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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옛말에 ‘제왕무치(帝王無恥)’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왕은 무슨 일을 해도 수치스럽지 않다’라는 뜻이다. 통치를 위해서는 가릴 일, 안 가릴 일이 없다는 뜻으로 출발했으나 제왕의 온갖 악행을 옹호하거나 혹은 비꼬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영국 왕실과 상류층에는 이런 제왕무치를 떠올리게 하는 사례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오랫동안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막장극들이다.
 
그중에도 현 영국왕인 찰스3세와 전 부인 다이애나 자매와 얽힌 이야기는 특히 흥미를 끈다. 찰스는 어릴 때부터 부인감을 둘러싸고 많은 낭설이 있었다. 유럽 왕족, 귀족 가문 또는 영국 귀족 가문의 규수들과 유명 집안 처녀들이 본인은 관심이 있든 없든 대상에 올랐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은 처음부터 다이애나의 스펜서 가문에 제일 관심이 많았다. 가능하다면 스펜서 가문에서 며느리를 보았으면 하는 희망을 측근들에게 오랫동안 내비쳤다.
 
윈스턴 처칠 전 총리의 제대로 된 성이 스펜서-처칠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스펜서 가문은 영국 전통의 명문 집안이다. 지금 왕세자가 된 윌리엄만 해도 평민 집안 딸과 결혼할 수 있었지만 당시 찰스는 그런 꿈을 꿀 수도 없었고 그런 시도를 하지도 않았다. 여왕은 그래서 이번에 서거한 하이랜드 별궁 밸모럴성에서 다이애나 가족이 여름 휴가를 보낼 수 있게 배려하곤 했다. 덕분에 찰스와 찰스의 동생 앤드루 왕자가 어릴 때 다이애나와 6살 위의 언니 사라, 4살 위의 제인 등과 같이 놀기도 했었다.
 
 
다이애나 자매와 관계 가진 찰스3세
 
그러던 중 사라가 22살 때인 1977년 다이애나보다 먼저 찰스와 데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29살이었던 찰스는 ‘찰리스 엔젤’이라고 불리던 여인들 여럿과 확인되지 않는 데이트를 즐기던 중이었다. ‘찰리스 엔젤’은 3명의 미인들이 악당들을 상대로 싸우는 미국 ABC TV의 드라마로 찰스 왕자의 여인들도 드라마 제목으로 불렸다. 그러나 찰스는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유독 사라와 오래 사귀었다.
찰스는 한때 사라와의 결혼을 생각하기도 했다. 사실 왕비감으로는 사라가 다이애나보다 더 적격이었다. 우선 찰스와 사라는 7살밖에 차이가 안 났다. 13살 차이의 다이애나보다는 쉽게 말을 섞을 수 있었다. 거기다가 사라는 새침하고 수동적인 다이애나보다는 활달하고 유머도 있어서 찰스의 대화 상대로 안성맞춤이었다. 나중에 링컨셔 주장관(High Sheriff)의 공직을 맡을 정도로 다이애나보다는 지적 능력도 뛰어나 찰스와 격도 맞았다. 사라는 다이애나 사후에 다이애나 추모재단을 만들어 1억파운드(약 1600억원)를 모금할 정도로 수완도 훌륭했다. 그러나 사라는 알코올 중독과 약물 경험 때문에 왕세자의 부인감으로는 부적격이었다. 거기다가 왕세자를 나을 왕비의 제1 조건인 처녀성 유지도 못 했고 복잡한 남자관계도 문제였다. 그러나 만일 사라가 이런 사실을 모두 털어놓는 언론 인터뷰만 하지 않았어도 여왕이 스펜서 가문을 워낙 선호해서 결혼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둘 사이는 1978년 초 스위스로 스키 여행을 가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언론이 못살게 굴어 결국 사라는 비보도를 전제로 기자들과 가벼운 점심 약속을 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 사라는 유명인들의 개인사 폭로로 유명한 대중지 ‘더선’의 능구렁이 기자의 감언이설에 우쭐해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까지 털어놓고 말았다. 자신이 현재 찰스와 결혼을 전제로 깊이 사귀고 있다면서 자신의 과거 알코올 중독과 약물 경험까지 털어놓은 것이다. 거기다가 자신은 ‘애인도 수도 없이 많다(thousands of boyfriends)’는 해서는 안 될 말까지 ‘우리끼리만 아는 말’이라는 기자의 말을 믿고 해버렸다. 또 “나는 찰스와 결혼할 수가 없다. 그는 멋진 사람이지만 나는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청소부이든 영국의 왕이든. 만일 찰스가 청혼한다면 나는 거절할 것이다”라고 정말 맘에도 없는 말까지 뻐기면서 털어놓았다. 더선지의 기자가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해도 이런 특종을 놓칠 리가 없었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버킹엄궁은 발칵 뒤집어졌다. 찰스는 사라와의 거의 1년에 가까운 연애를 바로 끝내고 말았다. 사라는 찰스에게 전화로 매달렸으나 찰스는 “너는 정말 멍청한 짓을 했다”면서 관계를 끝냈다. 사라가 인터뷰 때 자신들의 관계는 단순한 정신적인 연애(platonic love)라고 했지만 이 말을 믿는 영국인은 아무도 없었고 지금도 없다.
그리고는 3년 뒤인 1980년 여름 찰스는 19살의 다이애나를 다시 만났다. 다시 만났다는 말은 언니 사라가 찰스에게 1977년 자신의 동생 다이애나를 잠깐 소개해준 적이 있어서다. 그때 16살의 소녀였던 다이애나는 이제 19살의 성숙한 처녀가 되어 있었다. 찰스의 눈을 다시 뜨게 한 것이다. 결국 둘은 다음해인 1981년 2월 약혼하고 7월 결혼한다. 이렇게 해서 찰스 왕은 자매 둘과 관계를 가졌다.
 
