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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사 에세이

부메랑효과Boomerang Effect

hherald 2010.08.23 16:44 조회 수 : 10714

 

런던의 한 귀족 아들이 스코틀랜드로 여행을 떠났다가 늪에 빠지는 사고를 당하게 되었다. 늪에서 빠져 나오려고 몸부림치다 지쳐, 거의 죽을 지경이 된 귀족의 아들은 있는 힘을 다해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마침 근처에서 일을 하던 농부가 그 소리를 듣고 달려가 수초水草로 가득한 늪에서 허우적대는 귀족의 아들을 건져주었다.

 

다음날 농부의 집 앞에 화려한 마차 한 대가 멈춰 섰다. 마차에서 기품 있어 보이는 사람이 내리더니 농부에게 자기를 소개했다.
“어제 늪에서 구해주신 이 아이가 제 아들입니다”
아들을 살려준 생명의 은인 앞에서 그 사람은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인사를 했다.

 

“뭔가 보답을 하고 싶은데...”
“아닙니다. 저는 그냥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농부는 귀족 앞에서 두 손을 내저으며 거절을 했다.
바로 그 때, 농부의 아들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신기한 듯한 표정으로 마차와 사람들을 둘러본다.

 

“아들입니까? 총명하게 생겼군요”
귀족은 자기의 아이보다 훨씬 더 어려 보이는 농부의 아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농부에게 말했다.
“앞으로 이 아이가 내 아들처럼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지원 하겠습니다”

 

농부의 아들은 그렇게 해서 훗날 런던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사립학교를 졸업한 후에 런던대학 의대를 진학하게 된 농부의 아들은 학문적으로 뛰어난 세균 의학자가 된다.

 

1928년 어느 여름날, 농부의 아들은 여느 때와 같이 세인트 메리 병원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고 있었다. 포도상구균이 배양되는 것과 관련된 실험이었는데 시험관 하나에 실수로 콧물이 들어가 배양균이 푸른곰팡이에 의해 오염이 되고 말았다. 농부의 아들은 오염된 배양접시를 쓰레기통에 버리려다가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푸르스름한 곰팡이가 핀 근처에는 포도상구균이 다 죽어있는 것이었다. 푸른곰팡이가 포도상구균들을 다 죽여버린 것이다.

 

농부의 아들은 우연한 실수로 인해 기적과 같은 의학적 발견을 하게 된다. 푸른곰팡이의 배설물이 박테리아를 죽인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푸른곰팡이의 분비물은 양이 아무리 많아도 적혈구가 손상되지 않았고, 그것을 아주 묽게 만들어도 실험 효과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 실험으로 농부의 아들은 페니실린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농부의 아들이 훗날 노벨 의학상을 받게 되는 ‘알렉산더 플레밍’이었던 것이다.

 

한편, 귀족의 아들은 정치적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스물 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 된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중에 과로한 업무로 폐렴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서게 된다. 당시에는 폐렴이 치료하기 어려운 난치병이었기 때문이다. 그 무렵에 발견된 페니실린은 그렇게 죽어가는 귀족의 아들을 살려낸다. 농부의 아들이 귀족의 아들을 살려낸 셈이다.

 

페니실린은 그냥 평범한 정치인을 살려낸 것이 아니었다. 페니실린 때문에 살아난 귀족의 아들이 바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며 영국을 구해냈던,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이었기 때문이다.

처칠의 인생 가운데 플레밍과의 만남은 예정된 운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플레밍 역시 처칠과의 만남이 없었다면 페니실린으로 노벨 의학상을 받게 되는 영광의 순간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남은 역사를 만들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

너와 나의 만남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가수 노사연의 노래 말처럼 우리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메랑효과-Boomerang effect는 부정적인 경제용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의 만남 가운데서 부메랑효과는 더 빈번하고 확실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사필귀정事必歸正은 이미 우리에게 만남 속의 부메랑효과를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그런 만남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플레밍과 어느 날 실수로 오염된 배양균과의 만남. 그 만남을 그냥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사실 인생을 돌아보면 실수와 실패의 모양으로 내 앞에 나타났던 수많은 만남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그 때마다 ‘절망과 낙심’은 마음에 남기고, 그 ‘만남의 의미들’은 모두 다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절망과 낙심’을 쓰레기통에 쑤셔 넣고 그 ‘만남의 의미들’은 마음에 남겼어야 했다. 후회가 된다.

아름다운 만남은 대개 연꽃처럼 흙탕물 가운데서 피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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