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이 존 F. 케네디 공연예술 센터 이사장이 됐다. 통상 케네디 센터라 불리는 이곳은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예술 공연장이다. 트럼프 본인은 '큰 영광'이라며 흡족해하지만 케네디 센터를 이끌어온 예술인들은 반발하고 있다. 문화예술계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가 벌써부터 '미국 문화의 등대 역할을 하는' 이곳에도 자신의 충성파들로 사람들을 바꾸는 등 무법자 같은 보복인사 행태에 예술인들은 스스로 짐을 싸고 있다.
트럼프는 2020년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하면서 당시 아카데미상 4관왕 수상한 영화 <기생충>을 비판한 바 있다. 사실 비판 수준이 아니라 그냥 '문화적 저급함'을 드러냈다고 할까. 그는 "올해 아카데미 수상작은 한국에서 만든 영화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라며 "한국이 무역과 관련해 우리를 죽이고 있다. 무역에서 우리를 때리고 빌어먹을 영화로 아카데미상을 탔다"고 했다. 영화 얘기인지, 돈 얘기인지, 문화에도 돈 계산을 우선 갖다 붙이면서 자신을 싫어하는 아카데미와 문화계를 욕한 거다. 그것이 자기를 지지하는 이들을 자극하는 효과도 있으니까.
영화 <기생충>을 비판할 당시 그는 대통령 신분이었다. 그래서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미국의 기생충', '백악관에 기생충이 있다'는 혹독한 비난을 샀다. 미국 언론은 기생충의 수상을 혹평하는 건 반미국적 행위라고 했다. 미국의 건국 원칙은 다양성을 찬양하며, 언론 자유와 다양한 관점을 장려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의 비전은 확실히 '우리는 미국이다, 우리가 최고다'라는 발상으로 '생각의 어두운 면'이 있다고 했다.
당시 트럼프는 <기생충>을 비판하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선셋 대로>와 같은 미국 영화를 좋은 영화로 꼽았다. 그러자 어느 전문기자는 "두 영화의 주인공은 백인이었고, 두 영화의 감독도 백인이었다. 백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 두 영화가 보여준 미국은 위대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문화계와 트럼프는 사이가 좋지 않다. 그의 편에 선 미국 문화인은 극소수다. 심지어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널드 슈워제네거 같은 보수적인 할리우드 배우들도 그를 반대한다. 그래서일까. 예술 기금, 인문학 기금 같은 예산을 대폭 축소하는 걸로 보복한다. 애초에 이런 예산을 아예 없애야 한다고까지 했다. 쯥, 대통령씩이나 돼서...
이번에 봉준호 감독의 신작 영화 <미키 17> 개봉을 앞두고 런던에서 대담 행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영화 속 악역 캐릭터(주인공 미키와 대치하는 독재적인 지도자 캐릭터)가 트럼프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취지의 질문이 나왔다. 트럼프라고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살짝 오렌지빛이 도는 얼굴',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에 불만' 등의 얘기로 트럼프를 떠올리게 했고 참석한 이들 모두가 공감했다.
그래서 진행자가 반감으로 악역 캐릭터를 만들었냐고 묻자, 봉 감독은 "내가 그렇게 쩨쩨한 사람은 아니다"라고 했다. 관객석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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