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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만나는 런던

그림으로 만나는 런던-61
수태고지/로제티
Ecce Ancilla Dommini/ Dante Gabriel Rossetti
 

역사와 추억의 사이

 

그림 속에는 두 가지 시간이 존재한다. 하나는 흘러가는 시계가 만들어내는 ‘역사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언제나 매우 복잡하고 불편한 정장 차림이다. 또 하나는 예술이 만들어 내는 ‘추억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언제나 단순하고 편한 캐주얼 차림이다. 이 두 가지 시간은 서로 친밀하면서도 때때로 서로 서먹서먹하다는데 문제가 있다.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그림을 볼 때, 우리는 그림 속의 ‘추억의 시간’을 만난다. 느낌으로 만나는 그림의 모습이다. 우리가 어떤 특정 화가에게 유난히 끌리게 되는 것은 아마도 ‘추억의 시간’ 안에서 형성되는 각별한 공감대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림은 완성되지 못한다.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화가를 만나야 한다. 화가를 통해 우리는 그림과 소개팅하는 중이니까. 화가를 만나려는 우리가 찾아가야 하는 곳이 바로 ‘역사의 시간’이다. 시간의 좌표 위에서 미술에 대해 고민했던 화가의 위치를 모른다면, 우리는 형태 없는 미술이라는 괴물을 만나기 힘들다. 미술이 시대의 반영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존재하는 표현이다. 화가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역사의 물줄기 위에서 우리를 지치게 하지만, 진정한 추억을 만나기 위한 외로운 여정쯤이라고 할 수 있을지. 특히나 미술이 그림의 반경을 심하게 넘어선 현대미술의 경우 화가의 정신을 모르고는 미술을 식별하기조차 힘들다. (성형수술로 얼굴이 달라진 여자들을 볼 때 마다 그들의 정신상태가 미치도록 알고 싶어진다. 나의 눈에는 그들이 미술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십일 세기는 의사도 화가가 되어버린 지독한 미술의 세상 아닌가.)
그들의 신념과 정신을 모른다면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화가들로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Brotherhood)’가 있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생겨난 그들의 미술관은 라파엘 이전의 순수한 표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들의 삐딱한 시각을 탄생시킨 것은, 아름다운 양식이 라파엘로 완성된 것이라고 믿었던 당시 기성 아카데미화가들의 답답함이었다. 대표적 화가인 로제티(1828~88)의 초기작 ‘수태고지(受胎告知, 1850, 테이트브리튼)’는 그들의 ‘역사의 시간’을 살펴보는데 좋은 보기가 되어 준다. 이 그림을 발표하고 로제티는 평론가들의 혹평을 받아야 했다. 러스킨이라는 당대 문제의 평론가를 옹호자로 만나기 까지 로제티는 좌절하였다고 전해진다. 러스킨과 라파엘전파는 중세주의자거나 중세를 그리워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들은 중세사회가 보다 더 예술의 개성을 자유롭게 허용했다고 보았다. 그들의 ‘심미주의’는 굉장히 반항적인 양식을 띠는데, 로제티의 초기작인 이 그림은 훗날 와해되는 그런 그들의 미술관이 가장 잘 드러난 그림의 하나다.
수태고지는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로, 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예수라는 성령의 아들을 잉태하게 될 것임을 전한 사건을 말한다. (누가복음 1장 26절~38절) 인류가 구원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한 중대한 사건이므로 중세부터 곧잘 미술에 나타나는 소재였는데, 항상 과거 지향적으로 그리는 것이 전통이 되어버린 소재의 하나였다. 그러나 로제티가 성경을 읽으며 생각한 것은 바로 ‘추억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중세의 화가들이 중세의 설득력 있는 모습으로 마리아와 천사를 그렸듯이, 로제티는 자신의 시대에 공감되는 모습으로 그들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마리아모습의 모델이 된 것은 로제티의 친동생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라파엘 전파는 역사상 가장 모델을 중요시하던 유파가 되었다.) 가냘픈 마리아의 모습을 자신의 여동생의 모습에 비추어냄으로써 언제나 변하지 않는 ‘추억의 시간’으로의 수태고지를 표현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와 천사에게 나타나는 후광처럼 이 그림의 전반적인 형식은 중세풍을 따르고 있다. 자연스러운 색감을 위하여 라파엘의 화려함을 피하고 있다. 역사와 추억이 만나는 지점 위에 자신의 그림을 올려 놓은 것이다.
흡사 킹스톤 병원의 허름한 병실을 연상시키는 창백한 이 그림을 인류구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엄숙한 순간을 모독하는 그림이라고 비난하는 교조주의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현대미술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라파엘전파’는 일종의 실패작이니까. 그들은 추억과 역사를 너무도 동등하게 취급하려다가 그 진취성을 놓쳐버린 것이다. 현대미술은 ‘라파엘전파’ 보다 조금 늦게 파리에서 발화한 ‘인상파’의 적통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상파는 철저하게 역사를 무시하려고 했으므로, 역사보다 추억이 지배하는 서양미술사 최초의 미술이다. 철저하게 추억의 골짜기로 미술을 몰고 간 것이다. ‘라파엘전파’는 중세라는 역사적 황홀기를 극복하려 하였지만 그 형식에서 역사의 골짜기를 벗어나지 못하였던 안타까움이 있다.
인간은 추억만으로는 살 수 없다. 그래서 누구나 시계 하나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 역사와 추억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 인간임을 속삭이는 저녁 별처럼, 미술도, 역사와 추억 사이에서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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