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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의 음식세상

한식 세계화의 선두 육회

hherald 2010.07.17 20:49 조회 수 : 12136

까칠한 셰프, 이두호의 음식세상 6

 

한식 세계화의 선두 육회

 

최근 한국음식의 세계화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국음식 중에 전채요리로 육회만한 음식이 있을까. 원래 우리 음식은 서양음식처럼 한가지 음식이 차례대로 나오는 시간전개형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한상 떡 벌어지게 차려서 먹는 평면전개형이어서 전채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이제 한식도 서양처럼 시간전개형으로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데 신선한 육회와 와인은 찰떡 궁합이고 육회 다음에 나오는 음식은 어떤 한식도 잘 어울린다.

 

한식을 즐기는 미식가들이 가장 먼저 추천하는 전채로 육회를 꼽는다. 회(膾)라고 하면 먼저 생선회를 떠올리기 쉽지만 원래는 육회(肉膾)를 가리키는 말이다. 좀처럼 날것을 먹지 않는 중국인들도 육회만은 매우 즐겼고 제사 음식으로 제사상에도 올렸다고 한다. 공자도 회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고 그 유명한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다>라는 고사에도 회가 나온다.

 

회자는 본래 날로 먹는 고기(膾)와 불에 구운 고기(炙)를 말하는데 매우 맛있는 음식으로 예시된 한 고사(古史)를 배경으로 한다. 많은 사람들의 입맛을 돋구는 회자(膾炙)는 어떤 인물의 뛰어난 행동이나 시문(詩文) 등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널리 알려지는 것을 <인구에 회자되다>라고 표현하게 되었다.

 

날로 먹는 것을 생회(生膾)라고 하는데 생회는 육회, 생선회, 송이회(버섯) 등이다. 그리고 살짝 데쳐서 먹는 회를 숙회(熟膾)라 하는데 숙회에는 생선살에 녹말을 묻혀서 끓는 물에 살짝 데친 어채(魚菜)가 있고 미나리나 실파를 데쳐서 오징어나 문어 등을 넣고 상투 모양으로 감아 초장에 찍어 먹는 <강회>도 있다.

 

그럼 우리는 언제부터 육회를 먹었고 어디에서 유래를 했을까. 임진왜란 때 조선에 주둔했던 명나라 군사들이 회를 잘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고 회는 오랑캐 음식이라며 욕을 했다는 구절이 나오는 걸 보면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절에 이 땅에 들어왔음을 알 수 있다.

 

유럽에서도 육회를 타타르 스테이크라고 부르는데 우리의 육회와 같은 뿌리를 가진 살코기 요리다. 옛부터 유럽에서는 동북아 지방을 타타르라고 불렀고 13세기 아시아와 유럽을 휩쓸었던 징키스칸의 기마민족도 타타르(Tatar)로 속칭되었다. 

 

생선이나 어패류를 날로 먹는 지역은 한중일 세나라가 있는 극동지역에 한정되어 있지만 육회는 서양에서도 먹는 음식이다. 나중 이 지면에 서양요리를 다룰 때 쓸 예정이지만 육회와 비슷한 서양요리로 프랑스에는 비프 타르타르가 있고 이탈리아에서 두루 사랑받는 음식인 까르파초(Carpaccio)도 쇠고기를 날로 져며 소스에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우리의 옛 문헌 속에도 육회가 나온다. 조선후기의 요리책인 <시의전서>에는 육회 만드는 법에 대해 <기름기가 없는 연한 황육(黃肉)의 살을 얇게 저며 물에 담가 핏기를 빼고 가늘게 채를 친 후 다진 파와 마늘을 넣고 소금, 후추가루, 깨를 섞어 고기와 잘 주물러서 잣가루를 많이 섞는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오늘날과 대동소이한 방법이다.

 

우리의 육회는 고기와 배의 조합이 전부일 정도로 간단한 음식이지만 제맛을 내기가 까다로운 음식이다. 육회에 꼭 들어가는 배는 자연 감미(甘味)식품일뿐 아니라 고깃살을 부드럽게 하는 천연 연육제(軟肉劑) 역할도 한다. 육회감으로는 소의 엉덩이살인 우둔살이나 홍두깨살, 그 아래쪽의 설도나 사타구니쪽에 붙어있는 대접살이 많이 쓰이는데 그 부위가 지방이 적어 담백하기 때문이다.

 

먼저 잘 숙성된 쇠고기를 준비하자. 행여 정육점에서 오늘 잡은 신선한 고기라고 했다면 그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쇠고기는 도축한 후에 냉장에서 10일 내외로 숙성한 것이 가장 맛있는데 신선한 고기는 바로 이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막 잡은 신선한(?) 쇠고기로 육회를 만들었다면 고기가 질겨서 아마도 고무를 씹는 맛일 것이다.

 

육회를 만들 때는 고기를 사다가 냉동고에서 살짝 얼리면 살균도 되고 썰기도 좋은 데다 먹을 때도 시원해서 입맛을 돋구는 차가운 전채 요리로 그만이다. 육회에는 왜 계란 노른자가 들어가는 것일까. 날고기의 비린 맛을 없애주고 고소한 맛을 더하기 위해서다. 오늘은 시원한 육회 한 접시를 놓고 연인과 마주 앉아 와인잔을 부딪혀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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