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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유럽에서는 11월을 ‘위령성월(All Saint Month)’이라고 부른다. 돌아가신 모든 영혼을 기리는 예식이 각 교회마다 치러지는 시기다. 그렇게 과거를 돌아보고 난 뒤 유럽인들은 성탄이 있는 12월로 또 한 해를 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한다.
   
   사람들의 삶에서 장례식만큼 중요한 일도 없다. 그래서 각 민족마다 나름대로의 절차와 예법이 있다. 모든 것이 바뀌는 세상이지만, 영국인들은 아직도 장례식만큼은 200년 전인 빅토리아 시대 전통을 거의 그대로 지키고 있다. 예를 들면 장례식 조문객은 반드시 검은색이나 어두운 색조의 정장을 입어야 한다. 여자들은 거기다가 모자까지 쓰고 온다. 모든 제례가 간단해지는 세태에서도 장례식에서만큼은 반드시 갖추어 입는 걸 고인에 대한 진지한 예의라고 여긴다.
   
   
   성당은 안 다녀도 추모예배는 한다
   

   영국에서도 일단 가족의 일원이 세상을 뜨면 유족들이 부고(obituary notice)를 한다.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소셜미디어를 많이 이용하지만 아직도 격식을 갖추려는 가족들은 지방언론이나 전국지에 부고를 낸다. 부고에는 장례식 일정과 함께 장소, 연락처 등이 명기된다. 저명인사의 경우 언론이 고인의 약력과 함께 자세한 부고 기사를 올린다. 가까운 친지나 동료들이 추모사를 기고하기도 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추모사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추모사에는 추모와 함께 고인의 업적과 공헌을 언급하고 그로 인해 우리가 어떤 혜택을 받았는지에 대한 내용도 기재된다. 대단한 악인에 대해서도 추모사가 있기는 하다. 물론 냉정하게 악인을 고발하고 평가한다. 그래서 언론에 나오는 추모사들을 모으면 영국 사회의 일면을 고찰해 볼 수 있다.
   
   영국에서 장례식은 한국처럼 3일장을 치를 수가 없다. 사인을 규명하는 사망진단서로부터 장의사 예약을 비롯해 화장장이나 장지 준비 등이 우리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10일은 걸린다. 심지어 사망 후 한 달을 훨씬 넘겨 장례식을 치르는 경우도 있다. 어떤 영국인은 한 달짜리 휴가 5일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유해를 일단 냉동영안실에 모셔놓고 있다가 휴가를 다녀와서 장례식을 치르기도 했다.
   
   영국인들은 장례식(funeral service)을 장례예배(memorial service)라고도 부른다. 고인이 불행한 사고 등으로 갑자기 사망해 가족장(private service)을 치르고 나면 상당 기간이 지난 후 정식으로 조문객을 초대해 장례예배를 치르는 경우도 있다. 왕실, 귀족 또는 상류층들은 모든 형식을 완벽하게 갖춘 장례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추모예배를 따로 지낸다. 이때는 정말 가까운 친척, 친지만 초대한다. 그리고는 예배 후 따로 다과회를 가지면서 번잡했던 장례식에서 제대로 못 나눈 얘기를 친족들끼리 오붓하게 나누면서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인들은 이제 성당에 잘 안 나가지만 그래도 장례식만큼은 성당에서 신부들이 주례하는 일종의 미사 형식으로 치른다. 성가대가 성가를 부르고 유족 대표(주로 아들이나 딸)가 약력을 읽고 자신의 기억 속 고인에 대한 추억을 말해 식장을 숙연하게 만들거나 울음바다를 만들기도 한다. 이어서 친구나 친지 중에서 한두 명이 조사를 한다. 자신과 얽힌 일화를 소개하면서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다. 사실 이 두 절차가 추모예배의 정점이다. 추모객들은 조사를 들으면서 각자 고인에 대한 기억을 나름대로 반추한다. 바로 여기서 아주 영국적인 ‘무례’가 범해진다. 장례식은 무조건 엄숙해야 한다는 우리로서는 놀라운 ‘사건’이 일어난다. 유족이든 친지든 추모사 중 ‘반드시’ 한두 번은 고인과 있었던 가장 우스꽝스러운 사건이나 고인의 특이한 실수나 버릇을 ‘폭로’해서 슬픔에 잠긴 유족과 조문객들을 폭소하게 만든다. 가장 슬픈 일을 겪는 와중에도 이렇게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지나치게 엄숙하고, 불필요하게 심각하고,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진지할 일’을 피하는 해학과 풍자의 관습을 통해 고인에 대한 사랑을 표시한다.
   
