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있는 색채 연구소 '팬톤'이 2020년의 색으로 '클래식 블루'를 선정했다. 1963년에 생긴 이곳은 2000년부터 해마다 '올해의 색'을 선정해 발표하는데 이는 인테리어, 패션, 제품 디자인 등 여러 디자인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파랑, 파란색이라고 쓴다. 미국, 영국 국기의 바탕색이며 나토와 유럽연합을 상징하는 깃발의 바탕색이기도 하다. 서유럽인들에게 ‘좋아하는 색’을 물어보니 절반 이상이 파란색을 선택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특히 선호하지만 사실 세계 공통으로 나라 문화 인종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이 선호하는 색 1위는 파란색일 것이다.
유럽인들이 지금은 선호한다지만 그리스와 로마 시대 파란색은 야만의 색이었다. 어둡고 미개하며 품위 없는 죽음의 색이었다. 로마인은 켈트족과 게르만족의 파란색 눈을 혐오했고 카이사르는 적에게 겁을 주기 위해 몸에 파란색을 칠하는 관습을 가진 이들이라는 글을 남겼다. 지금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성 입구에서 얼굴과 팔에 푸른색을 칠하고 관광객들을 즐겁게 맞이하는 브레이브 하트의 멜 깁슨 분장을 한 켈트족 전사가 바로 문명을 갖지 못한 야만의 얼굴이었다. (로마인은 모든 악마를 파란색으로 그렸다)
파란색이 대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중세에 들어와서인데 성모 마리아의 영향이 크다. 파랑이 여성의 색으로 마리아의 의상에 등장한다. (빨강은 남성의 색으로 예수의 의상에 많이 나온다) 종교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 성모 마리아를 그린 성화에서 신성함과 고귀함을 의미하는 색으로 파란색이 사용된다. 왕이 앞장서 마리아의 의상을 따라 파란색을 입으니 왕족과 귀족이 따르고 나중에는 모든 계층이 파란색 옷으로 바뀐다. 사회 질서가 파란색으로 재편되었다고 할까.
블루 Blue는 물론 우울하다는 뜻도 있다. 음악의 블루스 Blues도 여기서 나왔다. 괴테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파란색 재킷을 입었다. 파란색 재킷은 번민하는 젊음의 표상이 되었고 베르테르의 죽음을 모방해 자살한 젊은이들은 파란색 재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20세기에는 청바지가 등장해 반항, 젊음, 도전 정신의 파란색이 유럽과 미국에서 가장 즐겨 입는 옷 색깔이 됐다.
미국의 색채 연구소가 올해의 색으로 파랑을 꼽은 2020년은 우리 식으로는 경자년 庚子年, 쥐띠, 쥐 중에서 백서 白鼠, 흰 쥐의 해다. 여기서 하얀색의 역사를 얘기하자면 그 또한 유구해서 파랑이든 하양이든 의미 없는 색이 어디 있으며 또 허투루 할 색이 과연 있을까. 물론 색에 의미를 붙인 건 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지만. 신년이 파랑이 되든 하양이 되든 소중하지 않은 새해가 없듯이 못난 색깔도 없다는 말이다.
헤럴드 김 종백
런던 코리아타운의 마지막 신문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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