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그대여,
그대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길은 어디였나요?
혹시 광야를 걸어본 적이 있으신지요?
광야에 대해선 많은 글을 통해서나 사람들은 이론적으로 설명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실제의 광야는 모든 이론을 파하거나 논리적인 상황들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이론으로 아는 것이나 혹은 영상으로 접해서 어렴풋하게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으로는 삶을 안다고 말할 수 없어야 합니다. 그 현장에서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은 현장을 논할 자격이 되지 못하지만 원래 옛 말에 서울 가보지 않은 사람이 서울에 대해 더 잘 설명한다는 말이 있듯이 광야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광야에 살고 있는 몇몇 친구가 있습니다. 시간이 더해가면서 광야의 친구들이 들어갑니다. 한 사람으로 시작했다고 그의 가족이 친구가 되고, 가족은 다시 가문으로 확산되어 갑니다. 광야에 살고 있는 그들의 생각하는 광야는 나와 같은 이방인 나그네들이 생각하는 광야와는 전혀 다른 양상입니다. 광야는 그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그래서 때론 광야는 목숨을 걸어야 할 그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두려움이 있다면 광야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라 합니다. 광야에 사는 사람들은 외부의 사람들을 조심하거나 경계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문명화된 세상을 경험으로 알지 못합니다. 이는 문명인들이 광야에 사는 사람들을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나 같을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광야가 인생의 전부이며 세상의 중심이라 여깁니다.
그들이 가진 문화는 당연히 모든 사람에게 중요한 보편적인 문화일 것이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광야에 사는 친구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요소 중 하나입니다. 문명 세계에 사는 문화인들은 자신이 경험한 문명과 문화적 요소가 절대적인 것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른 문명 세계와 문화권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고 융화할 수 있게 됩니다.
관광객들이 만날 수 있는 광야에 사는 사람들과 소위 찐 광야에 사는 이들과는 다른 양상입니다. 처음 광야를 방문했을 때 목동 아이는 저를 향해 돌을 던졌습니다. 두려웠습니다. 어떻게 할까? 도망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이가 던지는 돌이 사람을 향해 정조준 하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아이가 돌을 던지는 것이 나를 타격하기 위함이 아니라 위협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다음 방문을 했을 때 또 아이는 돌을 던졌습니다. 처음보단 두렵지 않았습니다. 돌을 던질지라도 피하지 않고 가만히 미소지으며 아이를 집중해서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한 발자국씩 나아갔습니다. 아이도 더 이상의 돌을 던지는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주머니에 있는 달콤한 사탕을 주었습니다. 아이는 두려운 가운데서 사탕을 받아들었습니다. 내가 먼저 사탕을 까서 먹어 보이면서 그렇게 먹으라 했더니 아이도 사탕을 까서 먹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미군들이 군용트럭을 타고 지나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당시 동네 아이들은 미군들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향해 돌을 던지곤 했습니다. 어른들은 미군들을 향해 좋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미국놈이라 했으며 그들의 눈이 파란 것은 어린아이의 간을 빼서 먹어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순진했던 동네 아이들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 때 누군가가 따끔하게 미군을 향해 돌을 던지면 안된다고 야단을 했다면 그 누구도 미군을 향해 돌을 던지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광야에 사는 배드윈들 역시 낯선 이방인을 보면 두려웠을 것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방인을 향해 돌을 던진 것은 그 사람이 미워서가 아닙니다. 낯선 이방인의 등장에 혹시나 양을 훔쳐 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돌을 던졌다고 했습니다. 위협을 무릅쓰고 그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의 마음은 바다같이 넓어집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줄 만큼 이방인을 대접하려 합니다.
문명인들에게 광야는 불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광야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서 한 걸음씩 광야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를 만나고 그의 부모를 만나게 되는 것이 반복되면서 주변 사람들을 만나는 만남의 반경이 넓어졌습니다. 그러면서 광야의 삶을 배우게 됩니다. 한걸음 열어주면 그 한걸음씩만 광야를 향해 조금씩 깊이 들어갔습니다.
광야에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먹는 것, 씻는 것, 화장실 문제, 그리고 이나 벼룩이 옮겨붙는 것이나 그들이 건네는 차를 마시는 것이 큰 곤욕입니다. 3월 중순이 되면 요르단의 광야에 들꽃이 만개합니다. 너무도 아름다워서 마음을 빼앗기고 차를 멈추고 해 질 녘 까지 들꽃을 바라볼 때도 있게 됩니다. 꽃 동산을 이루는 곳에서의 꽃도 아름답지만 메마른 광야에서 피는 들꽃이 주는 감흥은 세상의 그 어느 꽃 보다 화려하고 아름답고 매혹적입니다.
광야에 핀 들꽃은 어른 손톱만큼만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꽃이 보입니다. ‘나태주’님의 풀꽃의 시는 광야에 피는 꽃을 연상케 합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광야의 들꽃이 그러합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질 않습니다. 광야의 꽃은 화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광야를 지날 때 먼 하늘에서 날아온 어렴풋한 향기가 스쳐 갑니다. 정확한 지점을 알 수 없지만 어딘가에 들꽃의 군락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향기의 발원지를 향해 걷고 또 걸어야 합니다. 비 한방울 내리지 않은 곳에 들꽃 군락을 발견할 때는 마치 인생의 무거운 짐을 모두 내려 놓을 듯 한 기쁨이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광야에 사는 사람들은 꽃을 보지 않습니다. 일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광야의 들꽃은 그들에게 시간의 점을 찍을 수 있는 이정표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광야의 꽃은 며칠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오늘은 대충 보고 내일 다시 와서 자세하게 봐야지 하고 그 다음날 찾아가면 꽃은 온데간데 없고 메마르고 먼지만 풀풀 날리는 광야만 있을 뿐입니다.
광야는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물 한모금이 소중합니다. 생수병을 광야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건네 줍니다. 그 다음주에 가면 친구는 그 생수병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벗이 준 선물이기에 너무도 소중하기에 두껑을 따서 물을 마시지 않고 생수병 자체를 보관하는 순진함이 있습니다.
광야는 영혼의 창이 되기에 충분한 곳입니다. 광야의 친구들에게 선진 문명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됨을 그들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내가 무언가를 그들에게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찾았지만 결국은 그들에게서 인생의 깊이를 배우게 됩니다. 광야의 울림은 내 영혼을 적시는 단비와 같습니다. 광야에 피는 들꽃의 향연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꽃 군락보다도 아름답고 매혹적입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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