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세상을 향해 울분을 터트리며 분노하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됩니다. 별로 큰 일이 아님에도 분노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분노하는 이유를 그의 인격 때문이라 일괄적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게 됩니다. 인생을 살아 온 만큼 세상이 불공평하고, 불이이익을 당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통계적으로 불공평, 불공정, 불이익을 많이 당할수록 성품이 거칠어지고 공격적이며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공평해 지는 것이 아니라 빈부격차가 벌어지며 불공정해져 가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됩니다. 아무리 공평, 공정, 공익을 외치는 사회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구호에 불과할 때가 많게 됩니다. 실제로 맞닥뜨리는 삶의 현장은 믿을 세상이 못 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기에 충분합니다.
세상이 눈부시게 발전할수록 불공평해 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이 불공평하다 하여 모든 것을 분노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세상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문제가 아니라 세상의 주역인 사람들의 욕심이 불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불공정한 사회일수록 세상을 향해 돌을 던질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함을 절감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정신이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나라만이 공평할 수 있습니다. 처음 된 자 나중 되기도 하고, 나중 된 자 먼저(마19:30)되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7장 11-12절에 베뢰아 사람들과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신앙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두 지역을 비교하여 베뢰아 지역 사람들은 극찬을 아끼지 않은 반면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사도행전을 기록한 사람은 누가입니다. 두 지역을 비교하여 극찬과 극폄을 한다는 것은 여간 위험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개인적인 평가도 조심해야 하지만 공개적인 평가는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분노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서신서를 받아 보는 사람들이 두 지역 모두가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테면 좀 억지스러운 비유지만 킹스톤 지역과 윔블던, 두 지역을 비교하면서, 혹은 경상도와 전라도 지역을 언급하면서 한 지역은 월등하고 다른 한 지역은 그렇지 못하다 하면 월등한 지역의 사람들이 듣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못한 지역은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분노하게 될 것입니다.
베뢰아 지역은 데살로니가 지역보다 우세했습니다. 개역한글에서는 ‘신사적’ 이라 했으며, 흠정역 성경에서는 ‘고상하다’, 개정개역성경은 ‘너그럽다’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 말의 헬라어는 ‘유게네스’로서 그들은 출신배경이 월등하며, 좋은 가문, 귀족 계급 출신임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 보다 비교적 고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삶의 여유가 있어서 새로운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있어서 사도 바울의 설교를 듣고 구약성경을 자세히 상고하기 시작했습니다. 베뢰아에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의 대다수가 헬라의 귀부인이나 지도계층 사람들이었기에 초대교회에서 굉장한 기대를 하게 됩니다. 그것은 현실교회에서도 그러합니다. 교회의 자랑이 되기도 하며 기대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반면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배타적이었습니다. 설교를 듣고는 의심하였으며 성경을 잘 믿지 않았습니다. 교회에 오면 이상한 질문만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베뢰아 사람들은 초대교회 역사에 큰 획을 그을 것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외에 그 어디에도 베뢰아 사람들의 신앙 흔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던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신앙은 일취월장 하여 성경에 기록되게 됩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살전1:2-3) 교회 공동체 안에서도 이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신앙의 출발을 화려하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사업을 시작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운영하는 기업이라며 공동체에 광고를 하며 떠들썩하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시작은 화려했지만 시간이 경과 될수록 미약해 지는 경우가 있게 됩니다. 반대로 시작은 그리 화려하지 않습니다. 마치 데살로니가 사람들처럼 신사적이거나 고상하거나 너그럽지 못하며 출신 배경도 자랑할 것이 없어서 교회에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사람이 회개하고 새사람으로 거듭난 이후 교회의 중심인물이 되는 경우입니다.
세상이 불공평하다 돌을 던지지 말고 교회가 공평하지 못함에 대해 회개해야 합니다. 세상은 교회의 수준입니다. 교회가 타락하는 만큼 세상도 타락하는 것이고, 교회가 거룩한 만큼 세상은 공정해 지는 것입니다. 베뢰아 사람처럼 출신 성분이 좋다고 자랑할 것이 아니요, 반면 데살로니가 사람들처럼 보통사람들일지라도 침체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비록 시작은 화려하지 못할지라도, 전통 있는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고, 가문이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주어진 삶에서 한 걸음씩 믿음으로 성실하게 살아가게 되면 결국 베뢰아 사람들보다 월등한 신앙인들로 성장해 있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거북이는 토끼와 경주할 수 있는 자격에서 이미 박탈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거북이가 이겼다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거북이의 목적은 골인 지점이었습니다. 옆을 보지 않고 느린 걸음이지만 최선을 다해 달렸습니다. 그러나 토끼의 목적은 골인 지점이 아니라 거북이었습니다. 그래서 느리게 걸어오는 거북이를 보고는 낮잠을 자도 충분하다는 자만에 빠지게 된 것이지요. 하나님 나라는 먼저 된 자라 하여 자만하지 말고, 나중 된 자라 하여 절망하지 말고 우리 앞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목적이며 삶의 기준이 되는 것입니다.
박심원 목사
예드림커뮤니티교회 공동담임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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