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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칼럼- 내가 왕이 될 상인가

hherald 2022.09.26 16:23 조회 수 : 1050

 

왕은 하늘이 낸다는 생각에 비재 받았던 절대적인 시대가 있었습니다. 절대군주는 하늘이 지

명한 것이기에 백성들은 하늘을 받들 듯 왕께 복종해야 했습니다. 왕은 일종의 하늘을 주관하

는 신의 화신임을 백성들은 절대 신앙으로 신봉했습니다. 그래서 왕의 명에 거역하는 것은 곧

하늘을 거역하는 것으로 여겨 가장 큰 죄인 반역죄를 적용해서 능지처참시켰던 역사는 동서고

금을 막론하고 쉽게 그 정보를 찾을 수 있습니다. 능지처참은 능지처사라고도 불리는 사형제

도로써 고려 공민왕 때부터 실행했던 형벌입니다. “언덕을 천천히 오르내리듯 고통을 서서히

최대한으로 느끼면서 죽어가도록 하는 잔혹한 사형으로서 대개 팔다리와 어깨, 가슴 등을 잘

라내고 마지막에 심장을 찌르고 목을 베어 죽였다.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죄인을 기둥에

묶어 놓고 포를 뜨듯 살점을 베어내되, 한꺼번에 많이 베어내서 출혈 과다로 죽지 않도록 조

금씩 베어 참을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형벌”(두산백과 두피디아 인용)입

니다.

 

절대군주주의 시대에 하늘은 신의 영역이었습니다. 왕의 명을 거역하는 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요, 하늘을 거역하는 것은 곧 신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절대군주제도는 콘크리

트 문화가 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그 잔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말 속담에 하늘은 스스

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절대군주주의를 반역하는 속담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노력하는 사람을 도와 성공하게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 속담은 실상 불가능한 일입니

다. 하늘은 특정한 사람을 지정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외에는 인간이 노력할지라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란 신분상승으로부터 오는 부귀영화입니다. 불가능에 도전

하는 것은 결국 입헌군주제라는 콘크리트가 파쇄되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952년부터 2022년까지 재위했던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2, 1926-2022)는 70년간

영연방을 다스리다 9월 8일 96세의 나이에 서거했습니다. 영국의 많은 국민이 왕의 죽음을

애도했습니다. 관공서, 학교, 은행, 공적인 관광지일지라도 장례식이 있는 9월 19일 날에는 문

을 닫고 왕의 죽음에 애도하는 일에 동참했으며 영국 교회마다 애도하는 코너를 만들어 놓고

슬픔을 함께 나눴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왕권을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왕의

죽음으로 왕권을 폐지하자는 운동이 일기도 했습니다. 왕권을 폐지하자는 것은 모든 국민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입니다. 절대군주 제도는 하늘이 이미 왕

이 될 사람과 왕족과 귀족들을 대를 이어 결정했던 시대이기에 그 시대를 종식하려는 의도는

모든 사람이 평등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에서 나온 기초적인 인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평민 그룹에 속한 백성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으로 인해 기회를 박탈당한 상태였습니다. 성

군으로 불렸고 역사에 남았던 왕들은 하늘을 백성으로 재해석했습니다. 1894년 고종 31년에

는 왕을 대항했던 반역죄와 능지처참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기울어 가는 조선을 살릴 수 있는

것은 하늘이 내린 왕족이 아니라 평범했던 백성들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백성이 곧 하늘이라

는 생각은 백성의 마음이 하늘의 마음이고, 하늘은 백성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

다. 이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하늘이 내렸다 하는 권력이 위협을 받은 것은 오히려 백성들이

아니라 하늘이 내렸던 왕족이었던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2013 년에 개봉된 영화 관상 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즉 왕은 하늘이 내는

것인가에 대한 기본적인 명제에 관한 생각입니다. 김내경(송강호 역)은 역모로 몰락한 양반가

출신으로 산속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관상을 보며 살았습니다. 그의 소문은 한양으로 퍼져갔

습니다. 고관들을 상대로 하는 기생집의 연홍의 제안으로 공적인 관상가로 살게 됩니다. 영화

의 주인공 내경은 천재적 관상가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있었습니다. 사람의 얼

굴을 한 번 보고 그 사람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정작 자신에게 다가올 위기

는 파악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찾아온 최고의 고위층은 수양대군 (이정재 역)이 될 사람이었습니다. 관상쟁이 앞에서

세간에 화제가 될 만한 유명 대사를 남깁니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 왕이 될 것인지를 쉽

게 말을 하지 못했지만 결국 외압에 의해 왕이 될 상임을 말하게 됩니다. 왕은 하늘이 내는

것을 믿었던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일 뿐입니다. 왕이 될 상은 천상천하에 존재하지 않아야 합

니다. 왕이 되었기에 왕의 상이 있는 것입니다. 성공했기 때문에 성공한 상이 만들어진 것입

니다. 이제 왕은 하늘의 결정이 아니라 국민의 투표로 결정하는 것으로 세상은 변화되었습니

다. 그래서 왕의 제도는 폐지되고 지구상엔 몇몇 나라에만 존재할 뿐입니다.

 

수양대군이 왕이 될 것을 말한 후에 내경은 회상합니다. 그 사람의 관상만 보았지 시대를 보

지 못했다 합니다. 파도만 보고 바람은 보지 못했고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이라는 사실을 회

상합니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고 나옴이 아니라 삶의 환경에서 물어

오는 거친 비바람을 견디어 내면 그것이 실력이고 능력이 됩니다. 내가 왕이 될 상인가를 관

상쟁이에게 물어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내게 주어진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자에게 기회가 열

려 있는 시대입니다. 현대는 기회가 모든 이들에게 균등하게 열려 있는 시대입니다. 줄을 잘

서기 위해 아부하는 정치적 졸부들이 권력의 끊을 부여잡고 특별한 혜택을 기다림이 아니라

주어진 일상을 성실하게 가꾸어 가는 것은 관상이라는 고립적 틀을 깨트리고 균등하게 주어진

기회를 쟁취하는 지혜입니다.

 

박심원 목사

박심원 문학세계 http://seemwon.com

목사, 시인, 수필가, 칼럼리스트

Email : seemwon@gmail.com

카톡아이디 : parkseem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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