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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2,574만 원짜리 구멍 뚫린 청바지

hherald 2024.08.19 16:40 조회 수 : 802

할리우드 여배우가 입은 비싼 청바지로 말이 많다. 라이언 레이놀즈의 아내인 블레이크 라이블리가 영화 시사회에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에서 제작한 청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1만 9천 달러, 한화 2,574만 원짜리였다고. 광부들의 작업복에서 시작해 패션으로 승화된 것은 알겠는데 이제 명품 시장을 만드는 청바지의 변신이 놀랍다.

 

아시다시피 청바지는 19세기 미국에서 금을 찾아 서부로 향하던 시기에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만든 제품이다. 유대계 독일인이었던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만들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기원은 이렇다. 처음에 군용 텐트 천을 대량 주문 받아 제작했는데 초록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염색해 납품을 거부당했다. 재고를 안고 낙심해 술집에 갔는데 광부들이 찢어진 작업복을 수선하는 모습을 보고 남아도는 질긴 천으로 광부용 바지를 만들어 보자고 시작했는데 대박이 났다. 튼튼하고 때가 묻어도 잘 표시 나지 않았다. 처음 청바지는 싸고 편하고 막 입을 수 있는 옷이라서 사람들이 좋아했다.

당시 금을 캐는 광부는 주머니에 공구를 넣고 다녔다. 광산의 일하는 공간은 좁았다. 아무리 튼튼한 실로 바느질을 해도 옷이 뜯어지고 주머니는 터졌다. 그래서 옷감에 리벳을 박아 더 튼튼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 작업복을 1950년대 청춘스타들이 패션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제임스 딘은 '이유 없는 반항'에서 청바지에 흰 티셔츠, 가죽점퍼를 입고 출연했다. 그가 입은 청바지는 반항적인 젊은이를 상징하는 문화가 됐다. 한국인에게 청바지를 알린 이는 배우 트위스트 김이다. 그는 1964년 영화 '맨발의 청춘'에 청바지, 청재킷을 입고 나와 이후 '청바지 1호' 스타가 됐다. 2010년 유언으로 "청바지를 입혀 화장해 달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청바지는 1960년대에 깡패들이 많이 입었고, 1970년대에는 청년의 상징이 됐고, 교복 자율화가 시작된 1980년대 들어서자, 청바지는 교복이 됐다.

 

청바지가 브랜드가 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 본격화됐다. 상표가 눈에 띄는 청바지에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물론 비싼 청바지 제품이 상표가 잘 보이도록 했다. 

고급 청바지 시장이 형성되자 명품 브랜드에서도 청바지를 만들었다. 디올, 생로랑, 발렌시아가, 셀린느 등. 이런 명품 브랜드에서 만든 제품은 청바지 원형은 지키되 그 브랜드의 특색을 입혀 만드니까 관리와 세탁도 까다롭다. 유명 연예인이나 상위 1% 부유층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 이례적인 청바지라서 '싸고 막 굴릴 수 있는 옷'이라는 처음 청바지의 모습과는 한참 멀다.

 

이번에 등장한 2,574만 원짜리 청바지는 허벅지부터 발꿈치까지 이어지는 부분에 꽃무늬 자수와 함께 구멍이 뚫린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근거 없는 속설이지만 무속신앙에서는 찢어진 청바지는 거지가 될 복장이니 절대로 입지 말라고 주장한다는데... 해당 산업의 전문가들이 보는 청바지의 적정가는 약 13만 원이고 그동안 장 폴 고티에, 돌체 앤 가바나, 랄프 로렌 같은 고급 브랜드의 최고가 청바지도 대부분 300-400만 원 정도였다는데 이번에는 많이 올랐다. 

 

돈을 주고 청바지를 사는 것과 그 브랜드를 사는 것이 합쳐진 금액이라고 하지만 서민 입장에서 청바지의 위상을 어디 둘까 참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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