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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1988년 2월 영국 런던 BBC 스튜디오. 당시 79살이던 한 노인이 방청객석 첫 줄 중앙에 앉아 있었다. 노인은 자신이 단순히 방청객으로 초대받아 온 줄 알고 있었다. 당시 노인이 앉아 있던 곳은 BBC TV의 인기 프로그램 ‘인생이 다 그렇지(That’s Life!)’의 방송 현장. 이윽고 프로그램 사회자인 에스테르 랜전이 영문을 모르고 앉아 있던 노인을 바라보면서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관객 중에서 1939년 체코에서 니컬러스 윈턴에 의해 구해져 영국으로 온 사람들이 있으면 일어나라”고 말했다. 그러자 바로 노인 주위에서 20여명이 일어섰다. 그러자 사회자 랜전은 어리둥절해하는 윈턴에게 “당신 옆의 여인이 바로 당신이 1939년 프라하에서 구해 영국으로 건너온 사람이니 인사하라”고 했다. 그 여인은 윈턴의 가슴에 안겼고, 윈턴은 안경 너머로 눈물을 닦았다.
   
   당시 방송 프로그램에 초청된 20여명 모두는 그날까지 자신을 구해준 윈턴을 한 번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는 BBC가 방송국으로 나오라고 할 때까지 누가 자신을 구한지도 몰랐다. 그동안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한 여인은 답답한 나머지 영국 성공회 최고위직 캔터베리 대주교에게 ‘은인을 찾아달라’며 개인적으로 부탁하기도 했었다.
   
   이날 방송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방영되고 나서 세계 언론은 2차 대전 당시 체코의 유대인 아이들을 탈출시킨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루었다. 이에 따라 영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살고 있던 ‘윈턴의 아이들(Winton’s Children)’이 BBC로 연락해 오기 시작했다. 결국 1988년 7월, 2차 방송이 있었고 사회자 랜전은 다시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관객 중에서 1939년 체코에서 니컬러스 윈턴에 의해 구해져 영국으로 온 사람들이 있으면 일어나라”는 말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200여명의 방청객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해서 딱 50년 만에 ‘영국판 쉰들러’ 윈턴의 선행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로부터 5년 뒤인 1993년 12개의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만들어지는 데도 이 윈턴의 이야기는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윈턴의 선행이 방송을 통해 알려지게 된 것은 윈턴의 아내 덕분이었다. 윈턴의 아내는 1988년 초 자기 집 다락방에 무언가를 찾으려고 올라갔다가 잡동사니 속에서 두꺼운 스크랩북을 찾게 되었다. 거기에는 수많은 아이들의 사진과 이름, 여행서류, 편지, 메모 등이 적혀 있었다. 스크랩북을 들고 내려와 묻는 아내에게 윈턴은 “별것 아니다”라고 답하면서 대략의 설명을 해줬다. 그리고는 “태워 버리라”고 했다. 얘기를 들은 아내는 “절대 태워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아이들의 일생이다”라고 반대했다.
   
   윈턴은 결국 아내가 자신이 구한 유대인 아이들의 행방을 추적해 보는 걸 허락했다. 윈턴의 아내는 체코 출신 홀로코스트 역사학자이자 당시 영국 최대 언론그룹 데일리미러 사주인 로버트 맥스웰의 부인에게 이 자료들을 가지고 갔다. 마침 맥스웰의 부인은 체코인이었다. 그렇게 해서 미러지는 특종을 했고 기사를 본 BBC는 이미 50~60대 노인이 된 당시 아이들을 추적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윈턴은 당시 영국에 데려온 아이들을 찾았으면 한다는 BBC의 요청에 자료를 전부 넘겨주었다.
   
   
   스키여행이 아이들 구출 작전으로
   
   그러면 ‘윈턴의 아이들’ 이야기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1938년 12월 스위스로 친구들과 스키 휴가를 가려고 준비 중이던 주식중개인 윈턴(당시 29세)에게 여행을 같이 가기로 했던 한 친구가 프라하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이 친구는 당시 유대인 수용소의 끔찍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막 독일이 체코를 점령하고 유대인들을 집단수용소에 감금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집단수용소에 수용된 유대인을 돕고 있던 친구는 윈턴에게 직접 와서 보기를 권하면서 “스키는 가지고 올 필요 없네”라고 농담을 했다.
   
