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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호의 음식세상

한국 음식문화의 집합체 - 육개장

hherald 2010.07.17 20:39 조회 수 : 18278

한국 음식문화의 집합체 - 육개장

 

육개장은 한식을 하는 어느 식당에서나 먹을 수 있는 평범하고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한국의 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우리 음식의 집합체다. 쇠고기를 비롯한 갖은 야채가 들어가기 때문에 영양학적으로도 우수한 식품에다 가장 한국적인 매운 음식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육개장의 어원은 육구장(肉狗醬)이다. 원래 구장(狗醬)이란 고기가 귀했던 시절, 서민들이 여름철에 먹던 보양식으로 개고기를 된장으로 끓인 장국이었다. 북한에서는 단고기국이라 부르는 개장국(狗醬)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삼복에 즐겨 먹던 음식 중의 하나다.

 

오늘날 개고기 식용에 관한 찬반논쟁이 분분하지만 우리 조상들이 개고기를 즐겨 먹었음은 사실이고 단백질 보충을 위한 복날의 음식에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고 끓이니 그것이 바로 육개장이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 보면 복날에 개장이란 것을 먹으며 여름철의 더위를 즐겼는데 개고기가 식성에 맞지 않은 자는 쇠고기로 대신하고 이를 육개장이라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곧 육개장은 개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을 위해 쇠고기로 대신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래서 대구탕(代狗湯)이란 이름으로도 불렸고 그 이름 탓에 대구 지역에는 유명한 따로국밥도 있었다. 육개장은 원래 서울 음식이지만 본래의 맛을 찾으려면 대구로 가야 하는 이유도 대구탕이 매운맛으로 대중화 되어 서울로 다시 입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운 지역일수록 매운맛이 발달하는 편이라 유난히 더운 대구가 원래 맵지 않은 서울식 육개장의 맛을 맵게 만든 셈이다.

 

최남선은 같은 책에서 조선의 향토음식을 지목했는데 평양의 냉면, 전주의 콩나물, 진주의 비빔밥, 대구의 육개장 등을 언급하며 육개장이 대구의 향토 음식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한편 오래 전에 음식칼럼을 맛깔스럽게 썼던 홍승면 선생의 글에도 육개장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사라진 대구탕에 대한 향수가 나오는 걸 보면 육개장이 대구탕으로도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이래서 대구가 초행길인 외지 손님이 생선탕인 줄 알고 대구탕을 시켰다가 쇠고기국이 나와 당황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육개장은 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대접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은 메뉴이기도 한데 허영만의 만화 식객의 영향이 크겠으나 아마도 국물이 빨간 육개장이 잡귀를 물리친다고 믿는 전통과도 관계가 있는 듯하다. 거기다 조문객이 몇 명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양을 즉석에서 늘리기 좋은 음식으로는 이런저런 재료를 넣고 끓이는 육개장이 가장 무난할 것이다.

 

육개장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고추기름이다. 지용성인 고추의 매운 성분은 뜨거운 기름에 맛깔스런 색으로 녹는데 원래는 쇠기름을 녹여서 고추기름을 만들었지만 요즘은 식용유로 만드는 것이 대세다. 빛깔 좋은 고운 고추가루를 알맞게 데운 기름에 넣고 된장 묽기의 농도로 개면 되는데 기름이 너무 뜨거우면 고추가루가 타거나 고추기름 색깔이 검붉게 나올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육개장의 재료는 전통식이 쇠고기 양지머리와 고사리, 토란대, 숙주 등이 들어가야 한다지만 딱히 정해진 것은 없다. 대구의 육개장은 무우와 대파에다 얼갈이, 심지어 선지까지 들어간 육개장도 있으니 전통이라고 무조건 넣는 재료를 한정할 필요는 없다. 양지머리 대신 사태를 푹 삶아 찢거나 얇게 저며 넣어도 되고 채식주의자는 야채만 넣고 끓여도 된다. 쇠고기 대신에 닭고기가 들어간 닭개장이란 메뉴도 있듯이 육개장은 들어가는 재료가 자유롭다.

 

전통 육개장에 고사리, 토란대가 들어간 것은 요즘처럼 야채가 사시사철 재배되지 않던 시절 한철에 나오는 고사리나 토란대를 말려서 저장했기 때문인데 다루기 힘든 그것들 대신에 느타리 버섯을 넣어도 맛있다. 푹 삶은 고기를 건져낸 후 기름을 걷어낸 육수에 삶은 고기와 대파, 숙주, 느타리버섯 등을 넣고 한소끔 끓으면 고추기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에 계란을 풀면 육개장의 완성이다.

 

영화 식객에 보면 대령숙수가 임금님께 육개장을 올리자 식음을 전폐하고 망국의 한을 달래던 순종이 육개장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온다. 쇠고기는 묵묵히 일하는 우리 국민의 근면성을, 고추는 맵고 강인한 조선의 기개를, 병충해에 강한 토란대는 외세의 침입에도 굴하지 않는 항일 의지를, 자생력이 강한 고사리는 들풀처럼 퍼지는 민중의 생명력을 나타낸다는 해석인데 비록 픽션이지만 육개장의 우수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소설가 성석제는 <소풍>이라는 책에서 <육개장은 개장국과 달리 대부분의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음식으로 얼큰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지만 그런 탓에 라면이며 인스턴트 식품들에까지 이름이 징용되면서 육개장은 값싸고 흔해 빠진 음식의 대명사처럼 됐다>고 육개장의 안타까움을 전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맛있는 것은 먼 데가 아닌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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