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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우리나라의 고유명절인 설날은 다시 서게 하는 날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신정 보다는 구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유구한 시간 전해져 온 우리 민족의 소중한 관습 때문입니다. 삶은 때로 힘들지라도 국가적으로 정해진 절기로 인하여 다시 서게 하고 힘을 얻게 하는 날입니다. 삶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생을 나타내는 생(生)의 한자는 소가 외줄을 탄다는 의미로 소우(牛)에 줄을 나타내는 일(一)자 입니다. 소는 발굽을 가지고 있어서 결코 외줄을 탈 수 없는 신체 구조입니다. 그러한 구조로 외줄을 타야 하는 것이 인생이라는 의미에서 생이라 합니다. 

 

대한민국은 교수협의회에서는 2001년부터 시작하여 매 연말이면 그 해를 압축할 만한 사자성어를 전국 대학교수들에게 이메일을 통하여 추천을 받고 가장 많은 수를 얻은 것은 그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교수신문에 발표합니다. 2024년을 마무리하는 사자성어는 “도량발호”입니다.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다’라는 뜻입니다. 전국 교수들이 뽑은 2위는 “후안무치” ‘뻔뻔스럽고 부끄러움이 없다.’ 3위는 “석서위려” ‘큰 쥐가 집을 위태롭게 한다.’입니다. 선택된 사자성어는 지도층의 부정부패와 무책임한 행동으로 인해 사회적 신뢰를 잃은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것임을 누구나 알게 됩니다.

 

공자의 사상을 이어 발전시킨 유학자인 맹자는 기원전에 살았던 인물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스승입니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에 ‘양혜’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양혜왕은 백성들에게 힘 있고 강력한 왕이 되길 원했습니다.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휘어잡을 통치를 할 수 있는지 맹자에게 물었습니다. 군대의 힘을 막강하게 길러서 강력한 철통 정치를 하여 백성들에게 군왕으로서 군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맹자는 왕에게 “무항산무항심”이란 말로 충언을 올립니다. 무항산무항심이란 일정한 생업이나 재산이 없으면 한결같은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생계가 안정되지 않으면 올바른 마음을 가질 수 없을 뿐 아니라 왕에 대한 존경심도 가질 수 없기에 여기저기에서 백성들의 요소가 일어날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기원전에 있었던 사건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같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는 국민의 안전과 살길을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요즘은 뉴스를 보기에도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불경기가 IMF 때나 코로나 정국 시대보다 더 어렵다 합니다. 상가의 공실이 늘어나고 대출을 받아서 작은 식당을 오픈했을지라도 문을 닫고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소상공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뉴스는 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대통령은 지난해에 우리나라가 최고의 흑자를 보인다는 기자회견을 했지만, 현실적인 삶에 와닿지 않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작년 연말에 느닷없이 계엄령을 선포하는 뉴스를 보고 많은 국민은 의아해했습니다. 결국, 그 일로 인하여 사상 초유로 대통령의 신분으로 영어의 몸이 되었다는 것은 국가적, 국제적 망신이 아닐 수 없게 됩니다. 우리나라는 최고의 문명과 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왜 정치인들은 되돌이표를 반복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그러한 상황이다 보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사자성어가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의미의 도량발호로 선정된 것은 우리 민족의 부끄러운 역사의 현장을 증언하는 사자성어입니다. 이는 정치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든 국민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입니다. 사방을 둘러 보아도 암울한 이야기만 들려올 뿐입니다. 

 

국민이 좋아하는 사람, 특히 정치인들을 좋아하고 따르는 이유는 그의 인물됨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가 가진 정치적 철학과 국가관, 가치관, 인생관 등을 통해서 그를 따르게 됩니다. 만약 그가 가진 국가관이나 가치관, 인생관이 옳지 않다면 그를 따를 이유도 없습니다. 만약 권력의 힘만으로 통치하려 한다면 모든 국민은 목숨을 걸고 국민 저항권으로 그와 싸울 것입니다. 이것이 민주주의 기본질서입니다. 

 

모든 나라가 그러했습니다. 민주주의 산실인 영국 뿐 아니라 프랑스 역시 그러했습니다. 전통으로 세습되어온 왕의 권력은 국민에 의해 와해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왕이 가진 철학이나 가치관, 국가관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동학혁명은 대표적 국민 저항권의 좋은 사례입니다. 양반들의 횡포가 심해지만 소작민들은 살기 위해 하늘과 같은 권력자를 향해 대항하여 승리한 것입니다.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진 가치관과 국가관입니다. 왕정 정권에서는 권력을 세습 받은 왕에게 이러한 가치관이 담긴 철학을 검증할 시간을 갖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던 역사를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사에서 발견할 수 있게 됩니다. 결국, 발전한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민주주의 꽃은 국민이 직접 통치자를 선출하는 것입니다. 그냥 뽑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가치관, 국가관, 세계관, 인생관이 집약된 철학을 깊이 있게 통찰하여 투표로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검증을 위해 많은 선의적 논증을 토론을 국민 앞에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이러한 철학이 없음에도 그를 좋아하는 것은 사람을 신성시하는 우상숭배와 같으며 독재정권의 장을 창출하는 밑거름이 될 뿐입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정치 선호도는 마치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을 위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당이 하면 무조건 옳고, 그 사람은 무조건 옳다라는 것은 사람을 신성시하는 민주주의를 역행하려는 행보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도량발호”를 선택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뽑은 사자성어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을 것입니다. 올해를 마무리하는 한자는 기쁨과 비전이 있고 행복을 자아내는 그런 사자성어가 선택되길 국민의 한 사람으로 마음을 모아 봅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park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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