 
 
헨리8세의 엽기적 애정 행각
 
자매를 애인으로 둔 영국의 왕은 찰스가 처음이 아니다. 영국 왕 중에서 가장 탈도 많고 말썽도 많아 역사소설과 영화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 헨리8세도 자매와 관계가 있었다. 헨리 8세는 두 번째 부인 앤 볼린과 결혼하기 위해 첫 번째 부인 캐서린과 이혼을 했다. 캐서린은 당시 유럽의 최강국이던 스페인 공주였는데 로마 교황청은 이혼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헨리8세는 로마 교황청과 결별하고 자신을 수장으로 하는 영국 성공회를 만들면서까지 이혼을 감행한다.
그런데 1522년 헨리8세가 앤 볼린을 만나서 세상을 뒤집기 전 앤의 언니 메리를 먼저 만났다. 그리고는 메리에게 반해 캐서린 왕비와 13년째 결혼 중임에도 애인으로 삼았다. 메리는 캐서린 왕비의 시녀(lady in waiting·귀족 집안 출신으로 왕비 가까이서 시중 들고 말동무 하는 친구 같은 역할)였다. 둘의 관계는 3년간 지속되다가 1525년에 끝을 맺는다. 이 동안 메리는 딸과 아들을 각각 낳았지만 헨리8세는 자신의 자식이라고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고 1년 뒤 헨리8세는 메리의 여동생 앤을 애인으로 삼았다.
앤은 프랑스 생활을 마치고 막 돌아와 언니 메리와 같이 캐서린의 시녀를 하고 있었다. 한국 인터넷이나 심지어 언론과 역사책에도 앤이 하녀 출신이라고 나오는데 그건 틀린 얘기다. 물론 지식도 별로 없고 순진하고 소극적이던 메리와는 달리 앤은 적극적이고 재기발랄했다. 프랑스 궁중에서 오래 생활한 덕에 당시 여성들과는 달리 프랑스어·라틴어·이탈리아어를 하는 고도의 지성을 갖춘 신여성이었다. 심지어 자신의 사형을 앞두고 기도문을 작성해서 지금도 기도문이 남아 있을 정도다. 작곡은 물론 시작도 하는 등 예술감각이 남달랐던 헨리8세의 눈에 쏙 들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엘리자베스 1세의 이복 언니이자 여왕(메리 1세)이 된 메리밖에 못 낳아 눈 밖에 난 캐서린을 두고 헨리8세는 앤을 임신까지 시킨다.
자기 주장이 강한 앤은 헨리8세로 하여금 세상을 뒤집는 이혼을 결정하게 하고는 헨리8세를 못살게 밀어붙여 왕비 자리까지 차지하고 만다. 임신 중 날이 갈수록 배는 불러오는데 헨리8세가 이혼과 결혼을 미적거리자 헨리8세 턱 밑에 붙어 앉아 마구 조른 일은 유명하다. 헨리8세와의 1000일에 걸친 결혼생활(그래서 1000일의 앤이라고 불린다) 중에도 남편을 상대로 바가지를 긁고 못살게 굴어 염증을 느끼게 한다. 결국 헨리8세는 자신의 남동생과 근친상간을 했다는 누명을 씌워 앤을 사형시키고 만다. 그리고는 현 런던 뉴몰든 한인촌 인근의 햄프트코트궁에 머물면서 앤의 목이 잘리면 대포를 쏘아 알리라고 명령했다. 기다리던 대포 소리가 들리자 축배를 들 정도로 헨리8세는 앤을 지긋지긋해 했다. 이렇게 해서 헨리8세와 볼린 자매들과의 관계는 끝이 났다.
 