   
   전문 장례식장이 없다
   

   장례식은 보통 가족이나 고인이 다니던 성당에서 치르지만 만일 고인이 평생 성당을 안 나갔다면 화장터에 딸린 예배실에서 치르기도 한다. 따로 상업 전문 장례식장이 없는 탓이다. 장례예배가 끝난 후 화장이 아닌 매장을 하는 경우 많은 조문객들이 장지까지 따라간다. 영국은 주로 주택지 중간에 공동묘지가 있고 그 안에는 거의 화장터가 있기에 고인의 집이나 장례예배를 한 성당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 서양 영화에 보면 장지에서 하관할 때 유족은 물론 가까운 친지들도 참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참석자들은 하관만 보고 매장은 인부들에게 맡기는 일도 많다. 대신 참석자들은 고인의 집에서 다과를 나누면서 고인의 사진을 보고 추억을 되새기며 유족을 위로한다. 유족은 다음날 다시 장지를 방문해 묘지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를 확인하고 조화를 놔두고 온다.
   
   이런 전통적인 장례 풍습도 요즘은 많이 바뀌었다. 가장 큰 이유는 영국도 거의 80%가 화장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영국은 원래 부활을 강조하는 기독교 전통에 따라 화장이 거의 없었다. 1900년대 초만 해도 화장을 하는 비율은 1% 미만이었다. 요즘은 성당에서 장례식이 끝난 후 유족과 유해를 실은 장의차가 화장터로 간 뒤 추모객들은 안내에 따라 인근 펍이나 레스토랑에서 유족들이 준비한 다과를 나누면서 유족들이 화장터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유족들은 화장터에서 관이 들어가는 것만 보고 돌아온다. 뒤풀이 장소를 찾은 유족들은 조문객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하고, 조문객은 유족들에게 위로의 말을 차분하게 나눈다. 유족 측은 이때 고인의 생전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사진이나 기념품 등을 전시해 놓기도 한다. 영상을 틀면서 고인을 같이 기리는 경우도 많다. 갈 때 갖고 가라고 기념품을 준비하기도 하는데 대개 양초 같은 작은 물품들이다.
   
   최근 필자는 영국 친구를 잃었는데 그의 아내는 정말 선웃음이 픽 나오는 고인의 ‘유치한 취미’를 장례식 참가자들에게 공개했다. 고인이 아끼던 청개구리 관련 조그만 물건들을 가져다 놓았는데, 진지하기 그지없었던 고인이 이런 아이 같은 취미가 있는 줄은 가까웠던 조문객들도 몰랐다. 모두 웃으면서 고인의 인간적인 면모를 다시 한번 기렸다. 고인을 두고두고 기억하라고 고인이 아끼던 물건들을 조문객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기도 했다. 청개구리가 그려지고 새겨진 넥타이, 책갈피, 인형, 모형, 연필, 필통, 배지 같은 잡동사니 물건들을 고인은 생전에 참 많이도 모아 놓았다. 필자가 그때 갖고 온 책갈피는 필자 책상에, 넥타이는 옷장에 걸려 있다. 이렇게 대영제국을 운영하던 영국인들은 의외로 섬세하고 잔망스럽다. 고인은 로이터통신과 BBC 기자를 하다가 은퇴한 후 기자 교육을 하는 전문가로 일했다.
   
   
   장례식 후 성대한 뒤풀이
   

   영국인들은 이런 장례 절차를 일러 ‘깨어난다’라는 뜻의 ‘wake’라고 부르기도 한다. 원래는 장례식 전에 치르던, 이제는 보기 힘든 우리의 장례식장 ‘밤샘’과 같다. 한자로 ‘경야(經夜)’라고 부르는 ‘Wake’ 풍습에는 혹시 고인이 깨어날까 하는 유족들의 애달픈 염원이 담겨 있다. 실제 유해를 병풍 뒤에 모셔 놓고 그 앞에서 친지, 친구들이 밤을 새면서 지킨 것이다. 지금처럼 의사가 사망선고를 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냉동고에 넣지 않았다. 의사의 사망선고 뒤 장례 준비를 하던 중 고인이 깨어나는 경우가 가끔 있기도 하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혹시라도 고인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비해 가까이에서 경계하고 관찰하려는 이유로도 이런 풍습을 만들었다. 물론 옛날에는 멀리 있는 친족과 친지 등 조문객이 참석하기를 기다리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통계로 보면 영국도 한국처럼 1936년경에는 90%의 유해가 장례식 전 고인의 집에 모셔져 있었다. 이때 바로 한국식 밤샘이 행해졌다. 지금은 거의 10% 이하만 이 전통을 지킨다. 유해를 모셔놓고 밤샘을 한다는 의미의 ‘Wake’도 장례식 후 뒤풀이로 뜻이 바뀌었다.
   
