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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단상

 


영국 신문 <가디언>이 세계에서 가장 쓸모없는 10대 건축물ㆍ시설을 선정했는데 이명박정부의 ‘4대강 사업'을 당당히 세 번째 사례로 꼽았다. 같이 불명예를 뒤집어쓴 애물단지로는 홍콩과 마카오를 잇는 Pearl river bridge, 스페인의 오페라 하우스, 독일 베를린 신공항, 러시아 소치 올림픽 경기장, 스페인의 Don Quixote 공항, 캐나다 토론토 지하철역 등이다. 그리고 1987년 짓기 시작했으나 아직도 호텔 기능을 못 하는 평양의 초고층 건축물 ‘류경호텔’도 쓸모 없는 사업 열 번째에 올랐다.

 

쓸모없는 건축물ㆍ시설 같은 애물단지를 흔히 '흰 코끼리(white elephants)'라고 하는데 이번에 <가디언>도 '흰 코끼리 사업'이라며 10개를 선정했다. 흰 코끼리는 분명 희귀한 존재다. 그래서 귀한 대우를 받는데 불교국가인 태국에서는 국가의 수호신으로 대접한다. 석가모니의 모친인 마야부인이 태몽으로 6개의 상아가 달린 흰 코끼리가 옆구리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는 데서 유래해 불교국가에서는 하나같이 귀하게 여긴다. 그런데 흰 코끼리는 애물단지, 처치곤란한 물건을 뜻하기도 한다. 동남아 설화에 따르면 옛날 왕이 맘에 들지 않는 신하에게 흰 코끼리를 선물했다. 왕이 선물한 것이라 잘 먹이고 잘 키워야 하는데 엄청 오래 살고 엄청 먹어대는 코끼리를 사육한다는 것이 비용면에서큰 부담이었다. 왕이 선물한 것인데 아프거나 죽으면 어떡하지, 라는 정신적 부담도 상당했다. 그게 흰 코끼리다. 

 

<가디언>이 '눈길을 끄는 자본의 쓰레기들'로 표현한 세계 10대 건축물·시설에 ‘4대강 사업’이 들어간 것은 <4대강의 수질 개선 및 홍수ㆍ가뭄을 예방하기 위해 약 22조 원에 달하는 비용이 투입됐지만 "한국인들은 이명박정부가 약속했던 혜택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이며 설계 결함으로 내구성이 떨어지는 등 과도한 운영비가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디언>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한국의 2013년 감사원 감사결과를 인용해서 작성한 기사다. 

 

<가디언>은 영국의 정론지 중 세 손가락에 꼽히는데 대표적인 진보주의 성향의 언론이다. 딱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한국 언론 시장에 비춰 굳이 비유하자면 한겨레나 경향신문의 성향이랄까. <더 선>, <데일리 미러> 같은 황색 저널리즘이 더 잘 팔리는 영국 언론 시장에서 <더 타임스> 조차 어려울 정도로 잘되는 정론지가 없긴 하나 <가디언>은 대형 미디어 그룹을 끼지 않고 편집권의 독립으로 독야청청하려니 더 어려운 실정이다. 영국 진보 중산층을 비꼬아 '가디언 독자'라고 표현하기도. 그래서 이번에 선정한 '흰 코끼리 사업'에 <가디언>의 성향을 들먹이며 의미를 반감시키려는 대책 없고 반성할 줄 모르는 수구의 댓글이 달려있기도 했다. 

 

희소가치는 있지만 값비싸고 쓸모가 없는 것이 흰 코끼리라면 흰 코끼리를 먹이고 돌보느라 기둥뿌리가 뽑히는 고통은 누구에게 돌아갈까. '4대강 사업'이란 흰 코끼리를 내놓은 국왕일까, 흰 코끼리를 받은 신하일까, 흰 코끼리를 먹이고 돌보는 것을 몽땅 부담진 국민일까.

잘못은 있는데 잘못한 이는 없다는 나랏일의 무책임함. <가디언>이 꾸짖은 것 아닌가.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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