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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현실이 된 환상들

hherald 2010.11.22 19:00 조회 수 : 10947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런던의 새들은 날기를 싫어한다. 해안선에서 템즈강을 따라 도심으로 날아든 갈매기나 도로에 내려앉아 먹을 것을 찾고 있는 비둘기나 한결같이 모두 날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비행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캐나다 기러기조차 날고 싶어하지 않는다.

 

내 차를 가로 막은 채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던 비둘기는 언제나 내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야 겨우 마지못해 날개를 편다. 공원이나 골프장에서 사람을 피해 뒤뚱거리며 몸을 피하는 것이 상책인 캐나다 기러기의 차선次善은 언제나 가까운 물을 찾아 뛰어 드는 것이다. 짓궂은 개들이 함께 연못으로 뛰어들면 그 때서야 극단의 상황이 느껴져 접었던 큰 날개를 펼쳐들고 퍼덕이며 근사한 비행을 시작한다. 땅에서 뒤뚱거리던 모습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다.

 

뒤뚱거리며 뛰는 것이 나는 것보다 편하다는 이야기인가!
날기를 귀찮아하는 새들이라니... 세상은 정말 요지경 속이다.

 

나는 ‘용불용설 用不用說’을 믿지 않는다.
‘Lamarckism’ 혹은 ‘use and disuse theory’로 불리는 ‘용불용설’은 프랑스의 라마르크가 제창한 진화론이다. 말하자면 모든 생물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어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발달하고 반대로 사용하지 않는 기관은 퇴화해서 점점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없어진다는 학설이다.


목사라는 종교적 신념을 떠나서도 그렇다. 기린이 더 높은 나무의 먹이를 먹기 위해 목을 늘이다가 목이 길어졌다는 이야기는 어린시절에도 듣는 순간부터 나를 웃겼던 우스꽝스런 이론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우스꽝스런 이론에도 불구하고 나는 라마르크를 좋아한다. 그의 이론과 학설에서 그의 건강한 삶의 철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학으로서의 용불용설은 황당하지만 삶의 철학으로서의 용불용설은 나이가 들수록 더 공감이 되는 진리에 가깝다.

태평세월 속에서 날개가 퇴화되어 없어졌다는 ‘도도새’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도도새가 살았던 인도양의 모리셔스 섬에는 도도새를 위협하는 천적이 없었다. 도도새는 땅에 둥지를 틀고 나무에서 떨어진 과일을 먹고 살았다. 도도새의 게으름은 결국 자신의 가장 날렵하고 튼튼한 생존수단이었던 날개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런 일상 가운데 주어진 긴 세월 속의 무의식적 선택이었던 것이다.
1505년 포르투갈 사람들이 모리셔스를 발견하게 된 이후로 그 섬은 무역을 위한 선박들의 중간경유지가 되었다. 날지 못하는 도도새는 섬에 정착한 사람들에게 사냥하기 쉬운 고기덩어리가 되었고, 1681년을 마지막으로 도도새는 멸종이 되고 말았다.

 

런던의 새들을 보면서 도도새를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런던의 새들이 도도새의 전설처럼 날개를 잃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과학으로서의 용불용설은 더 이상 설득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내게, 날기를 싫어하는 새들과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제 나는 ‘날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막연한 환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새들의 우아한 비행이 ‘고단한 노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나는 날개가 있었더라도 날기를 싫어했을지 모른다. 튼튼한 다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걷기를 싫어하고 달리기를 싫어하는 나의 일상도 일상이지만 이제까지 걸어왔던 내 삶의 흔적들이 그런 개연성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가지고 싶었던 것은 날개뿐만이 아니었다.
돌아보면 그 중에서 많은 것을 가지게 되었지만 거의 모든 것이 막연한 환상에 불과했다. 환상은 언제나 실체를 왜곡시키며 존재하는 비현실이기 때문이다. 우아한 비행을 꿈꾸는 날개의 환상도 현실이 되면 ‘고단한 노동’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겨우 깨닫게 된 것이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끓여 두 손으로 감싸 들고 앉아 현실이 된 환상들을 떠올려 본다.
이젠 날개가 없어도 좋다. 이미 내게는 날개보다 더 소중한 현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래 전의 환상이었던 아내와 가정... 유학과 영국생활...
돌아보니 정말 한결같이 환상이 깨지던 고단한 현실이었다. 그렇지만 결코 나쁘지 않았다. 결국 그것이 내가 꿈꾸던 ‘비행 flying’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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