   유대계 영국인이던 윈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프라하로 날아갔다. 이미 독일에서는 그 유명한 ‘수정의 밤(Kristallnacht)’ 혹은 ‘깨진 유리의 밤(Night of Broken Glass)’이라고 불리던 난동이 시작되던 참이었다. 이는 나치 선동에 흥분한 독일 군중들이 독일 내 유대인 상점을 습격한 ‘집단학살(Pogrom)’을 의미한다. 그 결과 1938년 11월 9~10일 이틀 사이에만 91명의 유대인이 사망했고 3만명이 체포되었다. 또 267개 유대 교회가 파괴되었다.
   
   프라하에 도착해 수용소로 간 윈턴은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의 참상을 목격하게 된다. 특히 아이들은 목불인견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29살의 유대인 청년 윈턴은 동족들의 참상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의분에 차서 바로 자기 호텔 방을 사무실로 만들고 체코에서 탈출시킬 유대인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독일 소식으로 불안에 떨고 있던 유대인 부모들 사이에 금방 소문이 나서 호텔 방 앞에는 긴 줄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윈턴은 결국 2000여명 아동들의 명단을 확보하고 3주 뒤인 1939년 초 친구 두 명에게 프라하 업무를 맡긴 채 아이들을 입양할 가정을 구하러 영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아이들을 싣고 갈 열차 운송비를 모금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을 실어올 기차도 수배하기 시작했다. 마침 영국 철도회사가 프라하까지 운행을 막 시작한 참이라 염가에 협상을 할 수 있었다. 윈턴은 ‘체코 난민 영국 위원회 아동 분과’라고 자신들의 조직을 명명하고 ‘난민아동구호 운동’과 합동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의 사진을 넣은 홍보물을 제작해 뿌리고 신문과 교회 그리고 유대인 교회를 통해 입양가정을 구하고 자금 모금을 호소했다. 영국 정부를 향해서는 아이들의 입국 비자를 허용해 달라고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구출 작전이 시작돼 처음으로 20명의 아이를 실은 열차가 프라하를 떠나게 된다. 문제는 첫 구출을 후원한 단체가 유대인 아이들을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키려는 ‘바비칸 미션’이었다. 이를 문제 삼는 유대교 랍비들에게 윈턴은 “그러면 아이들을 죽게 버려둘 거냐”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 아이가 기독교인이 되는지는 나중 문제이고 지금 당장은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게 우선이 아니냐는 뜻이었다.
   
   런던에서 윈턴은 낮에는 증권중개인으로 일하고 저녁에는 아이들을 구하는 일에 매달렸다. 아이들 비자 문제와 수송경비 모금을 위한 작업을 밤을 꼬박 새면서 해나갔다. 문제는 영국의 안일한 관료제도였다. 프라하에 있는 아이들의 안전은 하루하루 위협받고 있는데 비자 작업도 늦어지고 수송경비도 잘 모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전쟁의 위협이 나날이 높아가는 시점에서 영국 정부로서는 유대인 아이들 구출 문제는 우선 고려 순위에 들어 있지 않았다.
   
    

“선을 위해 악을 행한 셈”
   
   결국 영국 정부는 전쟁이 끝나면 아이들을 체코로 돌려보낸다는 조건으로 당시로는 엄청난 거액인 50파운드(현 시가 2300파운드·약 345만원)의 보증금을 요구했다. 보증금을 예치해야 비자를 내주겠다는 조건이었다. 또 아이들을 받아줄 가정이 미리 있어야 한다는 조건도 내세웠다. 이런 모든 조건을 갖추어도 영국이 받아줄 수 있는 아이들 숫자를 제한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미국과 오스트리아 등으로 보낼 방법을 찾았으나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훗날 윈턴은 “만일 미국이 허락을 했다면 2000여명은 더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두고두고 애석해했다.
   
