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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인 발견 -30회 퇴근 후 한잔 규칙

hherald 2011.02.07 19:38 조회 수 : 1592

 

나는 얼마전 사회학자인 동생과 퇴근 후 한잔에 대해 얘기했다. 그녀는 자신이 본, 영국 직장의 스트레스에 관한 최신 연구서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다. 내가 "말하지 마. 맞혀볼게" 라고 중단시키고 "동료들과 퇴근 후 한잔 하러 간 사람은 안 한 사람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얘기지? 맞지?" 그녀는 "그래 맞아"라고 대답했다. "내 말은,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지." 퇴근 후에 한잔 의례를 즐기는 영국 직장인이라면 그 정도는 얘기 할 수 있다. 사회학자는 너무도 뻔한 것을 얘기하는 버릇이 있다. 그럼에도 우리들의 본능적인 지식을 제대로 된 연구와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확인해주었으니 좋은 일이다.

 

사회학자란 전혀 감사 받지 못하는 직업이다. 특히 언제나 냉소적인 영국인 사이에서 살아간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조사결과를 굳이 연구 안 해도 '그건 이미 분명하다 (연구결과가 일반상식과 일치할 때)' 라거나,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같은 소리 (연구결과가 상식적인 지혜와 어긋날 때)' 라고 한다. 혹은 '얼렁뚱땅 (앞의 두 가지 죄 중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확실치 않고 내용이 어려운 학술용어로 되어 있을 때)' 이라고 치부해버린다. 이런 것들 중 하나이거나 둘 다에 빠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나는 직장 스트레스를 해독하는 퇴근 후 한잔 의례의 숨은 규칙을 설명해보고자 한다.

 

첫째, 술과 술집에 대한 세계적으로 공통된 규칙들이 있다. 모든 문화에서 술은 상황 전환용으로 사용된다. 즉 술은 하나의 신분에서 다른 신분으로, 하나의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옮겨지도록 하고, 그것을 용이하게 하고 강화한다. 이 전한 의례에서 술은 중요한 인생의 전환점인 '통과의례', 즉 출생, 성인식, 결혼식, 장례식은 물론 이보다는 사소한, 예를 들면 근무시간과 휴식 시간 그리고 귀가시간을 가르는 하루의 전환점 등에서 필요불가결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문화와 다른 몇몇 문화에서 술은 일에서 놀이로의 전환 매개체이다. 왜냐하면 술은 기분전환, 오락, 축제, 휴식, 번개 모임 등 전적으로 노는 것과 연결되어 있고 일과는 정반대 개념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술집의 사교적이고 상징적인 역할에 대해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퍼브 대화 장에서 기술한 바 있으나 여기서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모든 문화에서 술집은 자기들만의 '사교적 소단위의 특수 분위기'가 있어 '해방구'이며, 거기에서 일정한 휴식과 더불어 사회적 통제와 억제가 정지된 해방감을 느끼는 특권을 누린다. 또한 그곳은 평등주의적 환경이고 바깥 세상과는 다른 기준에 따라 신분이 정의되는 곳이다. 무엇보다 술집은 어느 나라에서나 사람 사이의 친교를 강화하는 곳이다.

 

그래서 영국의 퇴근 후 한잔 의례의 가장 큰 기능은 스트레스 해소인데, 이는 세계적인 '원리'에 의해 사회의 위계질서와 중압감이 술에 의해 풀리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사교적이고 평등한 환경인 퍼브에서 술을 마시기 때문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것은 동네 퍼브에서 퇴근 후 콜라나 주스로 한잔하는 것도 스트레스를 푸는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퍼브 자체는 사교의 윤활유인 술 없이도 상징적인 힘만으로도 휴식과 친목의 분위기를 충분히 만들어 낸다. 영국인의 퇴근 후 한잔 의례의 분명하고 자율적인 규칙은 주로 이 효과를 강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일과 관련한 사항은 얘기할 수 있다. 퇴근 후 한잔하는 자리에서 때로는 제일 중요한 결정이 내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진지해지지 않기 규칙과 공손한 평등주의 규칙은 직장에서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지켜진다.
진지해지지 않기 규칙에 의하면 당신은 동료 혹은 업무 파트너와 중요한 프로젝트나 문제를 퍼브에서 얘기할 수 있다. 그러나 거들먹거리면서 거만하고 지겨운 얘기는 하면 안 된다. 지위가 높으면 직장에서는 그런 발언을 할 수 있다(물론 인기가 없겠지만). 그러나 퍼브에서 말이 길거나 너무 심각하거나 자기자랑을 하면 당신은 즉각 "그만둬! 됐거든!" 이란 소릴 듣는다.

 

공손한 평등주의 규칙에 따르면 직장의 위계질서가 퍼브에서 파괴되는게 아니다. 그보다는 각자 지위가 다른 사무실보다는 좀더 유머러스하고 무례한 태도를 취할 수 있다는 뜻이다. 퇴근 후 한잔 시에는 대개 직위가 좀 비슷한 몇몇 동료들끼리 어울린다. 어떨 때는 직위가 좀 다른 이들도 어울리는데 직장에서 표하는 경의에 장난기가 섞인다. 이때 매니저를 팀원들은 '보스'라고 부르는데, 장난끼 섞인 약간 거만한 방식으로 '어이.보스. 이제는 보스 차롑니다." 라고 말한다. 퍼브에 있다고 갑자기 동등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너무 어려워하지 않음을 보여주기 위해 직장 선배나 상관을 좀 놀릴 수 있다.

 

퇴근 후 한잔 규칙과 퍼브 대화 규칙은 일반적으로 영국인의 정신에 깊이 박혀 있다. 만일 영국인과의 업무 협의나 인터뷰가 딱딱하고, 사무적이고, 너무 무겁게 진행되면, 그에게 "당신이 퍼브에 있듯이 얘기하자'고 하든지 '우리가 퍼브에 있을 때처럼 대답해보라'고 요청하라.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나 알 것이다. 퍼브 대화는 긴장을 풀고, 약식으로, 친근하게 진행된다. 또한 누구나 굳이 잘 보이려 하지않고, 모든 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물론 당신이 그를 근처 퍼브에 데려 갈 수 있다면 훨씬 좋다. 그러나 퍼브의 사교적 소단위 분위기를 상기시켜주기만 해도 긴장과 억제를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영남대학교에서 무역학을 전공하고 무역상사 주재원으로 1980년대 영국으로 이주해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유럽의 잡지를 포함한 도서, 미디어 저작권 중개 업무를 하고 있다.

월간 <뚜르드 몽드> <요팅> <디올림피아드> 등의 편집위원이며 대학과 기업체에서 유럽 문화 전반, 특히 영국과 러시아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kwonsukh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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