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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영국 연재 모음


역사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자료를 선별해서 결론을 내면 역사 해석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려면 오로지 선한 해설자를 만날 때만 가능하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좀 다르다. 선의의 해설자 없이도 자신이 민족과 국민, 더 나아가 신을 위한다고 굳게 믿는 절대권력자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역사를 통해 쉽게 배운다. 그 대표적 역사가 영국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영국시민전쟁(English Civil War·1642~1651)이다.
   
   당시 올리버 크롬웰(1599~1658)이라는 희대의 혁명가는 영국 인구 650만명 중 3%가 넘는 거의 20만명의 죽음을 딛고 권력을 차지했다. 9년간에 걸친 처참한 유혈사태를 벌인 끝에 권좌에 올랐다. 그리고는 절대권력을 휘두르며 자신이 믿는 바대로 ‘영국연방공화국(the Commonwealth of England)’이라 불리는 유일무이한 ‘청교도 공화국(the Puritan Commonwealth)’ 실험을 했다. 그래서인지 크롬웰은 2000년 BBC 시청자들이 뽑은 ‘가장 위대한 영국인’에 윈스턴 처칠 전 총리와 이삼바드 브루넬 빅토리아 시대 토목공학자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사후 360여년에도 논쟁의 중심
   
   그러나 영국 역사에서 크롬웰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는 시각 차이에 따라 크게 엇갈린다. 아직도 국민적, 국가적 합의를 못 보고 있을 정도다. 인터넷에서 크롬웰에 대한 평가를 찾아보면 ‘올리버 크롬웰, 영웅? 악한?(Oliver Cromwell, Hero or Villain?)’이라는 글이 수도 없이 떠오른다. 죽은 지(1658) 36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다.
   
   크롬웰을 이르는 호칭도 극단으로 갈라져 천차만별이다. ‘자유의 쟁취자’ ‘민권의 수호자’ ‘영국 공화정의 아버지’ ‘종교 관용주의자’ ‘평등주의자’ ‘종교자유의 수호자’까지는 우호적이다. ‘야심의 혁명가’ ‘영국 최초의 사회주의자’는 보기 드문 중립적인 호칭이다. ‘종교근본주의자’ ‘야망의 모사꾼(ambitious schemer)’ ‘권력욕에 물든 위선자 (hypocrite corrupted by power)’는 그나마 악평 중 온건한 편이지만, ‘아일랜드인 인종청소자’ ‘희대의 살인자’ ‘유럽 최초의 파시스트’ ‘광신적 국왕 살해자(a fanatical regicide)’에 이르면 거의 엽기적 범죄자이다. 스코틀랜드의 계몽주의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데이비드 흄은 크롬웰을 ‘광적인 적극주의자이고 가장 위험한 위선자’라면서 ‘유럽 파시즘의 아버지’라고까지 악평을 퍼부었다. 반면에 영국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토머스 칼라일은 크롬웰을 ‘선과 악의 전쟁에서 선을 위한 영웅’이라고 호평하면서 “정치적 평등과 종교적 관용을 획득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했다.
   
   시민전쟁 결과 찰스 1세가 처형돼 왕이 없던 대공위시대(大空位時代·Interregnum)에 크롬웰이 세운 영국연방공화국 11년(1649~1660)은 그만큼 논쟁적인 시기다. 형식상 이 시기는 국민이 선출한 의원들이 국민의 의사를 대변해 국정을 이끌어 간 영국 역사상 유일한 공화국 기간이었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크롬웰이 호국경(護國卿·Lord Protector)이란 이름으로 군주 같은 절대권력을 행사하면서 자신이 이루고자 한 모든 야망을 현실에서 마음껏 펼치고 실험한 기간이었다.
   