   영국 당국의 서류 처리가 늦어지면서 조급해하던 윈턴은 결국 언론에 입양가정 모집과 모금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광고에는 아이들 사진과 이름 등을 게재해 영국인의 인간애에 호소했다. 입양가정이 신청해도 적합한 가정인지 확인해야 했기에 혼자서는 도저히 일을 해낼 수가 없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 1939년 3월 15일 나치 독일이 체코 전국을 점령하면서 정상적으로 절차를 밟아갈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몰리게 되었다. 결국 윈턴은 영국 내무부에 제출할 서류를 위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입양할 가정에 대한 서류를 위조하기 시작하다가 막바지에 몰려서는 내무부 난민 비자마저 위조하기 시작했다. 영국 난민 비자가 있어야 체코를 점령한 독일이 아이들 출국 허가를 내주기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윈턴은 프라하 현지에서도 각종 편법을 썼다. 프라하 게슈타포 대장을 돈으로 매수해서 눈을 감게 했고, 여행증명서를 위조해서 프라하 열차 운영 당국에 제출하고 동시에 그들에게도 돈을 주어 아이들을 태운 열차가 제대로 떠날 수 있게 만들었다. 완전히 영화 같은 일이 실제 현장에서 벌어진 셈이다. 이를 두고 윈턴은 “선을 위해 악을 행한 셈이다(Do evil for Good)”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유대교 561명, 유일교도 52명, 가톨릭 34명, 기타 17명 등 도합 669명의 아이들이 구출되었다. 그 어린이 중에는 영화 ‘토요일 밤과 일요일 아침’, 그리고 메릴 스트립과 제러미 아이언스가 주연한 명화 ‘어느 프랑스 대위의 여인’(1981)을 감독한 카렐 라이츠도 있었다. 또 ‘영국 난민의 수호자’라고 불리는 노동당 상원의원 앨프 덥스 남작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 ‘윈턴의 아이들’은 독일, 오스트리아,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의 아동 1만명을 영국으로 구해낸 ‘킨더트랜스포트(Kindertransport)’ 수송 작전의 일부로 평가받는다.
   
   아이들 구출에 성공한 후 윈턴은 자신의 선행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1948년에 결혼해 1988년 우연히 다락방에서 관련 자료를 발견한 부인에게도 40년간 말하지 않고 살았다. 윈턴은 자료 발견 이후 선행을 알리자는 부인의 간청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당신은 왜 이 일을 대단한 일로 만들려고 하는가? 나는 조금 도왔을 뿐이다. 그냥 마침 그때 그곳에 있어서 그런 일을 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2015년 106세로 수면 중에 영면한 그의 부고 기사에 가디언지는 이렇게 썼다. ‘그의 선행은 남이 모르게 한 일이라 더욱 빛났다.(His was a good deed performed by stealth.)’ 윈턴은 자신은 영웅이 아니라고 끝까지 변명했다. 대부분의 일이 영국에서 처리됐기에 자신은 한 번도 신변이 위험에 처해 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차라리 자신보다는 프라하 현지에서 모든 궂은일을 처리한 동료들이 받아야 할 칭송이라고 했다.
   
   

 

   

 


“나는 진짜 영웅이 아니다”
   
   윈턴의 평전을 쓴 작가 한 명은 이렇게 썼다. ‘내가 그를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나 라울 발렌베리(Raoul Wallenberg)에 비교하면 펄쩍 뛰면서 기겁을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한 일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믿게 하려고 무진 노력을 했지만 실패했다.’ 윈턴은 자신을 헝가리 유대인 10만여명을 구하고 종전 후 소련군에 체포되어 언제 어디서 죽은지도 모르는 스웨덴 외교관 발렌베리나, 독일인이면서도 전 재산을 털어 유대인 1200명을 구한 쉰들러 같은 이들과 비교되는 걸 거부했다. 그래서 세인들은 윈턴 경을 ‘영웅으로 불리길 꺼리는 영웅(reluctant hero)’이라고 불렀다.
   
   윈턴의 100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2009년 9월 1일 한 행사가 열렸다. 1939년 9월 1일 결국 출발하지 못했던 9번째 구출 열차를 추모하기 위해 프라하에서 출발한 ‘윈턴 열차’가 22명의 당시 ‘어린이’와 그의 후손들을 싣고 당시의 탈출 루트 그대로 북해를 건너 영국에 도착한 것이다. 런던 리버풀역에 도착하는 기차를 맞으면서 윈턴 경은 자신이 구하지 못한 250명의 운명을 생각하며 유한의 눈물을 흘렸다. ‘무언가가 불가능하지만 않다면 거기에 반드시 해낼 수 있는 길이 있다.(If something is not impossible, then there must be a way to do it.)’ 윈턴의 이 인생 철칙은 깊이 새겨볼 만한 말이다. 이제 윈턴의 아이들은 후손들까지 포함해 모두 6600여명에 달한다.
   

