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 능력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희생하여 쌓은 노력의 열매입니다. 능력은 스스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마부작침과 같은 자기희생, 자기 다듬음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입니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이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몇 년을 갈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고 여겨지는 쇠뭉치인 도끼를 갈아서 세상에서 가장 뾰족한 바늘로 만들 수 있을까요?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마부작침의 유래는 당나라의 시선으로 불린 이태백에 얽힌 실제적인 이야기입니다. 태백의 아버지는 아들의 깊은 학문을 위해 상의산(象宜山)이란 곳으로 보냅니다. 어렸을 때부터 총명했던 태백은 그곳에서 배우는 학문은 이미 알았던 것들이어서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그곳을 떠나기로 하고 산에서 내려옵니다. 작은 냇가에서 쉬고 있는데 한 노파가 무엇인가를 갈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큼직한 도끼를 돌에다 갈고 있었습니다. 태백은 노파에게 물었습니다. 노파는 바늘을 만들기 위해서 도끼를 간다고 대답했습니다. 순간적으로 태백은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를 시성이 될 수 있도록 훈련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학문을 능력이 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학문을 학문으로 끝나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문 자체가 능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이 배운 사람인데 사회 생활하는 일에 있어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능력과 학문은 일치하지 않는가 봅니다. 학문은 이론적이라면 능력은 삶의 현실을 이끌어가는 힘입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도 사회생활이 부진한 이유는 현실적인 삶과 학문과의 차이 때문일 것입니다. 요즘은 고학력 무능력자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모두가 대학을 나오고, 많은사람들이 유학을 다녀왔기 때문에 학벌만으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능력을 키우는 것은 삶의 태도에서 만들어지는 보석입니다. 하루아침에 보석으로 쌓인 탑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섬세한 땀 흘림 속에서 맺혀지는 것입니다. 태백의 눈에 비쳤던 한 노파가 미련하게 도끼를 갈아서 바늘로 만들려는 땀 흘림의 자세에서 능력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현대의 젊은이들은 모두가 컴퓨터의 전문가들입니다. 그럴지라도 막상 소속된 단체가 요구하는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면 만들 수 없습니다. 컴퓨터를 잘 다루지만 실제로 필요한 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것은, 자기 취미로 컴퓨터를 활용했기 때문입니다.
능력이란 내게 쌓인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보여줄 수 있는 섬김의 자세입니다. 많이 배워서 최고의 학문을 하고 있을지라도 세상을 향해 그 지식적인 부분이 능력화되지 않는다면 썩은 물과 같습니다. 높은 산으로 올라갈수록 물은 맑아집니다. 그러나 그 물은 아래로 흘러 흘러 거대한 강울 이룹니다. 강물은 한곳으로 모이게 됩니다. 이스라엘과 요르단 양국에 국경하고 있는 죽은 바다라 칭하는 사해가 있습니다. 사해는 지구에서 가장 지표면이 낮은 곳입니다. 해저 395m에 있습니다. 그래서 헬몬산에서 내려온 맑은 물이 갈릴리 호수에 모이고 그것이 요단강이 되어 사해로 모이게 됩니다. 그 후로는 그곳의 물은 세상을 향해 흐를 수가 없어서 사해에는 어떤 미생물도 살 수 없는 죽은 바다가 됩니다.
학문의 세계가 그러합니다. 아무리 최상의 것을 교육받았다 할지라도 그것이 사회로 흘러나가지 않는다면 죽은 바다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세상을 향한 능력이 되기 위해서는 작은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큰 사람이기 때문에 작은 것을 볼 수 없다고 한다면 그는 결코 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길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들꽃 한 포기에 감동할 수 없다면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은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작은 것이 모여 큰 산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작은 것이 모여 능력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큰 것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큰 것을 품으려면 작은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말이 있습니다. 집 앞에 큰 산이 있어서 세상을 볼 수 없어 산의 흙을 수레에 담아서 발해만까지 운반하여 버리기로 했습니다. 한번 운반하는 데 일 년이 걸리지만 90세에 가까운 노인은 그 일을 쉬지 않고 했습니다. 미련한 일이지만 아버지가 그 일을 하다 죽게 되면 아들이, 또 그 아들이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황제가 그 이야기를 듣고는 군사들을 풀어서 산을 평지로 만들게 했다고 합니다. 작은 일은 결국 큰일을 도모하는 계기가 됩니다. 큰 뜻을 품었다면 그 뜻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는 작은 일들에 마음을 쏟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이 모여 큰 산이 되는 진실 앞에 겸손한 자만이 말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능력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박심원 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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