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독일이 제3의 성을 인정할 예정이다. '제3의 성'이란 '남성'이나 '여성'이 아닌 또 하나의 성별이다.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흑백의 성별 구분이 아니라 남자도 여자도 아닌 다른 성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제3의 성을 인정하는 것은 소위 성 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독일이 제3의 성을 인정하는 방식은 부모가 출생신고서에 아이의 성을 남성(M)과 여성(F)으로 기재하는 대신 공란으로 두고 나중에 아이가 자신의 성을 기재하는 것이다. 어느 독일 잡지에서는 M, F 외에 제3의 성을 의미하는 X를 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정부에 요구해왔다고 한다.
성 정체성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대체로 사회적 약자다. 태어날 때부터 신체의 외형적인 특징이 남성과 여성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사람이나 성전환자, 동성애자, 양성애자 등이 제3의 성에 해당한다. 이들에 대해 인식이 너그러운 사회나 국가는 드물다. 그나마 나은 유럽에서도 독일이 처음이요, 관심을 가진 국가라고는 핀란드 정도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은 우리 사회에 분명히 있다. 그러니 공존해야 하고 우리는 그 점을 인정해야 한다. 아니 제3의 성은 이상할 것 없이 인류의 시작과 함께 있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헤르메스와 바람피워 낳은 헤르마프로디토스는 남성과 여성의 몸매를 모두 갖춘 양성인간이다. 양성인간을 지칭하는 의학용어 '허마프로다이트(Hermaphrodite)'는 여기서 나왔다.
과거에 이들이 혐오의 대상이었던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여성적 정체성을 지닌 이들을 '히즈라'라고 부르며 경조사에서 의례를 집전하게 했다. 인디언 사회에는 '베르다셰'라는 양성인간이 있었는데 두 가지 영혼을 지녔다고 특별 대우를 받았다.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여성적 역할을 하는 이들은 경외의 대상이었다. 성 소수자의 인식이 무지막지하게 나쁜 오늘날과는 많이 달랐다.
놀랍겠지만 세계 최초로 성 소수자를 '제3의 성'으로 인정한 지구상의 나라는 네팔이다. 2007년 네팔 대법원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개인이 시민권 증명서상의 성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우리나라의 성 소수자 인권은 바닥이다. 제3의 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성 소수자에 대해 매우 공격적이고 차별적이다. 따라서 성 소수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밝히는 것도 힘들다. 그나마 홍석천이나 하리수같은 사람이 나와서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낫다는 홍석천과 하리수에게도 '사람같이 살아라', '한국인의 수치다'와 같은 인신공격성 댓글을 다는 것을 보면 편견으로 가득찬 시선은 여전하다.
그렇지만 '제3의 성'은 분명히 있다. 멸시받고, 배척당하고, 양지로 나오지 못하는 절박한 소수자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다. 차별받아야 할 이유가 없는 이들을 괜히 차별하는 편협함이 국가, 그 나라가 바로 후진국이다.
헤럴드 김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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