 
 
엘리자베스 1세를 독신으로 몰아간 트라우마
 
헨리8세의 딸이자 영국 역사 최고의 군주로 평가받는 엘리자베스1세 여왕에게도 막장 같은 패륜 이야기가 있다. 헨리8세가 6명의 부인 중 가장 사랑했던 세 번째 부인이자 유일한 아들을 낳아준 여인이 제인 시모어였다. 제인 시모어의 오빠인 토머스 시모어는 헨리8세가 죽자 헨리8세의 마지막 여섯 번째 부인인 캐서린 파와 결혼한다. 마침 이때 엘리자베스1세는 계모 캐서린과 같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같이 살고 있는 계모의 남편이자 다른 계모의 오빠인 토머스가 미성년자인 14살의 엘리자베스1세를 범한다.
일설에는 토머스가 워낙 멋진 미남이고 친절해서 엘리자베스1세가 사랑했다는 설도 있다. 당시는 미성년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이었고 둘 사이에는 직접적인 혈연관계도 없다. 그럼에도 토머스가 엘리자베스1세를 범한 일은 그런 개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영국에서도 역사학자들이 혀를 찰 정도의 패륜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엘리자베스1세는 그때의 기억 때문에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말이 나온다. 이것 말고도 어머니 앤 볼린이 아버지 헨리8세로부터 처참하게 버림받은 사실 때문에 남자에 대한 심한 불신이 있어서 결국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다.
패륜까지는 아니지만 눈살을 찌푸릴 수 있는 얽히고설킨,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애정관계도 있다. 영국 찰스 왕과 여동생 앤 공주 남매 사이의 사연이다. 앤 공주의 옛 애인은 찰스 왕의 현 부인 카밀라 여왕의 전 남편 앤드루 파커볼스이다. 앤드루가 1973년 카밀라를 만나 결혼하기 전인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둘은 애인 관계였다. 물론 찰스는 카밀라가 앤드루와 결혼하기 3년 전인 1970년 처음 만나 연인 관계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남매가 같은 시기에 나중에 부부가 되는 카밀라와 앤드루의 연인이었다는 사실만 보면 완벽한 막장 드라마다. 더욱 대단한 사실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찰스가 기다리라는 말을 안 하고 해외 근무를 가버리면서 카밀라와 헤어지고 난 뒤 나중에 귀국해서는 앤드루와 카밀라가 결혼해서 낳은 아들의 대부를 섰다. 그런가 하면 카밀라의 남편 앤드루는 전 애인 앤의 딸의 대부가 되기도 했다. 찰스와 앤 공주 남매가 둘 다 헤어진 전 애인 자녀의 대부라는 의미다. 하긴 유럽 사회에서 헤어지고 나서도 전 연인 사이의 관계가 친구 같은 사례가 크게 특이한 일이 아니긴 하지만 두 커플의 쿨한 관용은 정말 놀랍기만 하다.
또 다른 소문에 따르면 이 두 커플이 겉으로는 헤어졌지만 계속 불륜 관계를 유지했다는 말도 있다. 찰스는 카밀라가 결혼하고 나서 해외 근무에서 돌아와 유부녀였던 카밀라와 바로 관계를 다시 이어갔고, 그의 여동생 앤도 자신의 옛 애인이자 오빠의 전 애인의 남편인 앤드루와 관계를 계속했다는 말이다. 두 커플은 결코 한번도 헤어진 적이 없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확인되지 않는 왕실의 막장 드라마는 BBC의 히트 드라마 ‘더 크라운’으로 인해 더욱 진실 같아 보이긴 한다고 왕실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개 이런 전문가들은 왕실 편에 서기 마련이라 헛소문이라고들 하지만 말을 만들기 좋아하는 재야의 전문가들은 자신들의 이야기가 더욱 진실에 가깝다는 증거들을 계속 찾아내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예를 들면 앤드루와 앤 공주의 딸 자라가 같이 있는 사진이 너무 자주 언론에 노출된다든지 갈수록 자라가 앤드루를 닮아간다는 식으로 확인할 수 없는 불륜설을 캐낸다. 인터넷 클릭수를 올리려는 기사들을 독자들은 무조건 믿거나 믿고 싶어 한다.
사실 이렇게 네 명의 관계가 얽히고설키는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두 집안의 오랜 인연 때문이다. 카밀라의 전 남편 앤드루의 아버지가 엘리자베스 여왕의 어머니 엘리자베스 전 여왕(조지6세의 부인)과 가까운 친분 관계여서 두 가문은 연분이 오래되었다. 예를 들면 앤드루의 대모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어머니였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대관식 때 앤드루가 시동을 서기도 하는 인연이 있을 정도이니 두 가문이 이런저런 사연으로 얽히는 일은 좁은 영국 상류층 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한 여인과 연애한 처칠과 아들 랜돌프
 