   장례식 후의 뒤풀이는 원래 게일족들의 풍습이어서 주로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특히 아일랜드인들이 장례식 후에 치르는 흥겨운 파티 같은 뒤풀이는 유명하다. ‘추신. 너를 사랑해’(‘P.S. I Love You’·2007년작)라는 영화의 펍 파티 장면은 유명하다.
   
   최근 한 한인 교포의 영국인 남편이 세상을 뜬 후 치렀던 장례식 뒤풀이가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영국 한인촌 노인회 회원이기도 했던 고인은 사교댄스를 워낙 좋아해 자신의 장례식 후에 파티에서처럼 음악을 틀어 놓고 조문객 모두 춤추게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검은 상복 말고 화려한 파티복을 입고 와서 장례식이 끝난 후 넓은 공회당에서 파티를 성대하게 하라는 유언이었다.
   
   대개 이런 뒤풀이는 2~4시간 정도 계속되지만 때때로 밤을 새울 만큼 길어지기도 한다. 수년 전 런던 중심 유흥가인 피카딜리에 있는 대형 클럽 소유주의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열린 대신, 고인의 유언에 따라 뒤풀이는 밤샘 파티로 성대하게 치러졌다. 뒤풀이가 고인 소유의 클럽에서 열렸는데 클럽을 평소 애용하던 영국 유명 연예인들이 대거 참석해 시중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예 장례식은 생략한 채 유해를 바로 묘지로 보낸 뒤 성대한 뒤풀이만 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고인과 유족들의 뜻에 따라 뒤풀이에만 조문객들이 참석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파티 같은 뒤풀이로 인해 이제는 슬픈 장례식이 아니라 ‘행복한 장례식(happy funerals)’이 대세인 셈이다. 심지어는 뒤풀이하는 동안 폭죽을 터뜨리기도 한다.
   
   요즘 영국의 장례식 뒤풀이를 지켜보고 있자면 한국 영화 ‘축제’(1996년작)가 떠오른다. 영국의 장례식 예의를 알려주는 웹사이트에는 ‘장례식을 이용해 가족이나 친족 간 아직도 풀리지 않은 과거의 긴장관계를 풀려고 시도하지 말라’고 권하지만 ‘축제’의 원작자 이청준 작가와 임권택 감독은 장례식장에서 펼쳐지는 유족·친족들 간의 온갖 사연들을 다 풀어헤쳤다. 별별 인간사가 펼쳐지고 결국 집안 어른의 장례식을 계기로 가족과 친족이 그동안의 오해를 풀고 화해한다는 설정은 놀랍다. 가장 슬픈 장례식을 축제로 표현한 이청준과 임권택의 시대를 앞선 혜안이나 다름없다. 최근 한국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도 이런 행복한 장례식이 등장한다. 원로배우 김영옥이 열연한 김감리 할머니 장례식 장면도 축제 분위기였다. 영국에서 이미 유행을 타기 시작한 파티 같은 장례식이 한국에서도 곧 대세가 될지 모르겠다.
   


   눈물 대신 기부

   
   영국이나 한국이나 장례식이 끝나면 대개 친구들이 관을 지는 경우가 많지만 나이가 든 고인의 경우 질 사람이 없으면 장례회사 직원들이 진다. 관이 장의차에 실려 장지로 갈 때는 반드시 일정 구간 서행을 하는데 이때 길이 밀리면 뒤의 차들은 고인이 누군지 몰라도 아무도 경적을 울리거나 항의하지 않고 서서히 따라가는 걸 당연한 관습으로 여긴다. 특히 시골의 경우는 아직도 장의차나 장의 마차 앞에 장의 주관인(funeral director)이 천천히 걸어가면서 소리를 외치며 주위의 시선을 끈다. 이를 일러 옛날 우리 풍습인 ‘물렀거라’와 같은 뜻의 ‘paging away’라고 부른다. 이제는 거의 사라진 우리들의 옛 꽃상여 장례 행렬 앞에 서서 상두꾼들이 주고 받던 슬픈 타령의 만가(輓歌) 역할이기도 하다. 그러면 고인을 모르는 길가의 행인들마저도 모자를 벗거나 가슴에 손을 얹어 조의를 표한다.
   
