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가 새날임과 동시에 정복해야 할 미지의 세계입니다. 사람들은 인생살이를 전쟁터라 부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만큼 삶이 고단하다는 증거입니다. 행복해야 삶의 가치가 깊어지고 넓어지는 법입니다. 전쟁터라 부르는 것은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선진 문명은 경쟁하며 살도록 발전되었습니다. 하루라도 경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한 구조입니다. 최재천 교수는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라는 책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생명 이야기’를 2014년에 출간했습니다.
현대는 무한경쟁 시대입니다. 학생들에겐 석차가 있습니다. 친구일지라도 석차로 인하여 인생의 진로가 바뀌게 됩니다. 직장인들도 그러합니다. 진급이라는 관문을 수없이 통과해야 하는데 관문 하나를 통과하기 위해선 다른 동료보다 월등한 성적표를 만들어 내야 하는 고통이 따르는 법입니다. 함께 차를 마시고 한 공간에서 근무하여 마음을 나누는 벗이 되기도 하지만 다음 관문의 결승점에서는 석차가 나뉘는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다 보면 함께 공존하는 법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더불어 살아가지 않는다면 공멸하게 되는 것은 이미 사회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식당이 하나만 있는 것보다 식당 군락을 이루게 되면 홀로 독점할 때 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려오게 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이 몰린다는 것은 경제적 이익을 창출할 기회이며 함께 살 수 있는 사회적 힘이 됩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이 버거운 것은 실상 과거인 어제의 방식대로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오늘이라는 현실은 실상 아직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입니다. 미지의 세계에서는 미지의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데 과거에 살던 방식으로 살아가니 자신을 다스릴 수 없어서 짜증 나고 혼란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삶의 권태가 나는 것은 일종의 과부하가 걸렸기 때문입니다. 어제의 삶은 어제의 삶으로 마감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미지의 세계 이마로 더 발전된 모습으로 오늘을 살아야 오늘을 흡수할 수 있게 됩니다.
짐승은 어제와 오늘과 미래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인간은 짐승과 곤충의 세계에서 지혜를 얻곤 합니다. 지혜의 왕의 대명사인 솔로몬은 그의 아들에게 교훈하기를 개미에게서 배우라 권면했습니다. 솔로몬이 지목한 아들은 그의 대를 이어 이스라엘의 4대 왕이 된 르호보암 입니다. 르호보암은 오늘날로 말하면 0.1 퍼센트에 해당하는 로열패밀리로서 금수저 그 이상의 환경을 가진 자였습니다. 르호보암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이병헌 주연으로 2012년에 개봉된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씻는 것부터 옷 입는 것까지 모든 것을 시녀들이 수종을 듭니다. 심지어는 용변을 보는 것과 뒤처리 역시 시녀들이 담당했습니다. 본인은 손가락 까딱하지 않아도 될 만큼의 권력을 이용하여 과분한 섬김을 받았습니다. 아마도 르호보암은 광해군보다 더 특별한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의 일상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의 아들을 향해 게으르다며 개미에게서 배우라는 훈계를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어르신들에게서 좋은 삶이란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는 거였습니다. 결혼할 때 흔히들 했던 이룰 수 없는 약속 중 하나였습니다.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가 아니라 고생을 시키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실상 고생하지 않은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으며 성공할 수도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성공은 고생이라는 자양분을 먹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르호보암은 소위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을 만큼의 권력으로 인해 섬김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 결과 그의 정치 인생에서 나라가 분열되는 아픈 역사의 시작점이 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실상은 다른 세계입니다. 어제는 어제의 세계라면 오늘은 어제의 연속인 것처럼 느껴질 뿐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어제의 삶의 방식으로 오늘을 산다면 과부하가 걸리게 되는 것이고, 그것은 곧 감당할 수 없는 분에 넘치는 용량으로 지치게 됩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은 성장해야만 새로운 오늘을 이끌어 갈 수 있게 됩니다. 날에 이끌려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오늘을 이끌어 가려면 새롭게 발전되고 개혁되어야만 오늘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이끌어 갈 힘이 있게 됩니다.
최근에 손가락 두 매듭만 한 USB 메모리를 구매했습니다. 용량이 2테라라는 말에 이렇게 작은 기기에 그렇게 많은 용량을 저장할 수 있다는 것에 반신반의하는 맘으로 샀습니다. 용량의 크기는 클지라도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속도에서는 실망을 금할 수 없게 됩니다. 크기가 작다 보니 몇 가지만 주입을 하려 해도 속도는 현저하게 떨어져서 그 용량만큼 정보를 입력하려면 적어도 몇 날 며칠이 걸려야 할 만큼의 느린 속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도 그와 같음을 깨닫게 됩니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는 것은 오늘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수용할 수 있는 한계가 확장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고 안병욱 교수는 그의 살아생전에 강조했던 것은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였습니다. 살아 있음은 사랑하고 배우는 것으로 증명돼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배움은 요람에서 무덤까지입니다. 그래서 인생을 마무리할 시점이 가장 큰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고 확장된 자아를 가지고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어제의 연속이지만 어제와 다른 날로써 아직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미지의 날이 분명합니다。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지혜는 어제의 방식이 아닌, 더 발전되고 깊어진 자아로 오늘을 살아내야 합니다。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어 쇠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오늘을 많이 살아낸 역사를 가지기에 나이든 만큼 성숙해지고 영글어 가는 것입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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