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지막 규칙을 언뜻 보면 상류층과 하류층의 차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손을 안 본 것 같은 상태라는 기준에서 보면 물론 그 차이를 모를 수 있다. 그러니 차종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상류층의 경우 더러운 차는 유럽 차일 가능성이 높다 (만일 영국 차라면 지프차, 미니, 혹은 아주 큰 벤틀리, 다임러, 재규어) . 하류층의 지저분한 차는 영국, 미국, 일본 차일 것이다.
거의 같은 기준이 차의 내부에도 해당된다. 빈틈없이 정리된 차는 주인이 중중층이나 상층 노동계급임을 알려주고, 쓰레기, 먹다 남은 사과, 비스킷 조각, 구겨진 휴지들과 함께 엉망이라면 차 주인이 상류층이거나 하류층이다. 작은 단서로 더 세밀하게 구분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의 차가 깨끗할 뿐만 아니라, 양복 재킷이 자동차 제조사가 사려 깊게 만들어놓은 조그만 옷고리에 조심스럽게 걸려 있으면, 당신은 중하층 혹은 하류 중중층일 것이다 (다른 계급은 그냥 의자 뒤에 걸어버린다). 당신이 재킷을 차 옷고리에 달린 옷걸이에 건다면 분명 중하층이다. 만일 아루 잘 다려놓은 셔츠를 차 옷고리에 달린 옷걸이에서 내려서 '중요한 미팅' 전에 갈아입고 간다면 노동계급 출신의 중하층이다. 자신의 사무직 신분을 열렬히 자랑하고 싶은 거다.
자동차 관리 실내 규칙은 주로 성차에 따하 조금씩 달라진다. 여자들은 대개 남자보다 좀 지저분한 편이다. 사탕을 싼 종이, 티슈, 장갑 한 짝, 스카프, 지도, 노트, 그리고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남자들은 ;자동차 과시욕'이 더 있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 면에는 좀 까다로워, 잡동사니를 서랍에 집어 넣고 여기저기 흩어져 어지러운 것에 못 견뎌 하는 편이다. 그럼에도 상류층과 중상층 남녀 모두 개 때문에 지저분하고 어지러운 데는 아주 관대한 편이다 (이런 관용은 하류 노동계급, 하류층과 앞에서 본 다른 예외와 같다). 실내는 개털로 덮여 있고 의자 덮개는 발톱에 할퀴어 군데군데 자국이 나 있다.중중층과 중하층은 개를 창살로 막은 뒷부분에 가두어놓는다.
중하류층은 백미러에 개 냄새나 다른 냄새를 없애기 위한 나무 모영의 납작한 방향제를 달아놓는다. 그들의 집 역시 공기정화제, 화장실 탈취제, 카펫 방향제 그리고 각종 탈취제로 가득하다. 그러나 중중층은 백미러에 달린 나무 모양 방향제든 뭐든 뭔가 매달려 있으면 그게 하류층 표시하는 것을 안다. 실은 중중층 이상 상류층의 차 어디에서도 장식품을 볼 수 없다. 뒤 창문 쪽에 놓인 고개를 끄덕이는 개 인형은 물론이고 유리창에 달린 인형이나 귀여운 동물 형상물은 모두 중하층과 노동계급 표시기이다. 또한 범퍼 스티커, 창문 스티커도 노동계급 표시인데, 이것은 휴가 행선지와 여가생활 취향까지 말해준다. 여기 노 (NO) 스티커 규칙에도 두 가지 예외가 있다. 중하류층과 중중층의 뒤 유리창에 붙은 고결한 동물보호 자선단테 스티커와 으스대는 듯한 '아이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가 그런 것이다. 중중층의 것만 기저귀 회사 로고가 붙은 게 아닐 확률이 높다 (경계선에 있는 중상층의 차에도, '아이가 타고 있어요' 스티커가 붙어 있을 수 있으나 다수의 중상층 특히 지식인들은 이를 비웃는다).
움직이는 성 규칙
도로 규칙에서 내가 언급한 '개인 영토' 요인은 우리와 자동차의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포드가 1949년형 모델을 '움직이는 거실'이라 묘사한 것은 영토와 안전의식에 대한 인간의 뿌리 깊은 욕구에 착안한 것이다. 이런 심리는 문화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인 것이나 영국인에게는 유난히 특별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집에대한 강박관념은 이번에는 사생활에 대한 병적인 집착으로 자동차와 연결되기 떄문이다.
영국인의 집은 그의 성이다. 그리고 영국인이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어딘가로 갈 때는 그 성의 일부가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는 이를 대중교통에서도 보았다. 영국인은 대중교통에서도 사생활의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인다. 우리는 주위에 있는 승객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고 계속해서 그들과 접촉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들의 자기기만은 움직이는 성 (자동차) 안에서는 훨씬 더 수월해진다. 근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와는 상관없다는 식의 방관자적인 자세로 보호막을 칠 필요 없이, 실제 단단한 강철과 유리로 된 보호막 안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혼자 있을 뿐만 아니라 집에 있다고 간주할 수 있는 것이다.
타조 규칙
그래서 차 안에 있어 사생활이 연장되었다는 화상의 결과 영국인은 이상하게도 전혀 영국인답지 않은 행동을 한다. 타조가 자신의 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듯이 차 안에서 자신들이 투명인간인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운전자가 코를 후비고, 이상한 부분을 긁고, 라디오 음악에 맞추어 장단을 두드리면서 노래하고, 자신의 파트너와 고함을 질러가며 싸우고, 키스하고, 애무한다. 우리의 기준으로는 사생활이 보장된 자기 집에서나 하는 일인데, 주위의 운전자들과 행인들이 모두 보고 있는데도 서슴없이 그런 행동을 하고 있다.
움직이는 성이 제공하는 자기 집 같은 안전감과 누구도 내개 하를 입힐 수 없다는 생각이 공격적인 탁억제감을 부투기는 것 같다. 비교적 공손한 영국인도 자기 차 안에서는 안전하다는 핑계로 다른 운전자나 행인들을 무례한 손짓과 욕설로 위협하곤 한다. 또 많은 경우에 그 보호막 밖에서는 절대 하지 않을 말도 한다.
옮긴인 :권 석화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초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