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헤럴드 단상

아직도 인종차별 광고라니

hherald 2017.10.09 16:42 조회 수 : 2991

 

 

아내가 첫아이를 낳던 날이니까 25년 전 일이다. 신문사에서 광고회사로 이직을 해 광고계 생활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담당했던 광고주 중에 의류회사 베네통 대리점을 막 개업한 사람이 있었다. 아내가 병원에서 해산을 준비하던 중 필요한 것이 있어 사러 잠깐 나갔다가 그 광고주와 마주쳤다. 마침 잘 만났다, 하며 붙잡혀 얘길 듣느라 늦게 병원으로 돌아와 아직도 서운한 소릴 듣는 입장이 됐는데 그의 하소연이 바로 인종차별 광고에 관한 것이었다. 그 광고주가 매장을 열던 시기 베네통에서 집행한 광고가 <백인 아이와 흑인 아이가 서로 안고 있는 사진>인데 백인 아이는 천사 분장인데 흑인 아이는 악마 분장, 백인 아이는 웃고 있는데 흑인 아이는 무표정, 이런 광고였다. 전 세계에서 인종차별 광고라며 불매운동이 일었고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막 매장을 연 그의 입장에서는 난감했고 날 붙들고 하소연을 한 거였다. 내가 그 광고를 만든 것도 아닌데 라디오 광고 한 건 대행하는 입장에서 그의 하소연을 듣느라 아내가 지금 병원에 있다는 설명도 못 하고, 아직도 베네통 매장만 보면 그 광고와 그 광고주가 떠오른다.

 

 

25년 전 얘기가 긴 사설이 됐는데 이번에 비누회사 '도브'가 자기 비누로 씻으면 흑인이 백인으로 바뀐다는 의미의 광고를 해 비난을 샀다. 지난주 공개한 온라인 광고인데 <흑인 여성이 갈색 티셔츠를 벗으면 살구색 티셔츠를 입은 백인 여성으로 변신한다. 그리고 이 여성이 다시 티셔츠를 벗으면?> 이런 내용이다. 고작 3초짜리 영상인데 도브 회사 측의 사과처럼 <결코 일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일>만큼 엄청난 잘못이 됐다. 그런데 도브는 몇 해 전에도 흑인 여성, 라틴계 여성, 백인 여성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에 ‘before’와 ‘after’라 표기해, 거친 피부의 흑인 여성이 도브를 사용하면 부드러운 피부의 백인 여성으로 바뀔 수 있다는 식으로 광고한 흑역사가 있다.

 

흑인의 피부색을 소재로 한 인종차별적인 광고의 최악은 아마도 중국 레이상 화장품이 아닐까. 한 흑인 청년의 입에 광고상품을 넣고 거칠게 세탁기 속에 밀어 넣어 돌리자 흑인 대신 흰색 티를 입은 동양인 남자가 세탁기에서 나오고, 여자는 기뻐한다는 게 광고다.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개념이 없다. 그런데 이 광고가 내 개인적 견해로 왜 최악이냐 하면 이런 조잡한 컵셉마저도 모방한 것이다. 이탈리아 광고에 백인 남자를 세탁기에 넣으니 멋진 흑인 남자가 나오는 것이 있는데 이 광고 동영상을 그대로 훔쳐 만들었다. 비난이 게세지자 사과하는 내용도 문제가 됐다. "처음엔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다. 해외 언론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 아프리카인들에게 상처를 줬다."는 식으로 사과해 또 다른 논란을 낳았다. 결론적으로 이 광고는 내용도 창의력도 제작 방식도 개념도 모두 최악이다. 

 

그래서 인종차별 반대 광고를 하나 소개한다. 혈액 파우치가 세 개 있다. 같은 AB형인데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사람의 혈액 세 개다. 광고 문구는 <이것들이 하얀색, 노란색, 검은색으로 보이나요? 오직 빨간색입니다.> 인종은 달라도 모두 붉은 피를 가진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여 인종차별반대를 주장하는 광고다.

 

어릴 때 사용하던 크레파스에는 살색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살구색만이 살색이 아니라 검은색, 흰색도 살색이란 걸 이젠 웬만한 사람은 다 알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의 다양성을 모르는 인종차별 광고가 또 나왔다니 개탄스러워 되짚어봤다.  

 

헤럴드 김종백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556 1991년 고성 잼버리 vs 2023년 새만금 잼버리 hherald 2023.08.07
555 한상 韓商과 화상 華商 hherald 2023.07.24
554 시체 밀매 네트워크, 현대판 시신 도굴꾼 hherald 2023.07.17
553 북한, 에리트레아, 시리아 그리고 BBC hherald 2023.07.10
552 6·25전쟁 73주년, 영국의 참전용사들 hherald 2023.06.26
551 재외동포 포상에 끼지 못하는 건 자업자득인가? hherald 2023.06.19
550 비행기 민폐 승객 hherald 2023.06.12
549 재영한인 단체들의 분규 "이제 옥석을 가리자" hherald 2023.06.05
548 캥커루족, 슬픈 젊음의 초상 hherald 2023.05.29
547 오월에는 '부부의 날'이 있다 hherald 2023.05.15
546 5월 12일, 최초의 순국선열 이한응 열사 순국일 hherald 2023.04.24
545 벌써 9년, "수학여행 잘 다녀오겠습니다" hherald 2023.04.17
544 한인종합회관 방치했다? 누군들 자유로울까? hherald 2023.04.03
543 찰스 3세 국왕의 프랑스 국빈 방문 hherald 2023.03.27
542 무솔리니의 로마 저택과 홀로코스트 기념관 hherald 2023.03.20
541 캠퍼스의 사제지간 師弟之間 연애 hherald 2023.03.13
540 찰스 3세 대관식의 성유 聖油 hherald 2023.03.06
539 베델 선생, 동상으로 고향 브리스톨에 돌아온다 hherald 2023.02.20
538 영국과도 인연 깊은 '미스터 션샤인', 100년만의 귀환 hherald 2023.02.13
537 '김치의 날' 제정, 긴 세월 한인 동포들 노력의 결과다 hherald 2023.02.06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