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아리는 세상에 태어나, 그러니까 부화해서, 껍데기를 깨고 나와 하루 이상을 살지 못한다. 병아리 감별사가 부화한 지 24시간이 지난 병아리를 감별해서 수컷이라 판단되면 바로 분쇄기로 통하는 파이프 구멍으로 버려진다. 수평아리는 알을 낳지 못하고 육계로 키우려 해도 암컷만큼 성장이 빠르지 않다. 병아리 감별사는 키울 가치가 있는 암평아리를 찾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키울 가치가 없는 수평아리를 버린다. 이렇게 도살되는 수평아리가 한 해 40~60억 마리 정도 된다고 한다.
병아리의 항문을 손으로 열어 그 안을 보고 암수를 구분하는 병아리 감별 기술은 1920년대 일본의 수의학자가 개발했다. 그래서 1960년대까지 병아리 감별사는 대부분 일본인이었다. 일본이 강세였던 이 직업에 1960년대부터 한국인 감별사들이 등장해 좋은 기술을 발휘하자 세계 각지에서 한국인 병아리 감별사가 환영을 받았다. (동양인의 검은 눈동자가 병아리 감별에 유리하다는 설도 있다)
영국에 한국인 병아리 감별사가 온 것도 이 시기다. 1964년 앵글로 재팬 회사가 한국가금협회(1964년 한국부화협회로 명칭 변경)에 해마다 병아리 감별사를 초청하겠다고 제안한다. 첫해 8명의 감별사가 선발되는데 윤경중 씨가 1965년 1월 5일 노동허가서를 받고 영국에 온다. 영국에 온 최초의 한국인 병아리 감별사였다. 1966년 11월에 맹종술 씨가 역시 병아리 감별사로 온다. 당시 해외에 나간 병아리 감별사 7인 중 2명이 영국에서 근무했다. 영국은 한국인 병아리 감별사를 환영해 노동허가서를 잘 줬는데 이후 영국 이민을 목적으로 감별사 자격을 받는 한국인이 많아졌다. 영국 현지인들에게 병아리 감별사는 어렵고 기피하는 직종이다.
한국인 감별사가 많이 간 나라는 독일이다. 1967년부터 갔으니 영국보다는 늦지만 더 많은 수가 갔다. 2018년 어느 자료를 보니 <현재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병아리 감별사의 60%가 한국인일 것으로 추산되는데, 유럽에만 300명이 거주하고 독일에도 100여 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했다. 6, 70년대에 외화를 벌러 광부와 간호사가 갈 때 전문 직업인으로 독일에 갔던 병아리 감별사가 많았다. 독일 의사보다 월급이 두 배나 많았다고 한다.
독일이 내년부터 수평아리 대량도살을 금지한다. 독일에서만 매년 4천만 마리의 수평아리 도살되는데 불법은 아니지만, 동물보호단체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다. 독일은 병아리가 부화하기 전 달걀 단계에서 암수를 감별할 수 있는 기술을 이미 개발했다. 그래서 수평아리가 부화할 달걀을 분쇄하는 것이다. 병아리를 죽이지 않으니까 no- kill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독일 정부는 동물보호의 중요성이 경제적 이익보다 크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병아리 감별사라는 직업이 독일에서 더 존재할 수 없게 될 전망인데 지금도 병아리 감별사 양성 학원에서 <기술 경쟁 시대에 타 기술은 시시각각으로 변동이 있어도 감별기술은 영구적으로 변화가 없습니다>라고 홍보한다.
병아리 감별사, 기술의 100년 세월이 문제가 아니라 기술의 가치조차 퇴색할까 안타깝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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