 

 

   
인터뷰 | ‘난민의 수호자’로 성장한 ‘윈턴의 아이’ 앨프 덥스 상원의원
   
“인류애는 계산이 안 되는 천성”
   

현재 83세인 노동당 소속 상원의원 앨프 덥스(Alf Dubs) 남작은 1939년 3월 체코에서 영국으로 건너온 ‘윈턴의 아이’ 669명 중 한 명이다. 그를 런던 해머스미스에 있는 자택에서 인터뷰했다.
   
   앨프 덥스 의원은 영국 4대 명문 중 하나이자 좌파 성향이 강한 런던정경대학교(LSE)를 졸업한 후 노동당에 입당, 일찍이 정치에 투신했다. 영국 노동당 하원의원 2선을 거쳐 세계 사회주의의 본산인 ‘파비안 소사이어티’ 의장과 영국 최고의 민권단체인 ‘리버티(Liberty)’ 의장을 역임했다.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회주의 정치인답게 일생을 난민 문제에 바치면서 천착해 왔다. 끊임없이 난민 관련 법안을 제안해 온 그를 세상은 ‘난민의 수호자(Champion of Refugee)’라고 부른다.
   
   덥스 남작은 ‘윈턴의 아이들’ 중에는 가장 행복한 경우이다. 나치가 체코를 점령하는 바로 그날 아버지가 체코를 탈출해 영국으로 건너왔기 때문이다. 덥스 남작이 체코에서 열차를 타고 와서 런던 리버풀 스트리트역에 내릴 때 아버지가 마중 나와 있었다. 그리고는 얼마 안 있어 어머니까지 건너와 양친과 함께 영국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덥스 남작에게 “현재 한국에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391명이 도착해 있다”라고 하자 그는 “일본은 난민들을 받아들이는 데 아주 인색하다”고 말을 꺼냈다. 그에게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한국 내에서는 논란도 있다”고 하자 이런 말을 했다. “20세기에 들어와 헝가리, 베트남, 보스니아, 동유럽, 북부아프리카, 시리아, 이제 아프가니스탄까지 우리들에게 난민은 너무나 익숙한 문제이다. 그러나 난민 문제는 우리에게도 인기 없는 정치적 주제이다. 하지만 인류애는 산수로는 계산이 되지 않는 인간 본연의 천성이어야 한다.” 그는 “한국은 (난민에) 익숙하지는 않겠지만 기술적으로 발달되고 부유한 한국도 이제는 국력에 맞는 책임을 느끼고 난민 구제의 행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라고도 충고했다.
   
   그는 기회가 날 때마다 영국 언론을 비롯해 세계 언론에 쉬지 않고 난민 문제에 대한 기고를 하고 있다. 두 달 전 가디언지에는 ‘내무부의 난민 문제 정책이 전혀 효과적이지 않고 난민들과 망명자들이 망쳐진 제도에 의해 수년간 방치되고 있다’는 칼럼을 썼다. 그는 필자의 눈을 쳐다보면서 “망명자(asylum seeker)로 존재하는 자체는 전혀 불법이 아니다(There is nothing illegal in being an asylum seeker)”라는 인상적인 말도 했다. “언제나 난민을 만드는 국가나 민족 간의 불화는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 인류는 난민 문제를 피할 수 없다. 정치적인 난민뿐만 아니라 이제는 기후 난민 문제도 생기고 있지 않은가? 우리 누구든 난민이 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현재 영국은 프랑스를 위시한 유럽 대륙으로부터 건너오는 ‘무작정 불법 난민’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딩기(dinghy)’라 불리는 튜브를 타고 건너오는 난민이 올해만 해도 지난 7월 21일까지 모두 8452명이나 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덥스 남작은 “합법적인 방법이 없을 때 사람들은 위험하더라도 불법적인 방법을 찾기 마련”이라면서 “그들에게 합법적인 방법을 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내가 얘기해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이 자신들에게 합류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고 탈레반에 협박당한다. 또 처녀들은 탈레반과 결혼하라고 강요당한다고 한다. 탈레반들 말에 따르지 않으면 처형하겠다고 해서 탈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덥스 남작의 취지는 ‘영국이 원하지 않아도 영국 국력에 맞는 수준의 난민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유럽문화탐사(2015)
번역: 영국인 발견(2010),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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