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손…"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한국에 온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손을 내미는 모습이다. "터지는 눈물..." 교황이 다가가 유가족의 손을 잡고 위로의 말을 건네자 참았던 설움의 눈물을 쏟아낸다.
누가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눈물을 달래주어야 했나. 누군가의 표현처럼 진상 규명을 위해 '높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유족들은 대통령보다 교황을 먼저 만났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가족들이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는 <교황님, 우리는 국가에 외면당했습니다>라고 이른다.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나타난 교황,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한 교황에게 세월호 유족들이 드린 편지를 보자. (편집상 부분 중략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황님. 저희의 이 글을 꼭 읽어주십시오.
글을 쓰는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죽은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부모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시간을 살고 있습니다. 한숨을 쉴 때마다 “보고 싶다” 한탄하지만 돌아오지 않는 자식은 이름밖에 부를 수 없습니다. 딱 한 번만이라도 만지고 싶고,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습니다. 그러나 바닷물에 불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아이들은 시신이 상할까봐 제대로 안아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실종되어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도 10명이 됩니다. 우리는 죽은 아이라도 찾았지만 그들은 DNA 확인이 아니고서는 알아볼 수도 없게 된 자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족 4명이 배를 탔다가, 엄마는 시신으로 돌아오고, 아빠와 7살 아들은 아직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해, 5살 딸만 살아남은 가족도 있습니다. 5살 딸은 “엄마 아빠, 오빠가 나만 두고 이사 갔다”고 울고 있습니다.
우리 요구는 단순합니다. 가족들이 죽어간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입니다. 왜 위험한 배를 바다에 띄웠는지, 왜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왜 방송은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고, 해양경찰들이 제대로 구조도 하지 않는데 대대적인 구조작업 중이라 거짓 방송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고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통령과 많은 정치인은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고 특별법을 만들어서 진실을 밝혀주겠다 했습니다. 대통령의 약속이 거짓말일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가족을 무시합니다. 언제든지 찾아오라더니 청와대 가는 길을 경찰이 막습니다. 두려운 것이 있나 봅니다. 대통령은 사고 당일 7시간 동안 행적이 불분명했다고 합니다. 바로 우리 가족들이 죽어가던… 그런데 청와대와 여당은 그조차 알려 하지 말라 합니다.
가족들은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기소권, 수사권이 있는 조사위원회를 만들 수 있는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특별법은 돈을 달라는 것도, 특혜를 달라는 것도 아니고, 부정부패의 원인을, 사랑하는 내 가족이 죽어간 이유를 밝혀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철저히 조사하고 처벌하여 참사의 원인이 된 부정부패가 바로잡혀 다시는 우리처럼 가족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는 이가 없도록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한 해에도 몇 개씩 벌어지는 참사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법이기도 합니다. 그걸 잘 아는 국민들이 나의 일이라 생각하고 우리 가족들과 함께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나라에서 힘없는 국민들만이 우리에게 ‘국가’였습니다.
교황님. 진실을 찾는 길만이 저희에게 멈춘 시간이 흐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우리가 용기를 잃지 않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죽어간 아이들이 좋은 곳에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도록 살펴주십시오. 저희가 이 모든 부정부패와 냉담한 현실 속에서 싸워나갈 힘을 주십시오.
2014년 8월 14일
세월호 가족 일동 드림
지난 16일 토요일 오후에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세월호 침묵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지난 5월부터 매달 14일을 전후로 열렸는데 벌써 4번째다. 그들의 주장과 요구는 세월호 유족과 같다.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서 제대로 된 특별법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래서 억울한 참사가 없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세월호 유족이 청와대가 아닌 교황에게서 희망을 보는 안타까운 현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는 안타까움 속에 희망을 기대해 본다.
헤럴드 김 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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