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릅니다. 이른 새봄에 피는 꽃은 잎을 틔우기 전에 먼저 꽃을 피우는
특징이 있습니다. 봄꽃이 질 무렵 연한 싹을 틔우고 꽃과 잎의 조화로움을 이루다 꽃은 떨어져
열매를 맺습니다. 봄에 핀 꽃은 여름을 맞을 수 없습니다. 여름은 여름에 피는 꽃이 있기에 여름
꽃에 자리를 내어주어야 합니다. 여름의 꽃은 잎을 먼저 띄웁니다. 잎이 울창 해 져야 그 잎을
젖히고 세상에서 가장 화려할 만큼 자신만의 색상으로 꽃을 피워냅니다.
사람들은 꽃에 대해 오해를 하곤 합니다. 꽃은 화려하고 아름답고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의
향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착각입니다. 그러나 모든 꽃이 화려하거나 아름다운 목적만으로
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향기가 있는 꽃도 있겠지만 전혀 향기가 없는 꽃도 존재합니다.
지구상에 피어나는 모든 꽃이 화려함을 자랑하지는 않습니다. 자기만의 특색으로 피워낼
뿐입니다. 꽃은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피어납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지라도 꽃을 피워 자신이 해야 할 생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꽃은 과정일 뿐이지 결과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이기심은 더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을 보기 위해
DNA를 조작해서 크고 아름답고 시들지 않은 꽃을 만들어 냈습니다. 꽃 자체를 얻기 위해서
과학의 힘을 빌려서 새로운 꽃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꽃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꽃의 최종 목적은 열매를 얻기 위함입니다. 열매를 얻기 위해선 벌과 나비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창조된 꽃 그대로를 간직하지 않고 인간의 힘을 빌려서 만들어진 꽃에는
벌과 나비들이 몰려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원래의 창조 목적은 열매를 얻기 위해 꽃을 피우는 과정이지만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꽃의 목적은 꽃 자체이기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결격 장애를 가지고 있게 됩니다.
만들어진 크고 튼실한 꽃보다는 자연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를 볼 때 숙연한 마음이
듭니다. 창조 질서에 순응하는 꽃은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자기의 몫을 다해서 최선을 다해 꽃을
피우고 나비와 벌의 도움을 받아 열매를 얻기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가을꽃의 대명사는 코스모스입니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 대한민국의 가을은 코스모스와 그 위에
살포시 앉은 빨간 잠자리와 드높은 하늘 겁니다. 원래 코스모스는 한국의 꽃이 아니라 멕시코가
원산지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한국까지 씨앗을 가져다 심은 것이 시간을 더해 가면서 한국
가을의 전형적인 꽃 그림이 되어 주었습니다. 아마도 원산지인 멕시코보다 더 많고 다양한
코스모스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일 겁니다.
한국의 가을 코스모스는 하늘과 가장 잘 어울립니다.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코스모스
군락에선 걸음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꽃 한 송이는 아름답지 않지만, 그것이 군락을 이룰
때 마음을 움직이고 생각이 그곳에 머물게 하고 걸음을 멈추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꽃을 보는
것은 단순한 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꽃이 가진 마력을 넘어 인생을 보는 힘이 있게 됩니다.
꽃이 피는 시기가 다른 것처럼 인생도 그러합니다. 누구는 꽃부터 피우고 잎을 나중에 피우는
이도 있는가 하면 한여름 더위에 피어나는 꽃도 있습니다. 코스모스와 같이 가을 하늘을 수놓을
매혹적인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한겨울 추위를 이기고 피어나는 꽃도 있습니다. 어느 꽃이 가장
아름다운지는 등위를 매길 수 없습니다.
이름 모를 들풀의 꽃도 최선을 다해 피워내기에 그의 숭고한 생의 몸부림에 걸음을 멈추어
조심스레 걷게 합니다. 어떤 나무는 꽃을 피우지 않고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무화과라 합니다. 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실상 열매 자체가 꽃입니다. 비록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을지라도 이 땅에 태어난 생의 목적을 열매로써 완성하게 됩니다.
내 인생의 꽃은 어떤 모습일지 꽃을 보면서 생각하게 됩니다. 화려함이 없지만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의 삶을 통해 꽃을 피워냅니다. 박수갈채를 받는 것이 생의 목표가 아니기에 최선을 다해
최상의 생명의 주께 과정을 올려 드리는 것이 인생의 과정입니다. 꽃은 꽃으로 끝이 나면 어떻게
보면 잎만 무성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그 뿌리부터 말라지는 고통을 받을까 자신을 살펴보게
됩니다.
꽃은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를 뿐입니다. 먼저 피는 꽃이 있고 나중에 피는 꽃이 있습니다. 이른
봄에 피는 꽃이 있는가 하면 한여름 더위를 이기며 피는 꽃이 있으며 가을하늘을 수놓은
아름다운 꽃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맹 추위와 눈보라를 뚫고 피우는 꽃도
있습니다.
화려한 꽃이 있지만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을 화려함도 아름다움도 없는 이름 모를 들꽃도
존재합니다. 꽃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삶을 완성해 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인생이 그러하듯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으로 과정을 완성해 가는 숭고한 꽃을 피우는 과정과 같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