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만나는 런던-1
프롤로그
팝이라는 이름의 공룡
우리가 가장 많이 들으며 살아가는 음악은 무엇일까? 트로트라는 괴상한 이름의 전통가요일까? 아니면 너무도 고상하여 지레 주눅이 드는 클래식일까? 아니, 아닐 것 같다. 아무래도 팝(pop)일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그럴 것 같다. 동네 찻집에서, 라디오에서, 드라마에서, 영화에서, 마치 우리들 시간의 낯선 배경음처럼 존재해온 것이 팝이기 때문이다. 좋아하건 싫어하건 우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현대 지구의 시간들과 거리들을 지배하는 음악은 팝이다. 오늘 날의 세계인들은 할 수 없이 팝을 들을 수 밖에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안방에 파고들어 우리와의 기묘한 동거를 시작한 서양문화, 그 첨병처럼 존재하는 것이 팝이다. 팝은 어느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의 귀를 시작으로 오감을 지배하는 무서운 음악이 되어 있다. 무섭지 않다고? 아니, 무섭다. 어느 날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노래 잘한다는 한국 가수들이 가창력으로 승부한다는 프로그램이었다. 인순이를 보니 아레사 플랭클린이나 티나 터너가 떠올랐다. 임재범을 보니 로버트 플란트나 이언 길런이 떠올랐다. 자우림을 보니 얼터밴드들이 떠올랐다. 바비킴을 보니 레게가수들과 블루스가수들이 보였다…… 왜 그럴까? 우리는 우리의 기준을 우리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새 팝은 우리의 기준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이러한 영향력 지대한 팝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연구는 지극히 미약하였다. 아니 전무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저 미국과 영국의 잡지들을 번역하여 그들의 시각을 그대로 믿거나 답습했을 뿐이다. 우리의 생활 속에 파고든 객식구인 팝을 우리는 너무도 과소 평가하여 무시한 것은 아닐까? 그사이 팝은 우리의 청각과 시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우상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물론 이것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오늘날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공히 팝의 지배 하에 놓여 있다. 팝은 공룡 같은 몸집을 지니고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느끼한 콩나물대가리 군단이다.
지금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팝을 진정한 우리 시각으로 바라보고 연구하려는 자세가 아닐까? 작금 우리 언론의 장기인 침소봉대의 소재가 되고 있는 케이팝(Korean Pop)을 생각할 때 마다 불안하다. 팝을 연구하지 못한 나라에서 어찌 제대로 된 팝이 나올 수 있는지, 대중 음악인 팝이 보여줘 왔던 시대적 당위성에 대해 케이 팝은 어떤 한국식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우리가 정녕 팝의 정신은 배우지 못하고 커스텀만 배운 것은 아닌지, 심히 불안하다. 우리에게 팝이 소개되기도 전 미국 대륙을 휩쓸고 지나간 걸그룹 전성시대에 대해 우리의 언론은 도대체 알고 있기나 한 것인지……
‘음악으로 만나는 런던’은 이런 불안감에서 시작되는 글이다. 물론 글 쓰는 이가 살고 있는 런던을 중심으로 영국 대중음악의 이야기들을 해보려고 한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먼저 팝이라는 공룡의 정체부터 파악해야겠다. 팝은 현재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다. 첫째, 넓은 의미로서의 팝이다. 쉽게 미국과 영국의 대중음악을 의미하는 것이다. 라디오가 보급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라디오에서 틀던 대중적 요소를 갖춘 미국의 음악들이 팝으로 발전한 것이다. 따라서 팝은 절대적으로 영어로 된 대중음악을 의미한다. 프랑스 샹송도 이태리 깐소네도 팝이라는 동네에 얼씬도 하지 못했던 것은 바로 영어의 엄청난 위력 때문이다. 팝이 발전하면서 교묘하게 팝의 지분을 요구하며 팝의 또 다른 본가가 된 나라가 영국이다. 영어가 영국에서 건너간 것이듯이, 미국의 민요들도 영국의 전통음악들이 건너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좁은 의미의 팝이다. 팝은 오늘날 락, 재즈, 블루스, 소울, 컨트리, 포크, 레게, 월드뮤직 같은 여러 장르들을 집어 삼켜 버린 상태다. 그 팝 속에 파고든 다른 장르와 구별하기 위하여 장르로서의, 이를테면 순수혈통의 팝을 의미하는 것이다. 보다 쉽고 편한, 대중적인 요소를 중요시하는, 장르로서의 팝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이 두 번째 의미의 팝은 상당한 수준의 마니아가 아니라면 구별해내기 힘들 것이다.
물론 ‘음악으로 만나는 런던’은 첫 번째 즉, 넓은 의미의 팝을 이야기하려는 글이다. 미국, 영국의 시각이 아닌 한국의 시각으로 바라본 글들이 되기를 바란다. 글 쓰는 이가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케이팝이 탄생하기를 간절히 기대하는 한 사람이 쓰는 글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팝마니아가 아니라도 재미로 읽을 만한 글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팝을 싫어해, 국산만 좋아해”하면서 외면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상냥하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당신이 노래방에서 부르는 노래의 구십프로는 팝의 영향권 아래 있음, 당신이 좋아하는 가요도, 영화음악도, 드라마의 주제가도, 심지어 교회 음악도 팝의 영향권 아래 있음.”
자, 이제 여행을 시작한다. 외로움의 주사위를 사정없이 던지겠다. 발품만 파는 허허로운 여행이 될지, 맹물이 꿀맛인 알찬 여행이 될지, 런던은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런던의 만만치 않은 바람의 공력을 알고 있다. 단단히 채비를 차리고 있는 중이다. 팝이라는 공룡의 서식지 런던으로 떠나는 지금, 기온은 낮고 바람은 차다.
(좁은 지면 관계상 특별히 혼란스럽거나 중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 영어표기를 생략할 예정이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유튜브(Youtube)라는 사이트를 잘 활용하여 언급된 음악들을 직접 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는 낙후된 팝에 대한 우리의 식견을 높여주기에 충분한 어마어마한 사이트라고 생각한다.)
글쓴이 최동훈은 카피라이터,디자이너로 활동하였으며 광고회사를 운영하였다.
어느 날 런던에 매료된 그는 문화가 현대인을 올바로 이끌어줄 것이라는 신념을 붙들고 런던을 소개하는 일을하며살고있다.
londonv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