이런 패륜의 막장 드라마는 굳이 왕실에만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연관된 이야기도 우리들의 통념으로는 차마 입에 올리기 어려울 정도로 막장이다. 처칠이 아들 랜돌프의 옛 애인 도리스와 연인 관계였다는 사실 말이다. 도리스와의 관계는 처칠이 그린 유화에 등장해서 부정할 수 없는 증거로 남아 있다. 특히 1982년 채널4의 탐사 프로그램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처칠이 1930년 남프랑스에서 런던 사교계의 유명 인사였던 도리스 캐슬로스 자작부인과 로맨스가 있었다는 처칠의 개인비서 증언도 있다. 랜돌프는 처칠이 도리스와 애정행각을 벌이기 2년 전 17살의 나이에 자신보다 11살이 많던 28살의 유부녀 도리스와 연애를 했었다. 물론 처칠이 아들과 도리스가 그런 관계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증거는 없고 몰랐을 개연성이 높긴 하다. 그러나 도리스 본인은 알았을 터이다.
처칠과 아들 랜돌프의 이상한 관계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랜돌프가 2차대전 참전 중 아내 파멜라가 시아버지인 처칠의 종용으로 1941년 미국 특사로 온 아브렐 해리먼과 동침을 했다. 해리먼은 나중에(1963~1965년·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대통령 재직 시) 미국 국무장관이 된다. 당시  처칠은 2차대전을 수행하기 위해 미국의 원조를 얻어야 했다. 또 미국을 참전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전권을 가진 미국 특사 해리먼의 환심을 사야 했다. 그래서 ‘애국심에 불타는 절박감’에 며느리를 해리먼의 호텔방으로 밀어넣었다는 말이 떠돈다. 당시 해리먼은 파멜라보다 29살이나 더 많았다. 이런 사실을 늦게 알게 된 랜돌프는 아버지 처칠을 용서하지 않았고 결국 아내와 이혼했다. 이런 사실은 이혼 후 런던 사교계를 주름잡던 당시 51살의 파멜라가 80살의 해리먼과 1971년 뒤늦게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걸로 증명된다. 해리먼은 30년 전의 인연과 함께 자신 때문에 이혼한 파멜라에게 죄책감을 느꼈고 마침 40년을 같이 산 두 번째 부인을 사별한 참이었다. 거기다가 자신이 노령이라 파멜라에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뜻도 있었다.
 
덕분에 파멜라는 해리먼이 1987년 죽자 워싱턴 사교계의 꽃으로 등장했다. 67살의 나이로 위싱턴 정가와 외교가에서 파티를 자주 열어 영향력을 발휘했다. 당시 파멜라는 189m의 훤칠한 시골 아칸소주 주지사에 불과했던 47살의 클린턴을 1993년 미국 42대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물심양면의 도움을 주었다. 클린턴은 파멜라의 공헌을 인정해 대통령이 된 지 5개월 만에 미국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프랑스 대사로 임명해서 보은을 한다. 파멜라는 1997년 파리 현지에서 사망했고 이때 클린턴은 일개 대사의 유해를 대통령 전용기로 실어오기까지 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장례식에서 “나를 만든 건 파멜라였다”라는 조사를 직접 읽었다.
 
사실 처칠이 아들의 애인과 관계를 가진 것은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지 모른다. 위고는 아들이 자신의 애인 앨리스 오지가 말을 잘 안 듣는다는 하소연을 하자 자신이 직접 만나 보고 도와주겠다고 하고는 그냥 가로채 버린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아들은 애인과 아버지를 나무라지도 않고 “파리의 여인들 중 과연 누가 아버지의 매력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나는 앨리스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위고는 섹스중독자였고 한때 파리 사교계 여인의 반이 자신과 동침했다고 떠벌렸다는 말도 있다. 2년 동안 200여명의 여인과 동침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니 위고의 주장이 허풍은 아닌 듯하다. 위고의 장례식이 열리는 날 파리의 사창가 여인들이 철시를 하고 전원 검은 상복을 입고 연도에 서서 지나가는 장례차에 조문을 했을 정도이다.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핫하고 힙한 영국(2022), 두터운 유럽(2021), 유럽문화탐사(2015),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영국인 발견(2010)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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