   
   공화국에서 왕보다 더한 절대권력 휘둘러
   
   크롬웰의 생각을 규정한 가장 중요한 잣대는 반(反)가톨릭이었다. 그는 가톨릭을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우상 숭배를 하고 미신을 믿는 사악한 이단 종교라고 여겼다. 가톨릭에서 성공회로 종교개혁을 한 지 이미 100년이 넘었는데도 가톨릭 잔재가 영국인의 마음속과 영국 사회 도처에 남아 있다고 봤다. 성공회도 종교개혁으로 완벽하게 개혁되지 않은 채 아직도 구악인 가톨릭의 영향 아래 계속 죄악을 저지르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성공회 내에 상존하는 가톨릭 잔재를 완전하게 제거하지 않으면 영국은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지배층이자 기득권층인 왕실과 귀족들은 아직도 구체제의 종교적 관성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했다. 청교도정신(Puritanism)에 흠뻑 빠져 있던 크롬웰은 이런 세태를 몹시 개탄하면서 일찍부터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깊이 느끼고 있었다. 그러다 찰스 1세 왕이 세금 문제로 의회와 대립하여 일어난 소요를 계기로 동조자들을 규합해 행동에 나섰다. 자신이 믿는 신(神)의 정부를 세우기 위한 호기로 보고 참전을 결심한 것이다.
   
   왕당파와 의회파 시민군과의 싸움에서 처음에는 잘 훈련되고 전투 경험도 많고 장비도 건실한 왕당파 군대가 이겼다. 그러나 거듭된 전투를 통해 신앙심에 불타는 지원병들의 능력이 갖추어지고, 크롬웰의 철기대(鐵騎隊·Ironside)라 불리는 신모범군(新模範軍·New Model Army)들이 진용을 갖추기 시작하면서부터 전쟁은 의회파 시민군에 유리해지기 시작했다. 확고한 신념으로 뭉친 군대는 누구도 당해내지 못한다는 진리를 크롬웰 군대가 증명한 셈이다.
   
   당시 시민군은 적이라는 존재는 패배, 복종시켜 거느리는 것이 아니라 쳐부수어 말살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일당백의 역량을 발휘했다. 크롬웰 역시 적은 설득해서 공존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지상에서 사라지게 해야 세상이 바로 잡힌다고 보았다. 그런 자신의 투쟁이 성전(聖戰)이기 때문에 피가 흐르고 무자비한 것은 당연하다고도 여겼다. 자기 편에게만 공정하게 대하고, 적에게는 어떤 계략을 써도 무방하다는 철학이었다.
   
    

   자신의 투쟁을 성전으로 여겨
   
   그중 하나의 예가 9년의 시민전쟁에서 시민군에 최종 승리의 전기를 마련해준 ‘차 마시는 시간(티타임·tea time)’ 공격 전략이었다. 당시는 전쟁 중이라도 티타임에는 서로 전투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었다. 지금도 영국에는 근무시간 중 오전·오후 2번의 티타임이 허용될 정도로 이는 불가침의 시간이다. 그러나 크롬웰은 이런 전통을 어기고 왕당파가 티타임으로 무장 해제된 틈을 타서 공격을 퍼부어 전쟁 시작 2년 만인 1644년 7월 2일 마르스톤 무어 전투에서 첫 승리를 올렸다. 불과 두 시간 동안의 이 전투에서 의회파는 300명의 전사자를 낸 데 비해 왕당파는 4000명이 전사하고 1500명이 포로가 되는 괴멸적인 패배를 당했다. 찰스 1세는 이 패배로 북부 잉글랜드 지역을 잃어버려 시민군과의 세력 균형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았다. 최종 패전으로 찰스의 목이 날아가는 비극의 씨앗이 어찌 보면 대단히 비신사적인 전략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1651년 시민전쟁에서 승리한 후 크롬웰은 처음에는 ‘치유와 안정(healing and settling)’을 구호로 내걸고 수많은 개혁 정책을 야심 차게 추진한다. 그리고는 15명의 장군과 차석 장군들을 신의 통치관(godly governors)으로 임명해 전국 10개 지역을 나누어 통치하게 만들었다. 장군들은 군인경찰(militia)을 이용해 보안 유지뿐 아니라 세금 징수도 했다. 찰스 왕이 지주들에게 세금 징수를 허용함으로써 결국 지주들에게 휘둘리게 된 교훈 때문인지 수하들에게 세금 징수를 맡겨 골치 아픈 문제를 사전에 없앤 셈이다. 하지만 영국 전국을 장군(Major-General·보통 Major-General을 ‘소장’이라고 번역하는데 사실은 현대 군인 계급의 호칭인 소장이 아니라 당시 행정 책임을 맡은 장군들을 이르는 일반 직책명이다)들을 통해 통치한 정책이 결국 발목을 잡아 공화국의 생명을 줄인 패착이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즐거움 앗아간 청교도 장군들
   