   영국인들은 기독교 사상이 머리에 밴 탓인지, 장례식을 고인과의 마지막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 주택지 안에 우리가 혐오시설이라고 여기는 공동묘지가 있고, 거기에는 반드시 화장터가 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고인을 반드시 집 가까운 묘지에 모신다. 그리고는 틈만 나면 묘지에 가서 꽃도 놓고 오고 비석을 쓸기도 한다. 동네 공동묘지에 가보면 꽃을 챙길 직계가족이 과연 있기나 한가 의심이 들 만큼 아주 오래된 묘지에도 생화가 놓여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영국인들은 고인을 아주 먼 외딴 장지에 묻지 않고 자신의 집 근처에 두고 자주 찾아본다. 이런 모습을 보면 한국인이 자랑하는 효성(孝誠)이 과연 무얼 뜻하는가 하는 의문도 든다.
   
   캠퍼스 커플이어서 50년의 삶을 같이 산 남편을 갑자기 잃은 필자 친구의 부인은 장례식은 물론 동네 카페에서 열린 뒤풀이에서도 ‘영국인답게’ 눈물은커녕 슬픈 표정 한 번 짓지 않았다. 영국인들은 공공장소에서 ‘절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여기고 철칙처럼 지킨다. 장례식에서마저 슬픔을 나타내는 일은 타인에게 폐를 끼친다는 이유에서다. 모든 감정은 속으로 삭이고 어떤 경우에도 평정심을 유지해야지 그러지 않으면 ‘정상인이 아니다’라는 취급까지 받는다. 한국인들의 영국 여행기를 보면 비행기 출발이 몇 시간씩 늦어지는데도 항공사에서 아무 안내 방송도 안 하는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아무런 불평 없이 조용히 책을 보는 영국인들을 경악의 눈으로 본 경험을 많이 얘기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조용하게 있는다고 해서 영국인들이 결코 가만히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는 조용히 당하지만 반드시 나중에 절차를 밟아 적절한 보상을 받는다. 현장에서 힘없는 항공사 직원들에게 화내고 난리를 쳐봐야 화내는 자신의 감정만 손해볼 뿐 실질적 이득이 없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국인들은 경험으로 터득한 합리적인 방식을 택하는, 어찌 보면 무서운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옆에서 살면서 매일 느낀다.
   
   영국인들이 고인의 유족에게 부의금을 전달하는 방식도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 영국인들은 장례식 현장에 접수대를 두고 현금을 주고받지 않는다. 상당히 오래전부터 영국에는 고인이나 유족들이 지정한 자선단체 기부를 통한 부의금 전달이 일반화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필자의 영국 친구 부인도 킹스턴병원과 영국 숲 관리 단체에 고인 이름으로 개설된 기금에 기부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기부할 곳으로 지정된 기관의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조문객들의 이름과 기부 금액이 나온다. 거기에는 장례식을 거행했던 성당의 당일 헌금도 포함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얼마 전 한 영국인은 사고로 세상을 뜬 군인 조카를 기억하기 위한 헌정 기금(Tribute Fund)을 만들기도 했다. 기금 모금 행사도 하고 수공예품도 만들어 팔아서 1만파운드(약 1600만원)의 기금을 만들었다. 고모인 그녀는 “나는 조카가 세상을 떠났을 때 오래 기억되길 바랐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의미 있는 일을 통해 조카를 기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기금을 만들었다”라고 기금 조성의 목적을 설명했다. 그녀는 이렇게 모은 기금을 군인들의 복지를 돕는 왕립 영국군단(The Royal British Legion·RBL)에 조카 이름으로 기부했다. 자신의 슬픔을 자신만의 것으로 간직하지 않은 셈이다. 타인을 돕는 일을 통해 고인에 대한 기억이 오래가도록 하고 고인의 죽음을 더욱 명예롭게 만든 것이다.
   
   영국인들도 우리처럼 인간은 흙으로 돌아간다고 여긴다. 신이 인간을 흙으로 만들었다는 기독교 신앙 때문이다. 전통적인 매장 하관식에서는 내려진 관 위에 유족과 조문객들이 흙과 꽃을 뿌린다. 이 관습은 고인이 흙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을, 꽃은 유족과 조문객의 고인에 대한 사랑을 상징한다. 그래서 장례식을 주관하는 신부는 거의 예외 없이 성경의 ‘일반기도서’ 문구를 읽으며 기도한다. ‘우리는 그래서 지금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먼지는 먼지로 돌아가게 이 유해를 땅에다 묻는다.(We therefore commit this body to the ground, earth to earth, ashes to ashes, dust to dust.)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유럽문화탐사(2015), 두터운유럽(2021)
영국인 발견(2010),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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