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일리언(1979), 델마와 루이스(1991), 글래디에이터(2000), 킹덤 오프 헤븐(2005), 프로메테우스(2012) 등의 영화 사상 주옥같은 명작을 양산해내고 있는 영국 출신의 리들리 스콧 감독은 2009년, 닳고 닳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만든다. 케빈 코스터 등 수 많은 할리웃 최고 스타들이 맡아왔던 '로빈 훗'의 역할을 자신이 만든 '글라디에이터'에 등장했던 러셀 크로우를 통해 스콧 감독만의 독창적 아이디어를 풀어냈다.
주인공 로빈 롱스트라이드(레셀 크로우)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사자왕 리차드 1세를 도와 대활약을 펼쳤으나 리차드 왕이 프랑스에서 전투 중에 사망하자 고향으로 돌아온다. 리차드 왕의 뒤를 이은 그의 동생 존 왕은 폭력과 탐욕적 통치자로서 국민들은 전쟁 후유증과 함께 더욱 피폐하게 된다. 참담한 상황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자유를 위해 왕에게 도전하다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된 로빈은 부패한 존 왕과 맞서게 되는데... 역사를 자신의 입맛대로 재해석했다는 적지 않은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스콧 감독이 만들어낸 2010년판 '로빈 훗'은 자유와 민주 투사의 선봉에 선 영웅으로 그려지고 있다. 어쨋거나 스콧 감독은 '로빈 훗'과 '마그나카르타(대헌장)'의 배꼽 맞춤을 그럴싸한 시나리오로 각색하여 자신의 장기인 스팩타클한 화면 속으로 끌어다 놓는다.
서기 476년 서로마가 멸망하자 고립무원이 된 비잔틴 제국(동로마)는 나름대로 고군분투를 하며 대제국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제국 또한 세월이 흐름에 따라 노쇠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주위를 포위하고 있는 셀주크 투르크들은 호시탐탐 비잔틴의 목줄을 노리고 있었으니... 1071년에는 비잔틴 황제가 포로가 될 정도로 밀리고 있었다. 이 무렵 영국에서도 전쟁 바람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 때 중국의 송나라와 한국의 고려는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으나 북쪽에서 몽고의 징기스칸이 태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1066년 노르망디의 윌리엄 공작은 도버해협을 건너와 잉글랜드 해럴드 2세를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전사시킨다. 결국, 앵글로 섹손 시대는 끝이 나고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의 잉글랜드 국왕 등극으로 프랑스를 뿌리로 하는 노르만 왕조가 영국 땅에서 자리를 잡게 됨으로써 영국의 중세가 막을 올렸으니...
이차 여차한 왕들의 시대를 거치던 중 헨리 2세의 막내아들, 존 때에 이르러 형 리차드 1세 급사를 기회로 왕 위를 찬탈사건이 발생한다. 먼 친척뻘인 프랑스의 필리프 2세는 존 왕이 리차드 1세의 아들 아서를 살해하고 왕권을 탈취했다는 이유를 들어 존 왕을 몰아내기 위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당시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북부 프랑스 땅을 회복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켰다.
필리프 2세와의 전쟁에서 영국이 점령하고 있던 프랑스 땅을 대부분 잃게 된 존 왕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로마 교황과의 마찰로 인해 왕위 박탈 위험에까지 처하자 교황에게 무릎을 꿇고 봉건적 신하 관계로 목숨을 부지하게 된다.
선조인 정복왕 윌리엄이 쌓아놓았던 강력한 왕권의 추락을 목격한 런던 상공업자들과 귀족들은 이때다 싶어 사면초가에 몰린 존 왕으로 하여금 '왕은 국민을 자의적으로 다스릴 수 없다.'라는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 서명하도록 하였다. 당시 존 왕이 서명해야 했던 마그나카르타는 국민의 권리 옹호보다는 '귀족과 상공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항이 대부분이었다.
1215년, 존 왕이 서명했던 '마그나 카르타'가 영국 민주주의의 시발로 강조되고 있으나 그 문서 자체에는 민주적 요소를 담은 내용은 없었다. 어쨌거나 이 문서가 한번 작성됨으로써 최초로 왕과 의회가 권력을 나누게 되고 이로써 영국 국왕은 <제한적 입헌군주>라는 틀 속에 놓이게 된다. 실제 통치력에 대한 점수는 형편없었던 존왕은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함으로써 영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끝 모를 추락에 놓여있던 왕권은 아들인 헨리 3세를 넘어 손자인 에드워드 1세 때에 가서야 제동이 걸린다. 전쟁만 치렀다 하면 번번이 깨지던 할아버지 존 왕과 달리 그의 손주인 에드워드 1세는 플랜태저넷 왕가(Plantagenet-앙주 왕가의 별칭)의 전성기를 열게 된다.
플랜태저넷 왕가는 헨리 2세를 시조로 하여 근 300년간 내려오는데 이 시대에 영국의 고유문화와 예술을 태동시킨다. 영문학의 시조로 불리는 제프리 초서가 왕가의 후원을 받아가며 영어를 문자의 반열에 올려놓게 되는 <캔터베리 이야기>를 출판하게 된다.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요크 민스터 대성당이 건축된 시기가 이때 였다.
현재 런던 남쪽 킹스톤은 윌리엄 이전 앵글로 색손 왕가들이 7대에 걸처 왕위 계승식이 거행되던 곳이었으나 윌리엄 1세의 영국 점령과 함께 앵글로색손들의 왕위 계승식은 끝이 나게 된다. 당시 조성됐던 킹스톤 시장이 지금도 활발하게 열리고 있다.
박필립 칼럼리스트(www.facebook.com/thamespark)
굿모닝런던 발행인
영국 안중근청년아카데미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