   당시 지방 통치 장군들은 모두 독실하고 엄격한 청교도들이어서 주민들의 모든 즐거움을 금지시켰다. 지금도 영어 단어 ‘killjoy(즐거움을 죽인다)’의 대표적 사례로 당시 이야기가 들먹여질 정도다. 거기다가 장군들마다 규칙을 자의적으로 만들어 큰 혼란을 야기했다. 당시 장군들이 활용한 군인경찰들은 현재 무슬림 국가의 종교경찰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이들이 국민을 지나치게 감시 감독하면서 국민의 반감을 사게 된 것이다. 그때의 영향 탓인지 지금도 영국인에게는 군부 통치에 대한 강한 반감, 군대에 대한 강한 경계심이 남아 있다.
   
   크롬웰은 왕정제와 상원제를 폐지하고 연방공화국을 설립하려고 헌법 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의회가 말을 듣지 않자 결국 의회를 해산시키고 거수기 의회를 새로 만들어 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내가) 필요하면 법은 없어도 된다(Necessity hath no law)”고 서슴없이 말했고 1655년 왕당파 반란을 계기로 독재를 더욱 강화했다. 특히 인간의 욕망을 극도로 제한하는 청교도 교리에 입각해 사회적인 풍기를 아주 강하게 단속했다. 음주, 성풍속, 춤, 흥청거리는 분위기의 극장, 술집, 경마, 도박, 당시 서민들의 즐거움인 곰싸움 등을 모두 금지시켰다. 또 성탄절 행사를 비롯한 모든 종교 행사와 계절마다 전국에서 벌어지는 각종 지방 축제도 금지하고 단속했다.
   
   크롬웰의 독재를 뒷받침한 것은 그의 무오류(無誤謬)를 믿는 광적이고 열성적인 추종자들이었다. 이른바 청교도 원두당(Puritan Roundhead)으로 불린 이들의 행패는 1960년대 중국의 홍위병과 1930년대 독일 히틀러 시대의 갈색셔츠단과 흡사했다. 이들은 떼로 몰려다니면서 자신들의 눈에 청교도 교리에 어긋난다고 보이는 모든 행위나 물건들을 신성모독(Desecration)이란 이유로 아무 절차 없이 단속하고 파괴했다. 필요하면 신도는 물론 사제들에게까지 린치를 가하고 처형도 했다. 특히 교회 내에 남아 있던 모든 가톨릭 상징이나 흔적을 파괴했다. 영국 교회 중 이때 피해를 당하지 않은 교회가 거의 없을 정도였는데, 최근 ‘흑인 생명도 귀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와중에 벌어지는 동상 철거 소동 등이 당시 사례와 비교되곤 한다. 특히 가톨릭 교회였다가 성공회 교회로 바뀐 교회의 채색 유리 창문, 제단 난간, 성상, 성찬대 등은 모두 가톨릭 잔재이자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파괴됐다. 오르간도 부숴버리고 그 목재 잔해로 교회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홍위병 원조 격인 청교도 원두당의 행태
   
   심지어는 십자가나 성화도 우상이라고 파괴하고 불태웠다. 교회의 수백 년 된 문화재들이 무식한 원두당 졸병들에 의해 파괴됐다. 중국 홍위병들이 공자 사당 같은 과거 유산을 파괴한 행태와 너무 닮아서 과거 “홍위병을 사주한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영국 원두당의 역사를 배우지 않았느냐”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물론 원두당 당원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하다고 여겼다. 한 원두당 기록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이렇게 비도덕적이고, 끔찍한 가톨릭적인… 이는 소돔을 연상하게 하고 고모라의 상징이었다. 분명 그것보다 더 했다.”
   
