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10월 26일, 영국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 하원 제6호실에 국회의원과 교수 등 당시 영국의 각계 저명인사 62명이 참석했다. 일제 강점기 한국의 독립을 지지하는 친한파 영국인들이었다. 한국인으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런던 주재 외교위원이었던 독립운동가 황기환이 참석했다. 이날 한국친우회 Friends of Korea'라는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는 단체를 결성한다. 그러니까 3.1운동 이듬해인 1920년에 친한파 영국인들이 웨스트민스트에 모여 한국 독립지원 단체를 만든 것이다. 이로써 영국 웨스트민스터 국회의사당은 대한민국의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가 된다.
한국의 독립유공자로 포상된 외국인은 모두 70명. 그중에 영국인은 6명, 한국의 독립을 크게 도운 유럽인은 대부분 영국인이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영국은 일제의 한국 통치를 지지하는 측면이 강했지만, 당시 한국의 실상을 직접 보고 경험한 영국인들은 국가의 입장과 다른 길을 걸었다. 한국친우회 결성에 앞장선 프레더릭 매켄지도 그중 한사람이다.
영국 <데일리 메일> 신문기자였던 그는 1904년 러일전쟁 취재차 처음 대한제국에 발을 딛는다. 종군기자로 활동하던 당시 대부분의 서양인이 막연히 생각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무능하고 부패한 대한제국을 일본이 개혁해 고치고 근대화시켜줄 것으로 믿고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잔혹한 일제의 참모습을 보고 친한·반일로 생각이 바뀐다. 당시 영국과 일본은 매우 긴밀한 관계였기에 영국 기자인 그는 한국에서의 취재 활동에 있어 많은 혜택을 받는다. 외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지방으로 내려가 의병 활동까지 취재할 수 있었다. 그는 충북 제천, 강원도 원주 등 첩첩산중 깊이 숨어 활동하던 의병을 찾아가 열악한 환경에서 빈약한 무기로 싸우는 그들의 활약상을 생생히 기록했다. 그가 경기도 양평에서 촬영한 의병들의 모습은 매우 유명하면서도 희귀한 자료다. 이 사진과 그의 이야기는 인기 드라마였던 <미스터 션샤인>에도 소개됐다.
하지만 반일기자로 찍힌 그의 기사(주로 일제의 만행을 생생히 기록한 것)들이 신문에 실리지 못하자 그는 <대한제국의 비극 Tragedy of Korea>이라는 책을 써서 일제의 만행을 고발했다. 3·1운동, 일제의 제암리 학살 등 꾸준한 그의 취재기록들은 영국 의회를 비롯, 곳곳에 배포되어 영국 내에 일던 반일정서와 궤를 같이해 영국 의회에서 극동 문제를 논의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그 결과 로버트 뉴맨 바트 경을 회장으로 뉴먼 하원의원, 존 클리퍼드 박사, 존 워드 육군 대령 등 62명의 저명인사가 '정의와 자유를 위하여 싸우는 한국을 돕고 지지할 목적'으로 한국친우회를 결성한 것이다. 한국친우회 결성 소식은 당시 유력지였던 <맨체스터 가디언>과 <더 타임스>에 나란히 실렸다.
한국친우회가 결성된 지 94년 후, 매켄지가 사망한 지 83년이 지나 2014년 7월 8일 주영대사관은 맥켄지의 손녀 니콜슨 매켄지 여사와 가족을 초청해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된 매켄지의 훈장을 전수했다.
매켄지, 웨스트민스트 6호실, 한국친우회... 이 모두가 우리 해외 독립운동의 유산이다. 영국에서, 우리는, 10월 26일을 기억해야 한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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