 비극을 미리 알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영국과 일본의 2차 영일동맹에 관한 비밀 협약의 초안이 1905년 5월 10일 영국 외무부에 전달됐다는데 이 내용을 알게 된 후 좌절해 5월 12일 공사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역사는 기록한다. 최초의 순국이다.

 

열사가 순국한 당시 주영공사관 건물은 지금 아파트로 사용하고 있다. 얼스코트 트레보버 로드 Earls Court Trebovir Rd 4번지. 외관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나 그곳이 대한민국의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라는 표식은 전혀 없다. 아는 이도 적고 찾는 이도 드물다. 그동안 대한민국의 많은 대통령이 런던에 왔지만, 이곳을 찾은 대통령은 없었다. 철저히 외면받는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다.
네덜란드 헤이그의 이준 열사 기념관과는 대우에 온도 차가 크다. 이준 열사 기념관은 고종황제의 밀사로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된 열사가 일본과 영국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헤이그에서 1907년 7월 14일 병사한 곳을 기념하여 지은 기념관이다. 물론 숭고한 뜻을 살리고자 어느 독지가가 열사가 묵었던 호텔을 사비로 사들여 기념관을 개관(1995년)했지만, 이곳은 두고두고 독립운동 유적지로 사랑받고 있으면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인, 고위공직자들이 반드시 들리는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그에 비하면 이한응 열사는 재영한인(교민)들의 순수한 열정에 기대어 그나마 그 정신을 되살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재영한인들은 1980년대부터 열사의 동상을 만들어 기리자며 '이한응 공사 추모사업추진회'를 결성해 열사의 생전 활동과 순국을 알리고 동상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을 했다. 주낙군, 채우병, 고 장민웅 씨 등 한인사회의 원로들이 동분서주해서 제작한 열사의 동상이 지금 대사관 입구에 모셔져 있다. 1993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을 겸해 제막식을 했다.   
 
5월 12일은 이한응 공사의 순국일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순국선열, 이제 한국에서는 거의 잊힌다고 해도 영국에 사는 우리는 열사를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주영대사관에 들어서면 한인들의 정성으로 마련한 열사의 동상이 있다. 열사의 뜻을 살리고 전하려 했던 한인사회 어른들의 노력을 우리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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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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