   크롬웰은 이런 원두당의 행패를 저지하지 않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신의 뜻을 거스른 가톨릭은 적(敵)그리스도라고 여기면서 자비심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원두당의 행패를 오히려 즐겼다. 크롬웰은 자신의 모든 생각과 결정을 신이 내린다고 믿고 행했다. 자신을 ‘신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정치적인 예지력을 갖고 정부와 법과 사회를 개혁한 영웅’이라고 자처하기까지 했다. 그는 세상 모든 사람을 적과 동지로만 구분한 후 동지의 결속을 통해 적의 궤멸을 노렸다. 세상 모든 현상도 자신들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만을 따져서 판단했다. 자신들에게 유리하면 바로 영국과 영국인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일이고, 그것은 바로 신의 뜻이라고 판단했다. 크롬웰은 사실 그런 종교 교리를 판단할 신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도 않은 인물이다. 케임브리지대학교를 1년 정도 다니다가 말았을 뿐이다.
   
   크롬웰의 맹목, 독선, 아집은 결국 자신이 추구하던 개혁을 파괴하게 만들었다. 절대권력자 주변에 꼬이는 정치 모리배와 원두당의 무분별한 충성으로 인한 폐해가 평생 걸려 만든 공화국의 종언을 앞당기게 만들었다. 자신들만이 옳고, 자신들의 집권이 영원할 줄 알고 국민들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적으로 만든 탓이다. 모든 즐거움을 빼앗고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간섭하고 강요하는 청교도들에게 국민들은 피로감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왕의 귀환’을 열렬하게 환영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청교도들은 영국인들에게서 배척받아 자신들이 믿는 대로 살 수 있는 신천지 미국으로 대거 이민을 떠나는 신세가 됐다.
   
   크롬웰은 처음부터 자신을 ‘인민의 친구(man of the people)’로 포장하면서도 왕처럼 행세했다. 왕으로 즉위하라는 주위의 빗발치는 권유를 거절하고 끝까지 호국경을 자처했지만 호칭만 달랐을 뿐 1653년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호국경 수여 행사를 왕의 대관식 못지않게 화려하게 치렀다. ‘왕 전하(Royal Highness)’라고만 안 했을 뿐이지 자신을 ‘전하(Highness)’라고 부르게 했다. 또 현재 금액으로 1035만1720파운드 (155억2700만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돈을 연봉으로 받았다.
   
   
   왕위 제안은 거절, 연봉은 155억원
   
   크롬웰의 도를 넘는 독재를 지켜보던 의회가 1657년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왕이 되기를 권했지만 그는 6주를 고민하다가 결국 거절했다. 국민들이 원한다면 왕이 되는 길이 국가를 위해 좋은 일이 아닌지, 그렇게 되면 의회를 보다 더 효율성 있게 통제할 수 있지 않을지 고민했지만 결국 왕위 제안을 거절했다. 의원들이 자신을 왕으로 만들어 놓고 ‘결국 왕이 되고 싶어 혁명을 했다’는 여론을 형성해 자신을 흔들려는 속셈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크롬웰은 지금도 영웅이냐 악한이냐는 논쟁의 대상이 됐을지 모른다. 또 시민전쟁을 시민혁명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정통성을 인정받는 이유 역시 그가 왕위를 마다하고 호국경을 고집하는 기막힌 술수를 썼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독재자 크롬웰도 1658년 말라리아와 담석증으로 5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영국인들은 이후 역사에서 신정국가나 군정국가에 대한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았다. 절대권력을 가졌다고 자만해서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독재를 하면서 국가와 국민을 오로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쪽으로만 끌고 간 크롬웰의 실험은 왕의 귀환을 환영하는 국민들 앞에서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평생을 추구해 온 청교도공화국 이상향은 겨우 11년을 버티다가 크롬웰이 죽은 지 채 2년이 안 되어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도 영국의 공화파는 크롬웰의 어설프고 섣부른 공화정 실험 실패로 영국이 프랑스 같은 공화국이 될 기회를 영원히 놓쳤다고 통탄한다. 오히려 이들 공화파는 크롬웰을 자신들의 영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주간조선 

 

 

권석하
재영 칼럼니스트.
보라여행사 대표. IM컨설팅 대표.
영국 공인 문화예술해설사.
저서: 유럽문화탐사(2015)
번역: 영국인 발견(2010), 영국인 재발견1,2 (2013/2015)
연재: 주간조선 권석하의 영국통신, 조선일보 권석하의 런던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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